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없고 장애인 단체장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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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지역의 한 구청장을 인터뷰 하러 갔을 때 황당한 일을 목격했다. 구청장실에서 지역의 유력한 장애인 단체장이 구청장 비서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장애인 단체장이 하는 말, 구청 측이 자신이 속한 장애우 단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무상급식 반대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단체장 말인즉슨, 구청에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장애인 단체에 돈을 주지 않으면 민주당 당적을 가진 구청장을 골탕먹이기 위해 장애인 단체가 나서서 무상급식 반대 서명을 받을 테니 알아서 하라는 사실상의 협박을 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두 달 전에는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 장애계 관계자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무슨 밥을 살 일이 그리도 많은지 한 장애인 단체가 단체장에게 책정한 월 판공비만 5백만원이 넘는다는 얘기였다.
여기에다 요즘 장애계에는 벌써 권력에의 의지가 충만한 단체장들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대표직을 겨냥한 물밑 신경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실정인데, 어느 단체장은 어느 당에 줄을 대고 있고, 누구는 만만치 않은 공천 헌금을 준비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는 얘기가 이 사람 저 사람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얘기지만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지나고 난 후 남은 씁쓸한 기억은 장애인 단체장들끼리 모여 훈장과 표창장을 나눠가지고, 단체장들이 우르르 청와대에 불려가서 밥 한 끼 먹은 다음, 단체장들이 그걸 대접받았다며 희희낙락거렸다는 기억뿐이다.
이렇게 정작 장애인들은 없고, 장애인 단체장들만 있는 장애계 풍경이 수 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 단체장들끼리의 카르텔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고해 지는 추세여서 급기야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장애인총연맹과 장애인총연합회의 헤쳐모여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장애인 단체장들이 견고한 성을 쌓아 놓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예정인지 장애 대중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런 가운데 분명한 사실은 단체장들이 대표 한다는,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한낱 수식어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장애대중들은 지금 단체장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체장들이 밥먹고 희희낙락거린 4월, 장애인들의 민생은 여전히 도탄에 빠져있는 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예를 거론하면 4월 초 지체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구걸로 연명하던 한 여성장애인이, 자신을 모욕한 주인이 있는 슈퍼마켓에 불을 질렀다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갈 곳이 없어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먹고 살 수단이 없어 구걸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게 외면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렇게 장애인들은 처참한 실정에 놓여 있는데, 장애인들을 대표한다는 단체장들은 어떤 정치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밥을 나눠 먹자는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판공비로 거액의 돈을 펑펑 써대고, 나도 한 자리 차지하겠다며 잿밥인 국회 비례대표직에 목을 매달고, 또 열심히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고 있다. 이러한 작금의 작태는 해도 너무한다는 비난이 절대 과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내친 김에 장애인 단체장들에게 충고를 하나 더 하면, 눈을 씻고 찾아봐도 훗날 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나아진 삶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기억할 만한 단체장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단체장들이 밑바닥에서부터의 장애인 운동에 관심이 없고, 능력이 안 돼 장애인들의 나은 삶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대신 겸손하고 청빈하게 살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제발 단체장이라는 직함이 큰 벼슬이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지 말고, 또 단체장들은 억지라고 웃어넘길지 모르지만, 대다수 장애인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단체장들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무리의 대표라는 인정이라도 받을 수 있다.
장애인은 없고 단체장들만 있는 현재의 장애계는 개혁의 대상이다. 개혁이 단체장들 손에서 이루어질지 장애인들의 힘으로 이루어질지 두고 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장애계가 언제까지 이렇게 왜곡된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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