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운동을 하는 모든 金군에게 다시 쓰는 편지 > 대학생 기자단


장애인 운동을 하는 모든 金군에게 다시 쓰는 편지

[기고] 우리 자신의 파시즘과 의사소통부재도 비판할 줄 알아야

본문

金군, 잘 지내고 계십니까?
우리가 함께 장애인 운동을 시작한지도 이제 15년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2010년을 시작하는 지금, 그 15년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많은 성찰과 함께 깊은 고민에 아직 오지 않은 봄날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그 고민과 회한에 묻혀 지치고 조용한 30대 후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15년, 홍콩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최초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대학 신입생 때 개정된 특수교육 진흥법이 드디어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으로 재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이름 모를 장애인생활시설에서의 의문사와 학대 사건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장애인 단체의 본연의 임무를 잊은 권력 다툼과 비리도 여전합니다. 4월이 다되었건만 여전히 우리의 따뜻한 봄은 지각하고 있는 이 때, 金군 당신의 그 해맑은 얼굴과 뜨거운 열정을 기억하며 당신과의 설레는 첫 만남과 인연을 떠올리며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95년 3월, 우리가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참가한 집회에서 접한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 열사의 분신과 죽음, 투쟁이 아직도 때때로 떠오르고는 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건만 지금도 국회 앞에서, 정부청사 앞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또한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차가운 칼바람 맞으며 현장에서 장애인과 함께 하고 있을 金군에게, 현장을 떠나고 활동도 거의 하지 않은 제가 그 15년의 반성과 안타까움이 자꾸만 묻어난 것은 왜 일까요?

그 십년간 저의 가장 큰 화두는 ‘소통과 연대’였습니다.

장애인으로 35년 남짓 살아오면서 너무나도 지리한 장애인단체끼리 장애인 당사자들 간의 질시와 반목, 갈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인 운동에서 필요한 것은 ‘성과’와 분배된 ‘파이’보다 무엇보다도 우리들끼리의 상호 소통과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끼리의 분열은 국가나 사회를 향해 어떤 투쟁을 한다고 해도 결국 구걸과 동냥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니까요.

상호 소통과 연대는 각 단체와 개인이 각자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량과 색깔이 더욱 빛을 발하여 더욱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金군의 소망과 이상 여전히 항상 머리맡에 있겠지요?

金군은 저에게 항상 ‘연대’에 약하다고 우스개소리로 놀려대곤 했었지요?

21세기 사회운동의 화두가 각기 다른 단체들끼리의 연대’요, 각자의 이익집단적으로 개별 성장해 온 장애인 단체가 진정한 사회 발전에 기여할 할 수 있는 길도 바로 연대 활동이라고 金군은 늘 주장해 왔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金군 말에 동의했었지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저는 연대활동 자체에도 서툴뿐더러 조직에서의 여러 활동 역시 미숙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매번 연대를 제안하고 사람을 모으며 조직을 구성하면서 일을 해야만 했던 것이 활동가의 역할이요 사명이었습니다.

저나 제가 소속된 단체가 중심으로 연대를 제안하면서 연대의 대표이면서 실무자이기도 했었고 기존의 연대 조직의 참여 단체의 활동가였다가 연대 전체의 활동가가 돼 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만큼 기반이 약하고 역사도 짧은 현재의 장애인 운동의 한계에서 연대조직의 구성과 활동은 金군의 주장대로 너무나도 중요한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와 같은 장애인당사자 활동가로서는 더욱 더 말입니다. 그런 연대단체들은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시민사회단체가 보여주지 못한 성과와 운동을 우리 사회에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金군, 그 연대의 힘과 에너지들은 또한 우리 같은 활동가들을 지치게 한 것은 아닌 지 반성해 봅니다. 또한 그것이 궁극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회 진보에 얼마나 기여하였는가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때로는 각 단체의 수장들은 연대의 경험과 능력을 따지기보다 연대가 안겨주는 힘과 성과에만 집중합니다. 활동가들 역시 현장에서 사람들과 각 단체들 간의 이견들을 조율하고 갈등하며 밤새워 일을 하면서도 정작 왜 연대가 필요한지, 무엇이 바람직한 연대활동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연대를 구성해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고민할 기회마저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장애인 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그 이름조차 지키지 못하고 사라져 간 장애인운동의 그 수많은 연대 단체들, 우리가 꿈꾸었던 각 대학들의 장애인 자조조직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장애인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수도 15년이 지난 지금 그다지 많아지고 다양하지는 못한 것 역시 가슴이 아픕니다.

