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풀뿌리를 자라게 하는 법
본문
며칠 전 반가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전에 열린 네트워크를 할 때 같이 컴퓨터 공부방을 했던 어린 친구였습니다.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였는데, 우연히 짐을 정리하다가 제가 생각났다며 인터넷 검색을 해서 제 회사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거의 7~8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지만, 듣자마자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형, 누나들 사이에서 힘들었을 텐데도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친구였습니다. 집이 멀었지만 모임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전화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근황을 물었더니 벌써 결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처음 만난 게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결혼을 할 때가 되긴 했습니다. 아이는 있는지 물었더니, 벌이가 시원찮아서 아직 아이를 갖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일은 하고 있지만 일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 눈치였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짧게 끝났지만 여운은 오래 남았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사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을까?
그러면서 얼마 전 만났던 다른 젊은 친구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였는데, 어려서 미국에 갔고 미국의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좋은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공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공과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학위를 가진 분들이 수업 내용을 함께 듣고 타이핑을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미국에서 받았던 혜택을 우리나라의 장애인들도 누렸으면 좋겠다며, 미국을 마다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지만 큰 꿈이 있었고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주위에 돕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다시 법을 생각해 봅니다. 법을 바꾸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저의 생각은 항상 법에서 출발하지만, 법은 역시 최소한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뿐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권리구제가 확대되면서 장애인의 권리가 더 확대될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법은 더 높은 수준의 권리확보를 위해 개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미국에서 경험했다는 바로 그것이 법을 통해서 가능할까? 저는 그 해답이 꼭 법에만, 정부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의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께서 저희 법무법인의 공익위원회에 오셔서 세미나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박 변호사는 영국의 사회적 기업을 둘러보고 오신 얘기를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꼭 돈을 받고 국가의 일을 해야 공무원이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영국에 가 보았더니 너무나 많은 사회적 기업에서 보통은 국가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역사회의 변화가 지방정부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으로부터 시작되는 많은 사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회혁신의 출발점도 정부가 아닌 시민으로부터였다고 했습니다. 국가와 시민단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사회적 기업을 하겠다는 분들의 목적이야 다양하겠지만, 아무튼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면 흐뭇할 뿐입니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으로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도입에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인증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 정부의 자금력도 문제입니다.
최근 들어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러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분명히 사회적 기업이 우리 사회의 혁신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이제 막 결혼한 젊은 그 친구를 생각해 봅니다. 그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뭔가의 아쉬움이 저에게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꿈 많던 고등학생을, 그렇게 남을 돕기 원했던 청년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도왔는가? 법만으로 할 수 없다면, 도울 수 있는 사람들, 도울 수 있는 단체들을 법이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회의 건강한 변화가 뿌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이제 막 시작하는 사회적 기업의 영역부터라도 법이 제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때때로는 법으로 보는 세상이 다툼과 갈등이 아닌 소망과 미래였으면 싶습니다.
거의 7~8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지만, 듣자마자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형, 누나들 사이에서 힘들었을 텐데도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친구였습니다. 집이 멀었지만 모임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전화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근황을 물었더니 벌써 결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처음 만난 게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결혼을 할 때가 되긴 했습니다. 아이는 있는지 물었더니, 벌이가 시원찮아서 아직 아이를 갖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일은 하고 있지만 일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 눈치였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짧게 끝났지만 여운은 오래 남았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사는 게 많이 힘들지는 않을까?
그러면서 얼마 전 만났던 다른 젊은 친구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였는데, 어려서 미국에 갔고 미국의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좋은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공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공과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학위를 가진 분들이 수업 내용을 함께 듣고 타이핑을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미국에서 받았던 혜택을 우리나라의 장애인들도 누렸으면 좋겠다며, 미국을 마다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지만 큰 꿈이 있었고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주위에 돕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다시 법을 생각해 봅니다. 법을 바꾸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저의 생각은 항상 법에서 출발하지만, 법은 역시 최소한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뿐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권리구제가 확대되면서 장애인의 권리가 더 확대될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법은 더 높은 수준의 권리확보를 위해 개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미국에서 경험했다는 바로 그것이 법을 통해서 가능할까? 저는 그 해답이 꼭 법에만, 정부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의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께서 저희 법무법인의 공익위원회에 오셔서 세미나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박 변호사는 영국의 사회적 기업을 둘러보고 오신 얘기를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꼭 돈을 받고 국가의 일을 해야 공무원이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영국에 가 보았더니 너무나 많은 사회적 기업에서 보통은 국가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역사회의 변화가 지방정부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으로부터 시작되는 많은 사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회혁신의 출발점도 정부가 아닌 시민으로부터였다고 했습니다. 국가와 시민단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사회적 기업을 하겠다는 분들의 목적이야 다양하겠지만, 아무튼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면 흐뭇할 뿐입니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으로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도입에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인증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 정부의 자금력도 문제입니다.
최근 들어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러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분명히 사회적 기업이 우리 사회의 혁신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이제 막 결혼한 젊은 그 친구를 생각해 봅니다. 그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뭔가의 아쉬움이 저에게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꿈 많던 고등학생을, 그렇게 남을 돕기 원했던 청년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도왔는가? 법만으로 할 수 없다면, 도울 수 있는 사람들, 도울 수 있는 단체들을 법이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회의 건강한 변화가 뿌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이제 막 시작하는 사회적 기업의 영역부터라도 법이 제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때때로는 법으로 보는 세상이 다툼과 갈등이 아닌 소망과 미래였으면 싶습니다.
작성자조원희 (변호사 태평양 공익위원회 장애인팀장)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