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과 함께한 데이트
해외의 장애인 ‘오사카에서 온 편지’
본문
“오늘 엄마랑 같이 뷔페 먹으러 가지 않을래?”
학교에서 돌아온 4학년짜리 둘째 아이에게 슬쩍 물어 보았지요.
“무슨 일이 있어요?”
“엄마를 항상 도와주는 장애인 단체에서 오늘 식사 모임을 한대. 갈 때는 차로 데리러 오는데, 돌아올 때는 엄마 혼자서 전철 타고 오기가 힘들잖아. 그러니까 같이 가서 휠체어도 밀어주면 정말 좋겠다.” “글쎄,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말고 엄마랑 같이 가자.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알았어요. 그런데 어디로 가요?” “덴노지백화점의 중국 레스토랑이야.”
그렇게 둘째 아들과 둘이서 저녁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사실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둘째 아이와 둘이서 함께 외출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차를 타고 목적지 근처에서 내렸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아이의 활동보조를 부탁해 가는 거지요. 그런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하루가 멀게 기록을 갱신했다는 폭염도 삭아들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어요. 백화점이 바로 앞이어서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요.
“잘 미네. 엄마, 무거워?”
“아니, 괜찮아요. 그런데 오늘 학교에서 이야기 듣는 시간이 있었어요. 엄마처럼 다리가 아프거나 앞이 안 보이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선생님이 다리가 불편하거나 소리가 안 들리거나 앞이 안 보이면, 마음대로 가고 싶은 데도 갈 수 없고, 에스컬레이터를 잘 탈 수도 없다고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우리 엄마도 다리가 아프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 다음 친구들이 휠체어를 타보거나 밀어 보자고 해서 모두 같이 타보고 그랬어요.”
“정말, 그런 일이 있었구나.”
백화점의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레스토랑이 있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5시부터 하기로 한 식사회, 다들 모여 있었어요. 그런데 손님들은 우리 팀밖에 없는 거예요. 하긴 평일이고 아직 5시니까 저녁은 빠른 시간이지요.
“제가 늦었네요. 우리 아이와 같이 왔어요.”
저도 자리에 앉고 건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레스토랑의 한 가운데 두 테이블에 나눠 앉은 우리 팀, 모두 16명. 그 중에 휠체어가 8대, 활동보조인이 4명, 그밖에 스텝 4명. 제 아들도 활동보조인이구요. 뷔페식이어서 음식을 가져다 날라 먹기도 하고, 요리를 실고 지나갈 때 주문하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맛을 봅니다. 그렇지만 그리 대화는 없어요. 먹느라고 바빠서냐고요? 아니에요. 함께 참가한 팀원들 중에는 직접 말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5명이 넘었거든요. 말을 한다고 해도 언어장애가 심한 장애인이 2명 있었으니까, 그리 수다를 떨 일은 없었던 거예요.
어떤 사람은 문자판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활동보조인에게 전달해서 가져다 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직접 가서 요리 접시를 보면서 지시를 하기도 하면서 식사를 하는데다, 요리를 잘게 자르거나 부셔서 천천히 천천히 먹어야 하니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게 사실이지요.
특히 오늘은 새로 들어온 장애인 스텝의 환영식, 그리고 2달 전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계단에서 굴러 부상을 당한 스텝의 퇴원 축하회도 겸한 자리여서 맛있는 거 실컷 먹고 넉넉한 시간을 보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6시 반 정도가 지나자 우리들도 슬슬 배가 불러 왔고, 손님들이 많아져 거의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슬슬 나갈까요.”
휠체어 8대가 동시에 출구로 나서자, 번잡한 게 사실이지요. 계산도 해야 하고, 출구가 마침 요리가 놓인 곳이기도 하여 다른 손님들도 잠시 서서 기다려야 했고요.
“우리 이왕 나온 김에 디저트도 먹고 가요.”
“백화점 2층 입구에 카페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지요.”
막상 카페 앞에 도착해보니 그리 넓은 곳은 아니었어요. 통로도 그리 넓지 않아 휠체어가 지나갈 때는 지나가는 사람이 잠깐 서 있어야 했어요. 그곳에서도 우리 팀은 몇 테이블로 나눠 앉아 케이크와 차 세트를 주문해 먹으면서 약 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와, 오늘은 정말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원 없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네요. 다들 안녕히 가세요!”
활동보조인과 같이 전철로 집으로 향하는 사람, 전동휠체어를 타고 돌아가는 사람, 그렇게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저는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백화점과 연결된 전철역으로 향했지요.
“엄마, 형아에게 선물 사가자.”
