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 여성들이 아닌 나에게 비난과 악플을 던져라!! > 대학생 기자단


군가산점, 여성들이 아닌 나에게 비난과 악플을 던져라!!

[김형수의 세상보기]의문사 없는 최소한의 인권이라도 보장되는 군대를 꿈꾼다

본문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고, 아무리 자도 졸리고, 아무리 입어도 추운 곳이 군대입니다.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습니까?”

2007.07.01 KBS 심야토론에서 전원책 변호사 발언 중


군가산점 부활은 이명박 정권의 천박하고 저급한 장애인 관점이자 정치적 쇼이다

지난 9월 3일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군 가산점제 재도입을 강력히 건의했다는 동아일보의 보도로, 군가산점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논쟁으로 돌아왔다.

1998년 10월에 ‘본인’의 위헌소송으로 99년 12월 23일 전원재판부 판결로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제8조 1항 등 위헌을 확인한 이후로, 국방부의 군가산점에 대한 입질은 기사화로 확인된 것만 벌써 3번째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진 남성들의 분노와 여론에 힘입어, 2000년 9월 당시 정부 여당은 군가산점제 존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7년 5월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한나라당 고조홍 위원이 다시 군가산점에 관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2008년 12월 김성회·주성영 의원이 각각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을 토대로 위헌적인 요소를 수정한 뒤 국방위를 통과했으나,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만든 ‘한시적 안보 특보 기구’가 제안했다는 형태로 언론을 통해 공표했다.

이번에 주목하고 싶은 것은 군가산점 문제 그 자체이기도 하거니와, 이 문제를 둘러싼 국가와 사회의 정치 문화적인 배경이다.

첫 번째, 국방부는 왜 군가산점 문제를 병역 기간 연장과 더불어 여론 떠보기부터 시작하는가? 이 문제가 대통령 직속의 기구에서 주요한 안보 사안으로 제안될 만큼 그렇게 절박하고 중요한 것이라면, 제대로 된 국방부의 공청회나 공식 보도자료 형태로 공론화되지 않고 언론의 취재 과정을 빌려 슬쩍 여론을 형성해 보는가 하는 점이다.

위헌 판결이 난 이후 10년 동안 국방부가 소송당사자인 본인과 여성들에게 의견을 물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이버 상에서 남녀대결로 서로 싸우는 동안, 열악한 군대에 대해 정작 비판받아야 할 국방부의 책임은 사라져 버렸다.

두 번째, 군가산점을 찬성하는 많은 사람들은 왜 춥고 배고프고 억울한 의문사가 존재하는 군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기보다는 여성과 장애인을 공격하는가? 그들의 주장처럼 군가산점 위헌판결이 부당한 것이었다면, 99년 당시 그들은 왜 헌법재판소로 달려가지 않고 모 여대의 게시판으로만 달려갔는가?

세 번째, 군가산점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전체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군필자만을 우대하는 제도였음에도, 왜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남자들과 애인과 아들과 가족을 군대에 보내는 수많은 여성들이 군가산점의 존재와 군필자의 보상을 동일시하는 것일까?

군가산점 논쟁은 국방부의 무능력의 표상이다

‘동아일보’를 통해 시작된 군가산점의 이슈화 이전에 국방부는 천안함 조사에 대한 불신, K-1전차 포신 폭발, K-9자주포 엔진 고장 등으로 인해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군가산점 논쟁으로 말미암아 여론에서는 국방부가 사라지고, 군가산점에 대한 남녀 성 대결과 음모론만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 위헌 판결 이후 지난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방부가 군대를 좀 더 효율화하고 덜 춥고 배고픈 곳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왜일까?

장애인과 여성들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군필자에게 피해의식을 최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보상 정책을 단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어 사회에 내놓지 못한 채 오로지 군가산점을 되풀이 주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방부가 이 문제에 대하여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무능력과 무관심을 숨기고 사회적 관심을 단지 ‘군가산점에 대한 남녀 대결이나 여론으로 은폐하려 한다는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 그 심장과 뇌세포의 사이의 딜레마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몇몇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점수보다,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되는 군대·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또한 이제 우리나라가 징병제를 하지 않고 모병제를 해도 충분하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결국 모병제로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군 제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개선될수록, 군대에서 뺑이치고 ‘삽질’한 사람들의 감정은 더욱 요동친다. 난 징병제로 끌려갔는데 후배들도 똑같이 끌려갔다 와야 내가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다는 그런 감정들.

“대학 내에서도 군대 가고 하면 환송회 해주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친한 친구일수록 감정이 나오는데, 너는 군대 안 가서 좋겠다는 말이 바로 나오거든요. 그때는 제가 할 말이 없는 거죠. 그건 감정적인 문제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 제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거고. 뭐 이제 제대했다고 하더라도 만나면 전부 다 군대 얘기밖에 안 하는데, 난 거기에 끼어들지도 못하죠. 그리고 사회에서도 뭔가 힘든 일을 시킬 때 그런 일을 해내지 못하면 뭐라고 얘기하겠어요.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렇다고 얘길 하겠죠. 군대는 사회적으로 통과의례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 어느 장애인대학생과의 인터뷰 중에서

우리나라 사회에서 군 인권의 문제는 한마디로 금기다. 그것은 분단된 땅이라는, 아무도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그것에 짓눌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 인권을 무시한다고 국방력이 강해지지는 않을 것이며, 국방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군의 ‘사기’도 군가산점의 부활이나 강화로 더 높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군가산점은 다만 열악한 군복무 환경과 제도 개선에 대한 국가와 정부 당국의 책임을 은폐하고 유예시키는 것뿐이며, 남녀 갈등을 감정적으로 유발하고 장애인·비장애인들의 갈등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에 쏟아질 칼날을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군가산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 폭력을 정당화 해줄 뿐이다

