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을 옥죄는 대한민국 법치의 기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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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용산 망루 농성 철거민 항소심 선고에 부쳐
과도한 진압을 ‘경찰의 합리적 재량’으로 해석한 사법부
사법부는 또다시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작전에 면죄부를 주었고, 엇갈리는 진술들 속에서 단편적인 몇 가지 진술들만을 취하여 화재참사의 진상을 은폐하였다. 2009년 1월 20일 당시 특공대원과 컨테이너 박스를 동원한 대대적인 진압작전이 적법한 공무집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오로지 ‘경찰의 합리적 재량’이었다.
지역의 철거민이 제대로 된 보상절차 없이 나가떨어지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뽑아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재개발 조합의 파수꾼 노릇을 한 경찰이 공공의 이익을 수행한 ‘합리적 행동’을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테러진압부대인 경찰 특공대원의 투입은 ‘테러범은 아니지만 위험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의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해석하였다.
진압과정의 준비가 ‘다소 미흡하지만’ 이마저도 ‘경찰의 합리적 재량권 행사’의 영역으로 존중되어야 하며, 1차 발화가 발생한 이후인 경찰 특공대의 2차 진입과정도 ‘면밀한 점검은 부족’했지만 ‘경찰의 합리적 재량’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철거용역이 경찰 대신 소방호스를 들고 살수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지만 경찰이 이를 몰랐거나 방치한 것 말고는 잘못이 없다고 했다.
충분한 협상 시도조차 없는 무리한 진압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경찰은 협상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한번 얘기했는데 경찰이 우선 철수하라는 주장에 결렬된 것뿐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경찰은 ‘조금 판단을 잘못한 것 말고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이다. 철거민 다섯 명, 경찰관 한 명이 사망한 참사는 농성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망루 내로 무리하게 진입하려 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없었다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너무나도 명백한 진실을 어찌 그토록 뻔뻔하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발화 원인은 ‘아마도’, ‘여전히’, ‘어쩐지’ 화염병이었을 것이다?!
대형 참사로 이어진 망루 화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는 철거민열사들과 경찰을 죽음으로 내몬 직접적 원인을 밝히는 요소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경찰 특공대원조차 보지 못했다는 화염병을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제시한 여러 정황적 근거들을 검토한 후에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화염병’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당시 현장 상황이 매우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급박하였으므로, 피고와 증인들의 진술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는 것도 어렵다는 점도 인정하였다. 대부분의 망루 농성자들과 진압 경찰들은 망루 내부에서 화염병에 의해 불이 난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심문과정 초기 일부 피고인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재판부는 오늘 ‘화염병에 의해 불이 난 것이 맞다’고 주장하였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근거조차 없는 상태에서 또다시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성 판결을 1심에 이어 반복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망루 농성 철거민들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의 혐의로 또다시 3-5년의 중형이 선고되었다. 구속 철거민들에 대한 양형사유를 밝히며 판사는 뻔뻔하게도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민들의 막대한 피해에 대해 가슴 아프다는 표현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시장경제를 명시하고 있으며, 있는 법이 불충분하다고 법을 어겨도 좋다는 생각은 불법천지를 낳는다며, 딱한 사정을 가지고 입법청원이라도 하시지 그랬냐며 너스레를 부렸다.
우리의 저항과 연대만이 또 다른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오백일이 다 되어간다. 일 년 동안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던 열사들을 보내 드린 지 이제 넉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토요일에는 열사들의 묘비 제막행사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용산참사의 진실은 항소심까지 거쳐 오며 법정공방을 벌여왔지만, 스스로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정치검찰과 권력의 하수인 사법부에 의해 은폐, 왜곡되고 있다. 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법이 미흡하더라도 합법적인 방식으로 요구할 것이지”, “무슨 결과가 발생했든 경찰은 합리적인 존재이고 마음껏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엄격하고, 돈 많고 권세 있는 자들에게는 헐렁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다시 한 번 똑똑히 보았다. 그 잘난 법제도를 만들어내기까지, 상계동에서, 봉천동에서, 전농동에서, 도원동에서 싸우고 다치고 잡혀가고 죽어간 사람들이 숱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또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해서도, 앞으로 또 다른 희생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개발이익에 눈 먼 자들이 벌이는 개발잔치에서 밀려나는 철거민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살인적인 재개발에 제동을 걸고,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생존권을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 그것이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는 길이다.
2010년 5월 31일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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