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위하여
본문
서른 다섯, 아직은 젊은(?) 나에게 이 푸르른 5월은 견디기 힘들만큼 아름답다. 요 며칠 저 푸른 기와 아래의 못생긴 설치류마냥 제멋대로인 날씨 덕에 지구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 황사가 섞인 비바람과 함께 매서운 추위가 몰려오는가 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따사로운 햇살에 두꺼운 옷 입고 나온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 다시 봄이 왔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봄은 사람의 마음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계절인지, 그가 느껴지는 곳 어느 곳이든 연인들의 달콤한 핑크빛 향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내 주변에서도 여기저기 새로운 연인들이 생겨나고, 결혼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 홀로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내 마음과 얇은 지갑에 빈자리를 더욱 키운다.
한 선배에게 그런 마음의 공허함을 호소하자 “그럼 너도 다시 연애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여기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괜찮은 여성들은 다 ‘품절’이더라. 그리고 나 같은 ‘불량 있는 재고품’들은 취향이 독특하거나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 아니면 찾지도 않는다.”
순간 ‘아차’ 한다. 소위 ‘진보적’ 활동가의 자기검열 시스템이 작동한 것. 얼른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자본주의의 용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반어법을 활용한 농담을 덧붙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심각하다. 장애운동을 한답시고 나름 차별에 민감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인 나조차도 이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사람을 상품화 시키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의 가치를 ‘상품성’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행태 때문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을 뿐, 평소의 말이나 행동으로 체화하고 있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든 것이다.
몇 년 전 나에게 너무나 사랑했던 비장애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도 나를 사랑했고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들은 나의 장애와 그로 인한 경제적 능력의 부재-사실 여부와 관계없이-를 근거로 그녀가 나와 결혼해서 고생하며 살아갈 것이라 판단하고 그것을 지켜만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우리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결혼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나의 말과 행동에는 차별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에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은 장애인들끼리 결혼하거나 연애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럴 경우 대부분 서로에게 가중되는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결혼과 연애에 있어 장애인과 그 가족들 스스로조차 같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경향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수의 장애인들, 또 그 가족들이 자신의 결혼상대 혹은 연애상대로 자신보다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꺼려한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정도가 심한 장애인끼리 사귀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물리적,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경제력이 조금 있는 장애인들-물론 대부분 장애남성들이다-은 돈을 들여서 동남아나 중국의 여성들과 결혼하기도 한다. 그렇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도 있지만 내 주위의 경우에는 결혼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이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기 나라로 도망치거나 우리나라 국적을 따고 나면 숨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많은 경우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해서라 알고 있다. 결혼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타인을 가족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임에도, 그들 이주여성들을 마치 장애남성의 시종이나 가족들의 노예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돈을 주고 사온 여성이니 그래도 된다는 저급한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실제로 한국 남성이 지불한 돈은 결혼정보업체에서 가져가는 소개비용이지 상대여성이나 그 가족에게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심지어 어떤 장애인부모는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이 결혼적령기가 되어도 적절한 여성을 만나지 못할 것을 미리 걱정해 ‘지적장애여성이랑 결혼하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가족으로서 아들의 배우자나 자신의 며느리가 아니라 평생 장애가 있는 아들의 수족이 되어 줄 ‘말 잘 듣고 자기 의사표현 하지 않는 착한 시종’을 들이겠다는 이야기다.
이것 또한 사람을 경제적 능력의 여부, 또는 상품가치의 여부로 차별하는 경우로 앞서 내가 여자친구의 가족으로부터 경험한 차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이렇게 일상적으로 자신들이 당하는 차별의 잣대로 자신들도 모르게 또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지는 않을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소위 능력이 떨어진다 ‘판단된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이 사회에 문제제기하고 그것을 바꾸어내는 투쟁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투쟁하기 전에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먼저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사회 변화를 외친다면 그것은 큼지막한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칠지도 모른다.
이 잔인하게 아름다운 5월, 밖으로의 투쟁 못지않게 안으로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평등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봄은 사람의 마음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계절인지, 그가 느껴지는 곳 어느 곳이든 연인들의 달콤한 핑크빛 향기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내 주변에서도 여기저기 새로운 연인들이 생겨나고, 결혼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 홀로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내 마음과 얇은 지갑에 빈자리를 더욱 키운다.
한 선배에게 그런 마음의 공허함을 호소하자 “그럼 너도 다시 연애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여기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괜찮은 여성들은 다 ‘품절’이더라. 그리고 나 같은 ‘불량 있는 재고품’들은 취향이 독특하거나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 아니면 찾지도 않는다.”
순간 ‘아차’ 한다. 소위 ‘진보적’ 활동가의 자기검열 시스템이 작동한 것. 얼른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자본주의의 용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반어법을 활용한 농담을 덧붙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심각하다. 장애운동을 한답시고 나름 차별에 민감하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인 나조차도 이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사람을 상품화 시키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의 가치를 ‘상품성’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행태 때문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을 뿐, 평소의 말이나 행동으로 체화하고 있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든 것이다.
몇 년 전 나에게 너무나 사랑했던 비장애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도 나를 사랑했고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들은 나의 장애와 그로 인한 경제적 능력의 부재-사실 여부와 관계없이-를 근거로 그녀가 나와 결혼해서 고생하며 살아갈 것이라 판단하고 그것을 지켜만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우리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결혼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나의 말과 행동에는 차별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들 중에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은 장애인들끼리 결혼하거나 연애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럴 경우 대부분 서로에게 가중되는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결혼과 연애에 있어 장애인과 그 가족들 스스로조차 같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경향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수의 장애인들, 또 그 가족들이 자신의 결혼상대 혹은 연애상대로 자신보다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꺼려한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정도가 심한 장애인끼리 사귀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물리적,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경제력이 조금 있는 장애인들-물론 대부분 장애남성들이다-은 돈을 들여서 동남아나 중국의 여성들과 결혼하기도 한다. 그렇게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도 있지만 내 주위의 경우에는 결혼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이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기 나라로 도망치거나 우리나라 국적을 따고 나면 숨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많은 경우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해서라 알고 있다. 결혼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타인을 가족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임에도, 그들 이주여성들을 마치 장애남성의 시종이나 가족들의 노예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돈을 주고 사온 여성이니 그래도 된다는 저급한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실제로 한국 남성이 지불한 돈은 결혼정보업체에서 가져가는 소개비용이지 상대여성이나 그 가족에게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심지어 어떤 장애인부모는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이 결혼적령기가 되어도 적절한 여성을 만나지 못할 것을 미리 걱정해 ‘지적장애여성이랑 결혼하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가족으로서 아들의 배우자나 자신의 며느리가 아니라 평생 장애가 있는 아들의 수족이 되어 줄 ‘말 잘 듣고 자기 의사표현 하지 않는 착한 시종’을 들이겠다는 이야기다.
이것 또한 사람을 경제적 능력의 여부, 또는 상품가치의 여부로 차별하는 경우로 앞서 내가 여자친구의 가족으로부터 경험한 차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이렇게 일상적으로 자신들이 당하는 차별의 잣대로 자신들도 모르게 또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지는 않을까?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소위 능력이 떨어진다 ‘판단된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이 사회에 문제제기하고 그것을 바꾸어내는 투쟁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투쟁하기 전에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먼저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사회 변화를 외친다면 그것은 큼지막한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칠지도 모른다.
이 잔인하게 아름다운 5월, 밖으로의 투쟁 못지않게 안으로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평등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작성자김주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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