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황금연휴, 헌법기념일을 생각하며
본문
▲ 변미양 씨. 재일동포와 결혼해서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다. |
그런 계절의 여유로움도 더해져서겠지만, 이 무렵 일본은 황금연휴라고 불리는 긴 연휴가 겹치는 바깥놀이 여행의 철이랍니다. 기본적으로 5월3일부터 6일까지가 법정 공휴일이고, 주말을 전후로 길게는 2주일 정도를 골덴위크(황금연휴) 기간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기간 텔레비전 등에서는 자세한 교통정보며, 국내여행자는 물론 해외출국 상황 등을 빠짐없이 안내하지요.
특히나 이번 연휴기간에는 일본에서도 멕시코에서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큰 난리를 치르고 있어요. 위생적 감각이 예민한 일본에서는 신종 인플루엔자의 국내유입 방지를 위해 발생국에서 들어오는 국제선 비행기의 입국 전 검역 등을 실시하기로 정해,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 등 입국자수가 유난히 많은 이 기간에 담당자를 조달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랍니다.(결국은 국내 발생자가 순식간에 늘어 버렸지만.)
또 하나의 뉴스는 일본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5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고속도로 휴일 이용요금 1천엔이라는 것이에요. 도쿄·오사카 2대 도시 순환선을 제외한 고속도로 요금을 1년간 전국 어디를 가든지 1천엔으로 일원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혹시 일본에 오신 적인 있는 분이라면 느끼셨을 테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교통비가 한국보다 비싸답니다. 특히 도로요금은 한국의 2, 3배도 넘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 가운데 도로요금을 인하하여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단편적인 정책에 찬반여론이 들끓었지만(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대체하는 것이니까, 국민의 부담이 커지잖아요.), 그 덕분에 연휴기간 고속도로는 예년에 비해 2배 이상의 교통체증이 벌어졌다고 해요.
그런 저런 논란 속에 긴 국민적 연휴도 이제 거의 끝물인데요. 5월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초파일·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 등 기념행사가 많지만, 일본에서는 왜 이리 연휴가 겹쳤을까요? 그 내용을 보면 5월3일이 헌법기념일, 5월4일이 국민의 휴일, 5월5일이 어린이날, 5월6일은 법정공휴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쉬는 대체휴일이에요.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인 어버이날은 어머니날, 아버지날로 나뉘어져 있고요. 어머니날은 매년 5월 2번째 주 일요일, 아버지날은 6월 2번째 주 일요일로 고정된 날짜는 아니에요. 이래저래 해서 5월에 쉬는 날이 많은 거지요.
그 중에서 저에게 인상이 깊은 것은 헌법기념일이에요. 사실 우리나라 헌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제가 일본에 얼마 살지 않고 일본헌법을 이야기한다는 게 우습지요. 헌법에 의해 국가의 기구가 정해지고, 국민의 위탁을 받은 대표자에 의해서 정치가 이루어지는 입법정치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이라는 것은 많이 들어온 이야기지만, 그 실정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사실이잖아요. 무엇보다 우리네에게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도덕적인 사회인 것 같은 인상이 깊고요. 그러니 법 하면 무거운 기분이 앞서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관계가 있는 것이기에 헌법의 조항 두 가지에 대해서 잠깐 소개해 볼까 해요.
일본의 헌법에는 우리 헌법에는 찾기 어려운 두 가지 조항이 있어요. 바로 제9조와 25조랍니다. 일본은 1889년에 메이지헌법이라고 하는 최초의 헌법이 공포되지만, 현재의 헌법은 일본이 패전한 후 1946년에 제정, 공포된 헌법이에요. 그 제9조와 제25조를 우선 인용해 볼게요.
제9조
1.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이것을 영원히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 그밖의 군대를 갖지 않는다.
제25조
1.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2. 국가는 모든 생활의 부분에 대하여, 사회복지·사회보장 및 공중위생의 향상 및 증진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9조를 이르러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을 정한 [평화헌법] 조항이라고 해요. 또 25조를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조항이라고 하고요. 헌법제정 60년이 넘은 지금 일본에서는 우경론자를 비롯하여 제헌에 대한 많은 논란이 일고 있어요. 실질적인 군대인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군대를 갖지 않는다는 헌법은 모순된다는 둥, 전후 60년이 지난 시대에 맞게 헌법을 개헌해야 한다는 둥….
하지만 시민들 사이에는 아시아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준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 헌법 9조는 꼭 지켜야 한다는 의견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어요. 또한 ‘최소한의 생존권은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일본의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이 되고 있는 제 25조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의 사회보장 제도를 지탱하는 기본적 법이 되고 있고요. 최근 부정규직과 계약직이 늘어 임금 수준이 많이 떨어진 일본에서는, 국민 전체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어요.
법이라면 지켜야 되는 의무나 책임만이 무겁게 느껴지기 쉽지만, 의무뿐만 아니라 권리라는 부분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이 나라의 근간인 헌법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고요.
하루하루 살기가 힘겹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요즘,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구조적인 모순과 억압이 구석구석 엉켜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나침반으로써 법이 자리매김하도록 하며, 사회적 제도와 틀을 만들어 풀어내가도록 감시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누구나 진짜 연휴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