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은 소비자로서의 삶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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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따져 보자. 예정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장애인 활동보조인 5만명 지원제도 시행과 관련해서, 만약 활동보조인 평균 급여인 80여만원을 장애인들에게 직접 지원해서 그 돈으로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든지 말든지 알아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활동보조인지원제도의 틀이 짜였다면, 과연 정부가 순순히 활동보조인 5만명 지원 제도에 동의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도 정부가 중증장애인들에게 1인당 80여만원의 급여를 직접 지원하면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도 확보할 수 있고, 나아가 절약한 급여로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소비자로서 삶을 살 수 있는 여지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직접 급여를 지급하는 활동보조인지원제도 시행을 거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짐작컨대 장애인 활동보조인지원제도가 장애인 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사회서비스 일자리 마련 사업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도 활동보조인 지원 제도 확대 시행을 발표하면서 이 사업이 돌봄 서비스의 확대시행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즉 활동보조인 지원제도의 확대 시행은 정부가 장애인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저소득층 비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별 말 없이 제도 도입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부의 주된 활동보조인지원 제도 확대 시행의 목적이 후자인 저소득층 비장애인들의 일자리 마련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쉽게 얘기해서 숱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규모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이유 중 하나와 활동보조인제도 확대 시행은 그 배경에 같은 이유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을 돌보는 비장애인들에게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정부는 장애인이 소비자로 사는 걸 끝끝내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장애인 입장에서 더 황당한 사실은 정부가 활동보조인지원제도 확대 시행을 발표하면서, 장애인연금제도 도입에 이어 장애인 활동보조인지원제도 도입으로 장애인 복지의 제도적 기반을 완비했다며 큰소리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생계수단이 없는 중증 장애인에게 고작 15만원의 연금을 지급하면서, 또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들의 일자리 마련에 목적을 둔 활동보조인지원제도를 시행하면서 장애인 복지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그리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더 이상의 장애인 복지제도는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를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장애인 복지는 뭉뚱그려서 중증 장애인이 일정 정도의 소득을 가지고 자립생활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장애인이 소비자로 당당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줘야 그나마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시행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한 건 껌값 수준의 장애연금과,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실종된 활동보조인지원제도는 장애인이 소비자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정부는 장애인들의 소득보장을 위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올해 장애인 일자리를 1만여 개로 늘려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임금이 고작 2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일자리의 질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소득 보장에 영향을 주기 어려운 일자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실정에서 욕먹을 각오로 얘기하면, 어떻게 보면 작금의 장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활동보조인지원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장애인의 삶에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는 소모성 논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중요한 건 활동보조인 지원이 아니라 장애인이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장애인들은 돌봄의 대상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삶을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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