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강화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 규탄한다! > 대학생 기자단


장애등급제 강화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 규탄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성명서]

본문

지난 4월 28일 국회에서 장애등급 재판정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동안 시행규칙에 의거하여 진행되었던 장애등급심사가 장애인복지법상에 “장애인정과 장애등급사정이 적정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정도에 관한 정밀심사를 의뢰할 수 있다”는 규정과 근거를 갖게 된 것이다.

허위 장애등급과 부정수급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장애인연금과 활동보조서비스 등 복지제도들이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등급에 대한 엄격한 사정의 근거와 담당기관에 대한 법률적 위임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한 법 개정이다.

사실 장애등급심사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중증장애인에 대한 판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도 그럴듯해 보인다. 장애인에 대한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러한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장애를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로만 사고하고, 의료적 기준으로 규정하고 판별하고, 그에 따른 획일적 대응을 마치 합리적인 복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번 장애인복지법개정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장애의 사회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고 의료적 기준으로 장애인의 몸을 등급화하는 장애인등급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장애인 개인의 욕구와 생활환경이 파악되고 고려되어 장애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개인별 서비스사정과 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선진화된 복지를 지향하기는커녕, 정부는 반대로 장애인의 몸을 저울에 달아 등급을 매겨 관리하겠다는 오만한 발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복지를 축소하기 위한 행정 편의적 장치이다.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복지는 언제나 1급, 2급 혹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임의의 등급에 의한 제한을 합리적인 것인 양 위장해왔던 것이다.

장애등급심사의 목적은 예산의 절감과 복지축소일 뿐이다.

최근 3년간의 장애등급 위탁심사에서 등급이 하락된 사례는 무려 37.5%에 이르고, 상향조정 사례는 0.4%에 불과하다. 중증장애인의 숫자를 줄이겠다는 명백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장애인연금을 확대해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생활의 곤란을 겪는 장애인을 줄이고, 활동보조서비스를 확대해서 일상 활동에 불편을 겪는 장애인의 수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1급과 2급 중증장애인의 수를 줄이겠다는 기만적 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심사, 아니 장애인등급제의 의료적 기준을 신뢰할 수 없다.

현행 장애등급심사의 기준은 형평성의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혼자서 거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2급으로 하락되어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되는 심각한 사태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신적 장애 영역에서 획일적 의학적 기준을 설정하거나 적용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동작 수행능력을 묻는 의료적 기준만으로 장애인의 삶의 환경과 욕구는 올바로 표현될 수 없다. 걷는 ‘동작’이 가능한 뇌병변장애인이 목적지까지 가는 ‘행위’는 어려울 수 있고, 같은 1급 시각장애인이라도 흰 지팡이와 점자를 이용하여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과 보조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의 욕구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이 모든 삶의 행위를 무시한 일시적 저울질이 형평성을 가질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판정표의 기준개정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의료적․기계적․차별적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장애등급심사로 인한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장애인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 아무런 비판과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된 현실에 우리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활동보조서비스와 장애수당이 없으면 생존에 심각한 위협에 처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지금 복지제도의 확대가 아닌 장애등급심사의 공포에 떨고 있다. 그동안 받아왔던 활동보조가 끊기게 될까봐 장애수당 신청을 못하고, 장애수당이 깎이게 될까봐 활동보조 신청을 포기하고, 자립생활을 꿈꾸던 장애인이 시설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가 의도한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라는 것의 본질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정부는 장애등급심사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장애인에게 부담지우고, 등급심사기간 동안 서비스신청 자격을 제한하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 이념과 기준, 집행과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장애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등급제를 강화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은 구시대적 인식과 체계와 관행을 공고히 해줄 뿐이다. 그것은 합리성도 효율성도 아닌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기만적 기계장치일 뿐이다.

혼자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생계에 곤란을 겪는 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1급 장애인 혹은 2급 장애인이라는 낙인 때문이 아니라 개인이 필요로 하고 그것이 사회적 권리이기 때문에 사회서비스를 받아야하는 것이다.

장애등급심사를 강화하는 모든 계획과 시도들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몸을 저울에 달아 등급을 매기는 차별적 시스템은 즉각 해체되어야 한다.

장애등급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장애인의 환경과 욕구를 파악하는 개인별 사정체계, 개인별 지원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의식과 그것을 공고히 하는 시스템의 해체를 위해 우리 장애인들은 투쟁할 것이다. 더 이상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아닌 한 사람의 보편적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장애등급제를 철폐시키는 투쟁을 할 것이다.

2010. 4. 3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작성자함께걸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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