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을 위한 포퓰리즘은 왜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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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값 등록금과 무상급식 논의가 확산되면서 언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다. 진보 성향의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언론들은 한목소리로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 값 등록금 논의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 정치 행태로 규정하고, 이게 구체화 되면 당장 내일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포퓰리즘이 뜻하는 순수한 사전적 의미는 서민, 즉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는 정치 활동이라고 한다. 또 정치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정치인들 스스로 말하길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정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지금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친다고 책상을 치며 핏대를 올리고 있는 근엄한 표정의 정치인들도 공식석상에서는 오직 서민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고개를 숙이면서 표를 구걸한다.
결국 사전적인 의미로는 정치를 업으로 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서민들이 부자보다 숫자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모두 포퓰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게 정치인들의 숙명이다. 지금, 나는 정치를 하면서 서민의 복지 문제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하며 나설 수 있는 정치인이,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이긴 하지만, 정치인들이 지금 가난한 아이들에게 밥 한 끼 먹이고, 가난한 사람들도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대학 등록금을 낮추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플 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비를 낮추자는 대중의 요구를 여러 말도 아닌 단 한 마디로 포퓰리즘이라고 규정짓고 난 후 이율배반적이게도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고 나라를 망치는 정책이라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들은 왜 이 시점에서 무상 급식과 반 값 등록금 논의 등의 복지 요구가 급격하게 대두되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애써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극심한 가난과 빈부 격차로 자살율이 세계 1위에 육박하는 이 암울하고 절망적인 서민들의 빈곤 현실에 대해서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은 가진 자들이 흘리는 떡고물이라도 받아먹기 위해서,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결국 가진 자가 지갑을 열어야 문제가 해결되는 서민들의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복지요구를 포퓰리즘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며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상 총선과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복지확대를 둘러싼, 포퓰리즘 논란이라고 해도 상관없는데, 논란은 아무리 막으려고 하고, 또 매도한다고 해도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점은 작금의 복지 요구가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 시작된 욕구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의 복지가 실현되지 않으면 포퓰리즘의 반대선상에서 거꾸로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그들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포퓰리즘 논의가 한창인 지금 왜 장애인들을 위한 포퓰리즘 논의는 없는가, 돌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 말이 진정 하고 싶은 말이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은 언론과의 대담에서 여의도에 있는 정치인들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한노인회장이 전화를 하면 만사를 제쳐 두고 반드시 받는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장애인들이 노인들처럼 구심력이 없어서 무시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논의에 끼워주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장애인들을 위해 지금 시급한 복지 정책은 대표적으로 껌 값 장애연금의 현실화, 일자리 확대, 활동보조인 지원제도의 확대 시행, 그리고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대책 마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장애인들에게 시급하고 절실한 복지정책이 논란거리가 되고 설령 반대의견이 있고, 나아가 이런 정책들이 장애인들의 요구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맹비난을 받더라도 국민들 사이에서 공론화 되고 대안 마련이 논의 되어야 한다. 반드시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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