군가산점을 가열차게 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병역 판정에서 1급 판정을 받는 신체 건장한 사람들이지만, 그들 역시 ‘군대로 인해 국가의 강제 징집으로 청춘과 스펙과 경쟁력을 잃어버린 피해자’라고 강변한다. 물론 그 주장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리고 그 피해의식을 군가산점이 상징적·정서적으로라도 위로하고 보상해 줄 수 있다면 위헌 소송의 당사자인 나 자신도 군가산점을 존치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공무원 시험에서 수석을 해도, 아니 만점을 받아도 불합격하는 ‘실재’하는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방부가 스스로 자기 성찰과 개혁은 하지 않고 남녀의 갈등을 우발하고 군 면제자와 군필자와의 대립을 이용하여 군가산점을 부활시킨다면, 국가와 국방부는 그 알량한 점수를 핑계로 군대에서의 인권문제는 더욱 도외시할 것이다.

찬성론자들이 책임 주체인 국방부나 국가에게 당당히 요구하지는 못한 채 여성들이나 장애인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 역시 국가 앞에 한없는 약자라는 반증인 동시에, 상대적으로 약자인 상대에 대한 폭력의 대물림이자 국가에 의한 꼭두각시 대리전일 뿐이다.

정말 국방부와 이명박 정권이 군필자 문제와 인권에 그렇게 관심이 높았다면, 얼마 전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 이래 지난 2년 동안 위원회가 진상을 규명한 의문사 43건 가운데 5건(11.6%)은, 폭행치사(타살) 사건을 군에서 단순 사고나 병사 등으로 은폐·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것에 대해 어떤 대책도 없이 위원회 인력을 대폭 축소한 채로 기간 연장 없이 폐지하려 했겠는가?

군가산점 찬성론자들도 국방부와 국가 앞에서는 한없는 약자로서 침묵하지만, 장애인과 여성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들보다 강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들에 대해서는 해당 여대의 게시판을 초토화시키면서도, 정작 장애인 당사자에는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한 것은 비난하거나 공격하기엔 너무나도 머쓱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군가산점 문제는 애초부터 장애인들의 인권 문제로 틀거리를 가져갔어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부담스럽고 금기시할 주제라도 할지라도.

군대 문제와 장애인 문제는 한 몸이다

요즈음 뜨거운 감자인 장애등급 문제와 군대의 병역등급 문제는 본질적으로 한 몸, 한 뿌리다. 인간의 신체에 그 질과 능력에 등급을 매기는 것의 출발점이 바로 군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체 중심의 군사력을 고민하는 것도 참으로 전근대적이며 무식한 방식이긴 하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등급을 매기는 권력에게 문제제기를 하기보다, 내 등에 낙인찍힌 등급을 ―신체의 장애를―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장에서 진행되는 장애등급 거부 운동은 뜻 깊은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장애인의 삶뿐만 아니라 군대에 끌려가는 모든 이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징병제 거부나 양심의 병역거부 운동에도 장애인의 투쟁력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헌법 소송의 당사자인 본인 이름이 모든 헌법학 강의 시간에 거론되고 법학 학생들과 여성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만, 정작 본인이 ‘장애인’임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그만큼 장애인과 군대는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안 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군대 문제의 해결 없이 장애인 문제의 뿌리를 파헤칠 수 없고 장애인 당사자의 주체적인 활동 없이는 군대 문제의 근간을 흔들 수 없다.

당사자로서 그동안 이 문제에 다소 침묵했던 것은 일본의 독도 이슈화 전략과 닮아 있는 국방부의 군가산점 이슈화 전략에 가담해주기가 싫었고, 찬성론자들이 장애인과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이 억울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이명박 정권의 행태는 오히려 이런 나와 우리들의 침묵을 이용하여 국가의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 지면을 빌어 군필자들과 찬성론자들과 전쟁론자들에게 본 원고의 제목처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한열 열사의 글을 빌어 그동안 내 침묵을 반성하고 고백한다.

“…무서운 건 그들의 발소리가 아니라/꼭 다문 너의 입과/수갑 채인 두 손과/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발바닥/소리 없는 함성은 우리를 가둘 뿐이란 걸/왜 우린 알면서 그냥 있어야 했나/ 왜 우린….”

■ 장애인 정강용 씨는 91년 총무처 주관 7급 행정직 공채 시험에 응시해서 82.22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이 점수는 당시 가산점이 없는 상태에서는 응시자 가운데 차석을 차지한 높은 점수였다. 하지만 결과는 차석의 높은 점수를 받은 그는 탈락하고, 실제 시험 점수 78.33을 받은 군필자가 그를 밀어내고 가산점 5%를 더해 83.33점으로 시험에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와 같이 시험에 응시한 동기생 한 명 역시 81점을 받고도, 가산점 5%를 더해 86점으로 전체 순위 5등의 좋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이후 군가산점을 만회하기 위해 하루 13시간씩 공부하는 강행군을 한 그는 다음해인 92년과 93년에 다시 7급 공무원 채용 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가산점으로 인한 불합격이었다. 93년의 경우 충청남도 7급 행정직 시험에서 그는 점수로는 합격자 45명 중 28등이었지만 가산점이 적용되자 133등으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 김도현, 군가산제 비상대책위원회 ‘낮은시선’자료집 中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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