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의 제한, 비장애인의 편의적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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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쯤의 일인 것 같습니다. 저녁에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역에서 이동권 확보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시위대가 경찰에 포위되어 있으니 한번 와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 했던 시위로 기억합니다. 가보니 장애인들이 서로를 줄로 묶고 해산에 대항하고 있었고 경찰들은 이들을 포위한 채 난감해 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의 변호사임을 자처하며 경찰에 상황을 문의하였더니 그저 문제없이 해산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시위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저는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동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게 ‘이동권’은 매우 낯선 용어였습니다. 헌법을 공부하면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기에 무시되었던 권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나선 이동권연대 활동가들. <함께걸음 자료사진> |
그리고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은 제3조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이동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동권’이란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이용하여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을 보면 제19조에 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금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법률과 마찬가지로 법에서 선언하고 있는 권리가 현실에서는 제대로 구체화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산’이라는 보이는 벽도 있지만, ‘차별’, ‘관행’ 등과 같이 보이지 않는 벽도 있습니다.
차별과 관행에 의해 막힌 장애인 이동권리
저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종종 저상버스를 탑니다. 그러나 한 번도 장애인들이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봅니다. 이 저상버스가 정말로 장애인을 위한 것인가.
예전에 미국에서 잠시 공부했을 때에도 저상버스를 많이 탔습니다. 그때는 장애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정류장에 서 있으면 버스 기사는 일일이 몇 번 버스를 기다리는지를 묻습니다.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의 경우도 서둘러 타고 내리는 법이 없습니다. 버스가 완전히 서면 그제서야 뒤에서 출입구로 걸어 나옵니다. 자전거를 가지고 타는 사람이 있으면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 동안 모두들 당연한 듯 기다려 줍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 저상버스가 도입되기 전이었습니다. 저는 저상버스가 도입되더라도 버스를 이용하는 문화가 달라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는 요즘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저상버스가 도입된 것도 많은 장애인들의 노력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었고, 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결국 한정된 ‘예산’을 고려하면 보다 효율적인 방안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함께걸음 자료사진> |
휠체어리프트 사고 관련 판결 중에서 휠체어리프트의 규격과 제원 및 운영방식 등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보았는데, 그런 판결이 나오면 판결의 당부를 떠나 바로 위와 같은 사항이 법령에 규정되도록 함으로써 다시는 그와 같은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동권의 현실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법적인 구제절차의 진행, 법령에의 반영 등이 순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판결을 보다 소개하고 싶은 문구가 있어 이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판결은 2년 전쯤 있었던 창원지방법원의 판결인데 대학에 재학 중인 석사과정 학생이 대학을 상대로 배려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입니다. 창원지방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는데, 이동권에 관한 비장애인들의 시각에 대한 비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방법으로 일상생활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일상생활에 있어 아무런 제약이 없어 비장애인에게는 그 존재의 가치조차 논의하지 아니하는 이동권이 단순히 예산상의 이유만으로 제약을 받는 것은 이 시대의 모순일 수밖에 없는 바, 이러한 모순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결할 문제로서 사람들의 조그마한 노력과 비용의 부담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므로 더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그 시기를 늦출 수는 없다 할 것이고,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초적인 이동권마저 비장애인과의 형평성 및 예산상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그 시기를 늦추려고 하는 것은 비장애인의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작성자조원희 (변호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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