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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끼리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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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다. 하지만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뀐들 고통 받는 장애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 생각 끝에 이제는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설적으로 장애인들끼리라도 어울려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봐야 하지 않겠나 라는, 다소 비관적인 결론을 떠올리게 됐다.

 
장애인 운동의 거대 담론은 완전한 사회참여다. 그러나 평등을 전제로 한 장애인들의 완전한 사회참여는 여전히 가능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장애인들의 생활형편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는 선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아 머쓱하긴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장애인 운동도 거대 담론보다는 장애인들이 직면해 있는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운동의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운동이 해결해야 할 실생활의 문제는 장애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겪는 고통을 어떻게든 덜어주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이 시점에서 근원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지금 이 땅의 장애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을 향한, 나쁘게 말하면 동정이고 좋게 얘기하면 연민의 감정이 그나마 힘든 장애인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절대 폄하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오해가 없길 바라는데, 장애인을 위해 고용촉진법이 있고 차별금지법이 있고 복지법이 존재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법과 제도 모두 장애인들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법과 제도는 장애인들이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하나의 보완책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친 김에 비관적인 얘기를 하나 더 하면, 어차피 세상은 비장애인들이 주도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명확하고 완고한 선이 그어져 있고, 보편적인 경우를 얘기하면 많은 장애인들이 그 선을 뛰어넘으려고 발버둥치며 애쓰다가 지쳐서 스러져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실상이 이런데도 장애인 운동은,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지나치게 완전한 사회참여라는 거대 담론에만 매달려 있다. 그러기에는 지금 장애인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완전한 사회참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도 제기될 법한데 여전히 화두는 사회참여다.

이 점에서 필자는 일본의 장애인들이 부럽다. 일본에는 차별금지법도 없고, 일본은 유엔의 장애인 권리 조약도 비준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본의 장애인들은 잘 먹고 잘 산다. 경제 위기를 겪는 것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본도 지금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는 장애인들이 겪는 실생활의 문제인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장애인 연금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국가에 어려움이 닥쳐도 사회적인 합의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기본적인 사회보장 틀을 흔들고 무너뜨릴 수는 없기 때문에, 일본의 중증장애인들은 국가로부터 매달 1백만원 이상의 장애 연금을 꼬박꼬박 받아 경제위기에도 끄덕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
일본이 부러운 것은 비단 장애연금 때문만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 필자는 일본에 갔을 때 인상 깊은 장면을 목격했다. 일본의 장애인들은 장애 연금을 받기 위해 싸웠고, 더불어 일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싸웠다. 그래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소규모 장애인 작업장으로 술을 파는 주점 같은 공간을 마련했다. 오사카에 있는 장애인 작업장이기도 한 그 술집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 저녁 영업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이 그 술집에 모여들었다. 그 공간에서 장애인들은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필자는 그 장면을 보면서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들끼리 어울려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단 전제는 허울뿐인 법과 제도가 아닌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생활비에 근접한 장애연금과 일할 공간을 우리도 싸워서 확보한다는 가정 아래서, 장애인들끼리 어울려 한번뿐인 인생을 사는 것도 크게 탓할 일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어설픈 사회참여가 아닌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게 무엇인지, 장애인들에게 정말 중요하고 당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게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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