“그럴까, 뭐가 좋을까?”
마침 지나는 길에 보이는 빵집에 들어가 아이가 좋아할만한 빵을 몇 개 고르고, 둘째 아이에게도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보라고 했어요. 뷔페를 실컷 먹고 왔건만 내일 아침에 먹는다면서 커다란 빵을 집어넣더군요. 그래도 그 정도야 얼마든지 쓸 수 있지요. 작지만 이렇게 익숙하게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으니까요.
“엄마 그런데 여기 덴노지(오사카의 지명)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거 같아. 어떻게 계단을 내려가지?”
전철을 탈 때 아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는 거예요.
“괜찮아, 역무원 아저씨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되니까.”
역무원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걸자 경사로를 들고 나와 역 한참 끝까지 안내를 하길래 가보니 엘리베이터가 있네요. 우리가 전철을 기다리는 사이, 내리는 역에 전화를 걸어 역무원에게 도착시간을 알리면서 마중을 나와 달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집근처 역에 도착하자 미리 나와 있던 역무원이 출구에 경사로를 깔아주네요. 집 근처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는데 문제는 그 때부터예요.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거든요.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있었어요.
“비가 와서 큰일이네, 엄마가 우산을 높이 쳐들고 갈게. 비 많이 맞으면 얘기해.”
아들은 152cm.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와 키 높이가 비슷하지요.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아이도 우산을 쓸 수 있도록 저는 높이를 맞춰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산 하나로 두 사람을 모두 가리기에는 버거웠던 것 같아요. 우산을 들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저는 무릎부터 다리가 다 젖었고, 아이는 머리는 우산에 가려졌지만 등과 다리는 그대로 비를 맞았어요.
“빨리 가자, 빨리.”
아이는 거의 뛰듯이 휠체어를 밀었어요. 하지만 약간 오르막길이 나왔을 때는 꽤나 힘이 들었을 거예요. 자기보다도 훨씬 크고 무거운 엄마와 가볍지 않은 휠체어의 무게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나 혼자 바퀴를 굴리고 싶었지만 우산을 들고 있으니 그것도 만만치 않더군요. 미안한 마음이 가득, 고마운 마음이 가득, 가득. 비에 많이 젖었을 텐데 감기에나 걸리지 말아야 할 텐데,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 내리는 어두운 저녁길을 달렸어요. 둘째 아이와의 첫 번째 데이트였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4학년짜리 둘째 아이에게 슬쩍 물어 보았지요.
“무슨 일이 있어요?”
“엄마를 항상 도와주는 장애인 단체에서 오늘 식사 모임을 한대. 갈 때는 차로 데리러 오는데, 돌아올 때는 엄마 혼자서 전철 타고 오기가 힘들잖아. 그러니까 같이 가서 휠체어도 밀어주면 정말 좋겠다.” “글쎄, 어떻게 할까?”
“고민하지 말고 엄마랑 같이 가자.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알았어요. 그런데 어디로 가요?” “덴노지백화점의 중국 레스토랑이야.”
그렇게 둘째 아들과 둘이서 저녁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사실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둘째 아이와 둘이서 함께 외출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차를 타고 목적지 근처에서 내렸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아이의 활동보조를 부탁해 가는 거지요. 그런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하루가 멀게 기록을 갱신했다는 폭염도 삭아들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어요. 백화점이 바로 앞이어서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요.
“잘 미네. 엄마, 무거워?”
“아니, 괜찮아요. 그런데 오늘 학교에서 이야기 듣는 시간이 있었어요. 엄마처럼 다리가 아프거나 앞이 안 보이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선생님이 다리가 불편하거나 소리가 안 들리거나 앞이 안 보이면, 마음대로 가고 싶은 데도 갈 수 없고, 에스컬레이터를 잘 탈 수도 없다고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내가 우리 엄마도 다리가 아프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 다음 친구들이 휠체어를 타보거나 밀어 보자고 해서 모두 같이 타보고 그랬어요.”
“정말, 그런 일이 있었구나.”
백화점의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레스토랑이 있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5시부터 하기로 한 식사회, 다들 모여 있었어요. 그런데 손님들은 우리 팀밖에 없는 거예요. 하긴 평일이고 아직 5시니까 저녁은 빠른 시간이지요.
“제가 늦었네요. 우리 아이와 같이 왔어요.”
