장애인활동지원법의 본질, 사회참여와 기여
본문
『 우리시대는 부자유한 시대이다. 부자유한 시대에는 제한된 자유를 누리기보다 부자유와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
(서울 신촌 모 대학 과훈)
한때 나와 같이 뇌병변을 가지고 있으면서 목발을 사용하여 생활하는 사람을 지체부자유자(肢體不自由者)라고 지칭했던 시대가 있었다. 이 말은, 지금은 장애인등의 특수교육법으로 새로 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에서 지체 장애를 정의했던 법적 용어였으며 언론을 통해 90년대 중반까지도 널리 통용되던 낱말이었다. 그랬던 것이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제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장애’가 ‘부자유’ 하지 않도록 장애인 본인에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내용을 실질적으로 담고 있는 장애인활동지원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의 사회적 지원과 정책을 봉사와 사랑이라는 도덕적 가치로만 생각해 가족들과 전문가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장애인 책임을 전가했던 국가가 이제야 ‘장애’를 사회적 책임과 가치 있는 ‘투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작금의 뜨거운 논쟁처럼 장애인활동지원법안은 기존에 국가와 정부 부서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전근대적인 편견과 두려움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그래서 여전히 장애인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개입하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다소 불투명한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법률이다.
과거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 만 6세부터 65세 1급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도입했다. 시작 당시만 해도 기대는 컸다. 활동보조가 기존의 부분적 보조와는 달리 '생활전반'을 아우르는 보조였기 때문이다.
이 활동보조 서비스의 실시는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정책 전반을 크게 변화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사랑과 봉사의 대상으로 머물렀던 장애인이 독립과 책임의 주체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는 언제나 그것을 행하는 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활동보조서비스란 이름으로 구체적인 ‘정책’이 되었을 때는 그것을 이용하는 장애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공급자에게 책임과 전문성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자발적 자원봉사에서 국민 총생산에 편입 가능한 고용 사업이 되는 것이며 이는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가 노동 생산성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인적 서비스는 공급자의 고용과 노동 생산성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장애인의 활동보조 서비스는 장애인 수용자와 그 가족 구성원들 모두의 노동 생산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전문적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단순 도우미 지원 서비스로 전락시키려는가?
그러나 국가나 보건복지부는 이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시행한 지 3년이 훌쩍 넘었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관점이 크게 변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러한 시대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고 있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 대표적인 증거는 법 제정에 앞서 발표한 2011년 활동보조서비스 지침 변경 파문이다. 내용인즉, 올해 지침에서 복지부는 ‘직업생활, 교육 및 학교활동에 필요한 지원은 근로지원인(고용노동부), 특수교육보조원(교육과학기술부) 서비스를 이용해야 함(사업주, 학교장, 이용자, 보호자 등은 서비스 제공을 요구할 수 없음)’이라고 지침을 변경해 해석에 따라 학교와 직장에서는 서비스 제공을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가 장애계의 거센 반발에 철회한 바가 있다. 이는 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애인 지원 서비스와 장애인 활동보조를 같은 선상의 ‘단순 도움’이나 ‘보호’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 서비스의 본질인 장애인 주체 존중이나 자립생활에 대한 개념이 약한 것이다. 만약에 보건 복지부 논리대로 교육부의 장애학생 학습 도우미나 노동부의 서비스가 활동 보조와 같은 선상의 지원 서비스가 되려면 교과부나 노동부의 장애인 지원 서비스의 질이 보건복지부의 활동보조서비스만큼 담보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보건 복지부는 그것에 대한 어떤 투자나 지원도 하지 않았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장애인활동보조의 본질은 보지 못한 채 단순히 양적으로만 활동보조서비스를 늘려, 보여주고 보고하기 위한 실적으로만 삼으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정부당국의 이런 장애인 서비스 정책의 인식은 이미 70년대에서부터 반복되어 왔는데, 고등학교 졸업 이수자에 대한 특수교사 자격 취득 가능 및 일반교사 보수교육 정책이 그러하였고 사회복지사의 영역을 가정 관리학과나 간호사에게 개방한 정책 역시 그 궤를 같이 한다. 장애인지원정책의 본질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처음부터 예산의 우선순위나 전문성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지 않고 양적으로만 정책을 시행하여 국가 실적으로 쌓으려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장애인 본인들의 문제제기와 정책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늘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들여서 궁극적으로는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정책 관점은 결국 활동보조 서비스가 담당하려는 사회적 비용의 경감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에도 어긋나고 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장애인들의 필수불가결한 공공재(2006년 경남 함안에서 활동보조가 없어서 와상 장애인이 죽은 사건, 2007년 전신마비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이 없는 상태로 밤에 자다가 질식해서 죽은 사건을 기억해 보라)이며 정당한 편의제공이라는 점을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논리는 이미 공공재 무료 수준으로 가고 있는 핸드폰 문자 사용료 같은 것에 본인 부담을 물리는 것과 같은 꼴이다.
다른 비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은 사회에서나 개인적으로 충분히 그 권리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행사하고 있으며 사회로부터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장애인의 활동보조서비스가 이미 사회가 부여해야 할 마땅한 권리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주무부서가 이런 정책에 대한 관점을 과거 지향적으로 고집하면 할수록 장애인 본인 역시 과거 지향적으로 자리매김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막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는 소득 증대, 가계의 장애인 부양 부담 경감을 통한 국가 총생산의 증가라는 애초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는 장기적으로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위한 중요한 인프라이며,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이를 위한 중요한 초석이다. 이를 국가가 인식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장애인의 사회 참여라는 원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국가의 장애인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중증장애인에게 ‘기여’부터 할 것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활동보조 서비스에 대한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
얼마 전 서대문구는 지자체 자원에서 중앙정부와는 별도의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서대문구가 지자체의 차원의 별도의 정책을 만든 것은 이 지역이 장애인 대학생들의 밀집 지역일뿐더러 세브란스 재활병원 등으로 인하여 장애인 인구가 많다는 지역적 정치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지자체의 이런 노력은 지역 사회에서의 인구 유출을 막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하며 장애인과 그 가족, 활동보조인의 소비 활동 등으로 지자체의 제정을 충당해 주기도 한다.
이렇듯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을 소수자를 위한 과잉투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장애인에 대한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고품격의 투자라는 것으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의 전체 예산은 중앙 정부가 가지고 있는 반면에 그 책임과 정치적 부담은 장애인 주민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지자체가 모두 떠안고 있는 형국이다. 현실적으로 각 지자체는 그 지역에 맞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를 개발하여 지역의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의 만족도와 기여도를 높여, 지자체의 집행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서비스가 성숙되면 될수록 서비스의 내용과 질은 세분화 될 것이다.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가 점점 전문화 되고 고도화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발전 속도에도, 보건복지부가 활동보조서비스를 단순히 ‘도움’이란 개념으로 단순화시켜 교과부의 장애인학생 학습도우미나 근로지원인서비스와 특수교육보조원서비스를 활동보조서비스로 묶어버리는 것은 보건복지부 스스로 그렇게 비난했던 다른 부처의 예산으로 생색을 내려는 무임승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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