또한 우리의 뒤를 이을 젊고 새로운 후배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지 못한 것도 마음을 시리게 합니다. 연대 조직이 커지고 일이 많아질수록 심지어 우리와 같은 활동가들이 힘을 받지 못하고 서로간의 인간적인 관계마저 악화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지는 않은지요?

냉철하게 보면 장애인 운동을 하는 우리들이 가장 약하고 부족한 부분이 ‘연대’ 활동과 소통입니다.

장애인 운동은 아직 시민사회운동의 일부분으로 녹아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장애인 운동을 하는 단체 역시 시민사회단체의 한 구성원으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하고 있지 못한 것 또한 안타깝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金군과 저와 같은 많은 활동가들은 연대 활동에 치이고 단체에 묻혀 버려서 끝내는 자신감과 정체성을 상실해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열정과 의지 부족으로만 한 개인을 공격하고 합리화하기도 참 많이 했습니다.

金군, 저는 지난 15년간 그렇게 많은 연대 활동을 하면서도 아직 한 번도 무엇이 연대 활동의 의미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를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좋은 연대와 소통의 방법이 무엇인지 모른 채 여전히 미숙하고 소모품처럼 지쳐버린 활동가들의 자화상을 우리 스스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하는 질문을 가끔 해 보곤 합니다.

저는 이제 다 방전되어 다시 충전하기 조차 어려운 밧데리 같기도 하고 마냥 혼자 길을 가는 길손 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장애인 운동에 있어 사라져가는 활동가들의 뒷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 또한 연대체의 활동가였지만 오로지 연대의 목표와 성과만 중요하다고 말해 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하여 봅니다. 그래서 몇년동안 연대를 밥 먹듯이 반복해 왔어도 여전히 ‘연대’가 뭔지 모르고, 연대의 실체를 잘 느끼지 못하고 활동해 온 것 아닌 지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대부분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목표와 성과가 너무나도 시급하고 절박하기 때문에 그 안의 민주적인 논의 과정이나 활동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들을 곧잘 합니다.

연대활동에 책임을 맡고 있는 활동가들은 종종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에 직면해야만 했었습니다. 연대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우선하기 보다는 업무 추진의 효율성과 성과에 매몰된 나머지 연대 자체의 의미를 잃고 몇몇 개인과 단체들에게 권력과 실무를 집중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실수를 우리는 일상처럼 범하며 활동해 왔습니다.

그러나 보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단체와 활동가들이 집행의 책임을 맡고 일을 끌어가는 입장이 마치 장애인을 기다려 주지 않고 지원해 주지 주지도 않은 채 달려 나갈 수 있다고 먼저 내달려 가버리는 비장애인들의 관점과 너무나도 겹쳐진다고 하면 제가 너무 비약하는 것이겠습니까? 국가와 사회의 독재와 권력집중은 비판할지언정 우리 내부의 우리 자신의 파시즘과 의사소통부재를 우리는 비판하지 못하였습니다.

장애인 운동에서 연대는 나름대로의 특수성과 경험들이 있긴 하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근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연대임을. 연대를 하는 궁극의 목적은 서로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공유하며 늘 주장하듯 어깨 걸고 함께 걸어 나아가는 것에 있을 것이라고 술잔만 기울이면 애기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연대라는 이름을 걸면 그것,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金군, 우리는 다시금 기억해야만 합니다.

金군, 당신은 그동안 저에게 늘 당부했습니다. 연탄은 결코 혼자서는 오래 타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번개탄이 불씨는 될지언정 아래연탄과 윗연탄의 서로간의 도움 없이는 한겨울 긴긴 밤을 따끈하게 대울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金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부디, 연탄 군불같은 가슴을 가진 사람으로 가장 오랫동안 남아주십시오. 한 때 그토록 뜨거웠던 활동가들과 단체들이 차갑게 식어만 갈 때, 서로서로를 데워주고 채워줄 수 있는 진정 성숙된 군불 같은 연대를 해 나갈 수 있는 활동가가 되어주십시오. 그래서 그 뜨거웠던 열정을 잃어버려서 오지 않는 봄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놓고 방황하는 저를 다시금 따끈히 데워주십시오.

金군, 당신의 군불을 저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처음만나 뜨거운 가슴으로 결의하던 그날의 따뜻한 기억으로 이 못난 선배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저에게 남은 마지막 불씨를 다시금 활활 지필 수 있는 뜨거운 답장을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작성자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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