저도 자리에 앉고 건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레스토랑의 한 가운데 두 테이블에 나눠 앉은 우리 팀, 모두 16명. 그 중에 휠체어가 8대, 활동보조인이 4명, 그밖에 스텝 4명. 제 아들도 활동보조인이구요. 뷔페식이어서 음식을 가져다 날라 먹기도 하고, 요리를 실고 지나갈 때 주문하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맛을 봅니다. 그렇지만 그리 대화는 없어요. 먹느라고 바빠서냐고요? 아니에요. 함께 참가한 팀원들 중에는 직접 말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5명이 넘었거든요. 말을 한다고 해도 언어장애가 심한 장애인이 2명 있었으니까, 그리 수다를 떨 일은 없었던 거예요.
어떤 사람은 문자판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요리를 활동보조인에게 전달해서 가져다 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직접 가서 요리 접시를 보면서 지시를 하기도 하면서 식사를 하는데다, 요리를 잘게 자르거나 부셔서 천천히 천천히 먹어야 하니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게 사실이지요.
특히 오늘은 새로 들어온 장애인 스텝의 환영식, 그리고 2달 전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계단에서 굴러 부상을 당한 스텝의 퇴원 축하회도 겸한 자리여서 맛있는 거 실컷 먹고 넉넉한 시간을 보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6시 반 정도가 지나자 우리들도 슬슬 배가 불러 왔고, 손님들이 많아져 거의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슬슬 나갈까요.”
휠체어 8대가 동시에 출구로 나서자, 번잡한 게 사실이지요. 계산도 해야 하고, 출구가 마침 요리가 놓인 곳이기도 하여 다른 손님들도 잠시 서서 기다려야 했고요.
“우리 이왕 나온 김에 디저트도 먹고 가요.”
“백화점 2층 입구에 카페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지요.”
막상 카페 앞에 도착해보니 그리 넓은 곳은 아니었어요. 통로도 그리 넓지 않아 휠체어가 지나갈 때는 지나가는 사람이 잠깐 서 있어야 했어요. 그곳에서도 우리 팀은 몇 테이블로 나눠 앉아 케이크와 차 세트를 주문해 먹으면서 약 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와, 오늘은 정말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원 없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네요. 다들 안녕히 가세요!”
활동보조인과 같이 전철로 집으로 향하는 사람, 전동휠체어를 타고 돌아가는 사람, 그렇게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저는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백화점과 연결된 전철역으로 향했지요.
“엄마, 형아에게 선물 사가자.”
“그럴까, 뭐가 좋을까?”
마침 지나는 길에 보이는 빵집에 들어가 아이가 좋아할만한 빵을 몇 개 고르고, 둘째 아이에게도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보라고 했어요. 뷔페를 실컷 먹고 왔건만 내일 아침에 먹는다면서 커다란 빵을 집어넣더군요. 그래도 그 정도야 얼마든지 쓸 수 있지요. 작지만 이렇게 익숙하게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으니까요.
“엄마 그런데 여기 덴노지(오사카의 지명)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거 같아. 어떻게 계단을 내려가지?”
전철을 탈 때 아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는 거예요.
“괜찮아, 역무원 아저씨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되니까.”
역무원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걸자 경사로를 들고 나와 역 한참 끝까지 안내를 하길래 가보니 엘리베이터가 있네요. 우리가 전철을 기다리는 사이, 내리는 역에 전화를 걸어 역무원에게 도착시간을 알리면서 마중을 나와 달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집근처 역에 도착하자 미리 나와 있던 역무원이 출구에 경사로를 깔아주네요. 집 근처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는데 문제는 그 때부터예요.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거든요.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있었어요.
“비가 와서 큰일이네, 엄마가 우산을 높이 쳐들고 갈게. 비 많이 맞으면 얘기해.”
아들은 152cm.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와 키 높이가 비슷하지요.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아이도 우산을 쓸 수 있도록 저는 높이를 맞춰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산 하나로 두 사람을 모두 가리기에는 버거웠던 것 같아요. 우산을 들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저는 무릎부터 다리가 다 젖었고, 아이는 머리는 우산에 가려졌지만 등과 다리는 그대로 비를 맞았어요.
“빨리 가자, 빨리.”
아이는 거의 뛰듯이 휠체어를 밀었어요. 하지만 약간 오르막길이 나왔을 때는 꽤나 힘이 들었을 거예요. 자기보다도 훨씬 크고 무거운 엄마와 가볍지 않은 휠체어의 무게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나 혼자 바퀴를 굴리고 싶었지만 우산을 들고 있으니 그것도 만만치 않더군요. 미안한 마음이 가득, 고마운 마음이 가득, 가득. 비에 많이 젖었을 텐데 감기에나 걸리지 말아야 할 텐데,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 내리는 어두운 저녁길을 달렸어요. 둘째 아이와의 첫 번째 데이트였답니다.
작성자변미양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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