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현이의 영국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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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영국에 온 지도 오는 8월이면 3년이 된다. 그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경험했지만, 아직도 매일 새로운 것들을 알아 가며 살고 있어 하루하루가 늘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 가족은 나의 학업, 컨덕티브 에듀케이션 (conductive education, 전인적 통합 특수 교육 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이곳 영국 버밍험에 왔으며, 3년 과정인 나의 학업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우리 가족은 준현이(12)와 아내(정수진) 그리고 나 (배상억) 이렇게 단출한 세 식구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우리 준현이를 소개 하자면, 준현이는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아주 명랑 쾌활한 청소년이다. 준현이는 이곳에서 중학교 과정의 특수학교에 재학하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무척 즐거워하는 모범 학생이다.
처음 영국에 와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준현이의 교육 문제였는데, 생각과는 달리 한국에서 학교생활의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잘 적응해 주어서 너무 자랑스럽다. 준현이의 적응과정을 지켜보면서 역시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도전하고 경험해 보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의 능력을 절대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준현이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준현이 스스로가 심리적 정서적으로 자기 나이에 맞는 대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준현이의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늘 어린아이처럼만 대해 왔는데, 이제는 더욱 준현이의 성장을 인정하며 우리의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을 아는 주변 분들도 이러한 변화에 놀라며 좋은 교육환경에서 준현이의 학습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기뻐했다.
이러한 심리적 정서적 성장의 배경에는 학교생활 외에도 다른 요인이 있었다. 작년부터 시작한 6주마다 하는 레스파이트 케어(respite care, 단기 보호 서비스)를 통해 준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부모인 우리도 그전 같았으면 준현이를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기보다는 주변 환경을 준현이에게 친숙하게 바꾸려고만 했었다. 아직도 그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섭식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있는 중이지만, 그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생각은 ‘준현이가 충분히 똑똑한 아이라서 멀지 않은 시간에 섭식문제도 해결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한다.
날씨가 불규칙한 영국에서는 5, 6월이 가장 날씨가 좋은 시기인데 학교에서는 중간 학기 방학을 일주일간 실시한다. 우리 가족은 그 동안 나의 학업으로 인해 많이 다녀 보지 못한 영국 구석구석을 이번 방학기간 동안 함께 다녀 볼 생각이다.
준현이가 얼마나 나들이를 좋아하는지, 늘 가는 곳도 가끔은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낯선 길을 선택할 때면 행여 어디 다른 곳에라도 가나 하는 기대감으로 좋아서 크게 웃곤 한다. 이번 방학에는 준현이와 마음껏 다닐 수 있게 되어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버밍험의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국제학생들과 가족을 위한 기숙사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에서 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가끔 정원에서 바비큐파티와 같은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악센트의 영어를 접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경험한다.
대부분이 학생신분이라서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신분을 알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준현이를 보면 항상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며 많은 관심을 보여주는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쉽게 사람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
준현이도 세계 각국에서 엄마, 아빠를 따라온 다른 아이들과도 방과 후에 기숙사 앞마당에서 함께 어울려서 워킹프레임으로 운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소소한 일상 속의 이야기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이곳의 문화와 환경은 한국 생활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함께걸음을 통해 우리가족이 준현이와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하도록 노력하겠다.
글쓴이: 배상억 (뇌병변장애인의 아버지로 영국의 한 대학에서 낯설지만 장애아 교육에 꼭 필요한 ‘전인적 통합 특수교육(conductive education)’ 시스템을 전공하고 있다. )
작성자배상억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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