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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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잠시 미국에서 공부할 때의 경험입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기 때문에, 각자가 여러 보험회사의 보험 중 적당한 것을 골라 보험에 가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학생이다 보니 치과 등과 같이 비용이 많이 드는 보험에는 가입을 못하였습니다.
제가 이가 좀 약한 편이라 이를 닦는다고 닦아도 충치가 자주 생기는 편인데, 한 번은 언젠가부터 이에 통증이 생겼습니다. 충치를 의심했지만 그렇다고 치과는 보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에 갈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편의점에 가서 치과 병원에서 사용하는 갈고리 같은 도구 등을 사와 충치로 의심되는 부분을 긁고 나름의 약물치료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둘째 아이의 뒷머리가 침대의 모서리에 부딪혀 찢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같으면 얼른 병원에 데리고 갔을 텐데 그때는 선뜻 병원으로 가지 못하였습니다. 미국의 의료비가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바가지를 쓸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보험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자체적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며칠 기다려 보기로 했고 다행히 별 문제 없이 아무는 것 같아 병원 신세는 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랬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때는 낯설고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가입한 보험도 사용하기 어려웠고, 보험에 가입되지 않는 질병은 참거나 뭔가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다른 한편으로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보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장애인의 보험가입과 관련한 논란이 많습니다. 대부분은 보험가입을 거절하여 발생한 사건들인데 어디까지가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보험계약의 특성이나 계약 자유의 원칙상 허용되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어떤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다 보니 보험에 가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험금 지급의무가 발생되는 보험사고에 해당 장애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이 되어 보험가입이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장애등급을 기준으로 보험사고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각장애가 심하면 사망과 같은 정도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어떤 장애인은 장애가 진행되고 있고 보험사고와의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하여 거부되기도 합니다. 보험사고가 발생한 가능성이 높으므로 보험가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험료를 할증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안이 있을 것인데, 단지 보험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보험가입이 거부되었던 사례에서 법원은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에 기초하여, 장애 정도를 고려하여 보험가입 여부를 판단하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보험의 성격, 장애의 상태와 정도, 장애와 보험사고의 인과관계, 보험사고의 개연성에 대한 위험측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등을 고려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가입의 거부가 현행 법령에 따라, 또는 보험감독관청의 규정에 의해, 또는 감독관청으로부터 승인받은 보험약관에 의해 가능한 상황이라면 쉽게 차별이라고 판단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장애인의 보험가입의 문제는 단지 차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보다 근본적으로 장애인의 보험가입이 가능하도록 법제도적인 정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장애와 보험사고의 인과관계나 보험사고의 개연성에 대한 위험측정을 고민하여 장애인의 보험가입에 대한 전향적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시각장애가 심하다고 하여 생명보험의 가입이 거부될 수는 없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다고 하여 일반적인 건강보험의 가입이 거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함을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겪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보험이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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