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내리고, 화창한 여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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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미양 씨. 재일동포와 결혼해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
일본도 올해는 장마가 길어져 규슈 지방은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데, 이웃 나라다 보니 자연의 재해라는 것도 비슷하게 치루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느덧 한여름, 올해도 여름과의 치열한 더위 이기기 싸움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온도계 35도 정도는 가볍게 넘기는 오사카의 여름, 그 중에서도 습도가 아주 높아서 정말 한증막같은 더위를 실감하게 된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한겨울에 난로 없이는 살아도, 여름에 에어컨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오지요.
저 또한 오사카에서의 여름나기에 땀을 빼고 있습니다. 밤에도 열대야가 계속되고 습도가 높다보니 특히 이불은 밤마다 흘리는 땀에 젖어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한번 개서 올리려면 큰일이에요.
그나마 아이가 없을 때는 선풍기를 돌려서 통풍을 시키곤 했지만, 큰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하루 종일 이불 위에서 뒹구는 아이에게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자게 해주고 싶다는 강력한 모성이 끓어올랐지요.
“해가 잘 나는 양지에 이불을 말리자, 뽀송뽀송 이불을 말려서 아이의 뽀송뽀송한 살결에 신선한 햇님 내음을 맡게 하자.”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답니다. 먼저 이불을 문가에까지 끌고 갑니다. 그리고는 현관문에 놓은 휠체어에 싣는 거예요.
그리고 그 휠체어를 집 앞에까지 밀고 가 세워놓고, 유모차를 그 옆에 끌어다 붙여 놓은 후, 그 위에 이불을 엉거주춤 펴 놓습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한 손으로 하려니 이불이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이불 한번 내다 너는 흉내 내다가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버립니다. 힘-들-어-라!
재일동포인 남편따라 일본 오사카에 오기는 왔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눈에 보이는 외관이야 살면서 익혀 갔지만, 제도라든가 장애인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요. 남편과 둘이서의 살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될 수 있는 데로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내 힘으로 감당해 나가야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 해내는 것이 떳떳하다는 강박관념이었지요. 하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더군다나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자질구레하게 늘어나는 집안일이며 육아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 풀어가지 않으면 혼나는 과제가 되어 저를 억누르는 것 같더라구요.
장애가 없는 사람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들여야 감당하는 일상생활은 전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책임인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던 중, 아는 분으로부터 구청 사회복지과에 문의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을 들었어요. 가사나 청소 등 도움미를 요청할 수 있다고요. 1999년이니까 지금부터 10년 전이네요. 혹시나 해서 구청에 전화를 걸었어요. 그랬더니 한번 상담을 하러 오라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날 기억이 뚜렷이 나요.
무척 긴장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행정 담당자라고 해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신상 얘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어색함도 있었고, 당연히 찾아야 하는 권리라는 의식보다는 뭔가 도움을 청한다는 불편함도 있었어요. 저는 2급의 지체장애인 수첩을 발급받고, 복지과에도 등록이 되어 있었기에 담당자가 바로 저에게 어느 정도의 활동보조가 필요하냐고 묻더군요.
그 당시에는 세밀한 기준이 없어 창구에서의 면담내용에 따라 지원시간 등을 설정했던 것 같아요. 저는 장애인에 대한 제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다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도 몰라 우물쭈물 일주일에 한번 2시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청소와 이불 말리는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바로 그렇게 정하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곳에 파견을 요청하실 건가요?”
“저는 전혀 모르는데요. 복지과에서 소개해 주시는 곳은 없나요?”
“저희가 특정기관을 소개해 드릴 수는 없지만 현재 활동보조인 파견업무를 하고 있는 센터로 ㅇㅇ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이용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럼, 그곳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그렇게 해서 저는 파견업무를 하는 센터에 연락을 하고 그곳 담당자가 저의 집에 찾아와 계약서 작성, 활동보조인을 소개받아 주1회의 가사활동보조를 받게 되었답니다. 단 2시간이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그간 그렇게 고생을 하던 이불 널기도 부탁하고, 집 청소나 짐정리 등도 부탁했지요. 그와 더불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가사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밀어두었던 일들도 정리가 되어 마음이 정말 홀가분해졌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용에 대한 비용이 얼마인지 몰라서 조금 겁이 나기는 했어요. 한 달에 한번 비용청구서가 날아오는 게 아닌가, 아니면 몰아서 오나. 얼마나 내야하나…. 그렇게 긴장하면서 조심스럽게 활동보조인 제도를 이용했는데, 나중에 이 제도는 저소득가구의 장애인에 대한 제도로 비용부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조치제도’라고 말하는 이 제도는 1967년부터 시행된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저소득층의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기본적으로는 주2회 2시간씩 구청에서 활동보조인을 파견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비용은 국가와 자치체에서 부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적어서 1986년부터 전신성장애인제도도 시행되었대요. 그 후 장애인의 사회참가를 확보해야 한다는 운동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활동보조제도의 확충이 요구되었고, 시간수도 점점 확대되어 자립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월 231시간까지 비용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제도가 2003년에 자립지원비제도, 2006년부터 장애인자립지원법으로 바뀌면서 현재 일본장애인들은 그 동안 따낸 사회참가의 발판이 되는 제도의 틀이 무너지고, 특히 장애인의 노동정책 없이 비용부담만 강요하는 정부정책에 대해 큰 이의를 제기하며 싸우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몰랐던 저지만 이래저래 눈칫밥도 늘어가고 말도 알아듣게 되면서, 참으로 억울했어요. 제가 처음 제도 이용을 문의했을 때 구청복지과 담당자는 아무 정보도 모르고 지식도 없는 저에게 몇 시간이나 이용하겠냐고는 물어보았지만, 얼마나 이용할 수 있고 비용부담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거든요. 당시 저의 장애정도와 생활의 필요성에 비추어 보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비용에 대한 조마조마한 불안감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것인데, 저는 그 권리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선택할 수도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건 저뿐만이 아닌 것 같아요.
행정이라는 곳이 원래 그렇다고 말해버리면 할 말이 없지만 정말 우리는 먼저 알 권리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그랬듯이 겁먹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한국도 2년 전부터 활동보조에 대한 제도도입이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장애당사자들은 정작 제도이용을 통한 효과보다 그 문턱에 올라서는데 더 많은 장벽을 느낄 지도 모르겠어요.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를 좀 더 보편적으로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이 맞게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인식개선과 교육에 대한 부분도 더불어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비가 많은 요즘, 활동보조인이 오는 날은 뽀송뽀송 이불 잘 마르게 날씨가 개었으면 좋겠네요. 그 뽀송뽀송한 이불 위에 누워 햇님의 고마움, 이불을 널어준 활동보조인에 대한 고마움,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안도감을 나누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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