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삼켜버린 척수장애인의 꿈, 최중증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으로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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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4일 오전 5시 경, 강원도 원주에 사는 경수5번 손상 전신마비 척수장애인 김모씨가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연기에 질식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홀로 살던 피해자 김씨는 당시 불이 나자 전신 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미처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119 상황실에 신고도중 화마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는 가족의 도움 없이 자립하여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한 환경에 처해있는지, 목숨을 담보로 얼마나 열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19 신고 후 도움의 손길이 도착할 때까지, 자신의 집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다가오는 화기와 연기에 맞서 홀로 신음하던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며 지금의 현실을 개탄한다. 혼자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오다 예상치 못한 변고에 꽃이 져버린 김씨의 사연에 분노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중증장애인들이 처해있는 이 사회의 현실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김씨는 평소 지역 내 자립센터에서 한정된 시간의 활동보조 도움을 받아 생활을 해왔다고 전해진다. 만약 사건이 일어난 그 시각, 그의 옆에서 이동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변재(變災)이다. 그는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안고서도 자립을 꿈꾸며 최소한의 생활양식을 통해 삶을 이어가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며 살아갔어야 할 그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김씨의 사연과 같이, 지금의 복지정책은 우리나라 장애인들을 목숨을 내 건 사지로 매몰차게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부는 장애인복지예산 부족을 핑계로 활동보조서비스 신규 신청을 받지 않거나, 활동보조시간 추가 신청을 했다가 장애등급이 내려가는 사태를 발생케 하고 장애등급이 내려가면 활동보조 지원을 중단하는 등의 몰지각한 제도장치로 장애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권리를 짓밟고 있다.
김씨와 같은 최중증 장애인에게 있어서의 활동보조서비스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며, 생존의 필요수단이다. 이러한 어이없는 죽음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비책을 이제라도 빨리 강구해야한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최중증 장애인에게 24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보장함은 물론, 추가시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시간을 늘려주기 위한 체계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야간이나 명절에 활동하는 활동보조인들에게 보조수당을 지원하여 인력의 원활한 운용을 가능케 함으로써 양질의 활동보조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하여 중증장애인들이 24시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될 수 있도록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김씨의 죽음을 통해 또 한번의 깨달음을 얻었다.
정부는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0. 10. 7
사단법인 한국척수장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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