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이 안전한 도시, 장애여성 안전감시단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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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주 대표 |
세계인권선언은 제3조에서 “모든 사람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해 ‘안전’을 인간의 권리로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협약)은 제14조 개인의 자유와 안전 관련 조항에서 “당사국은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기초 위에서, 장애인이 개인의 자유와 안전에 관한 권리를 향유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전 또는 안전한 상태란 ‘위험 원인이 없는 상태 또는 위험 원인이 있더라도 인간이 위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대책이 세워져 있고, 그런 사실이 확인된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단지 ‘재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안전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잠재 위험의 예측을 기초로 한 ‘대책’이 수립되어 있어야만 안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전이란 ‘만들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장애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겪는 접근성과 편리성의 부재와 차별, 그리고 여성들이 겪는 성적 차별과 폭력 등에 의한 위험 요소들이 모두 가해지는 몸의 구조와 사회적 환경을 겪고 있는,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구성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장애여성의 안전은 장애인과 여성의 관련 영역 어느 곳에서도 고려되지 않아 안전과 생명이 위협 받는 환경에서 노출된 채 이를 예방하는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어 있다.
협약은 제6조 장애여성 조항을 통해서 “장애여성은 ‘장애와 여성’이라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다중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고, 이에 앞서 전문 (q)호에서 장애여성과 소녀들이 폭력 노출의 취약성과 위험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제16조 착취, 폭력 및 학대로부터 자유 관련 조항에서는 제2항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들 그리고 개호인(보조인)을 위하여 성별, 연령별, 장애를 고려한 보조 및 지원, 보호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또 제5항에서는 이러한 보호를 위해 “(장애)여성과 (장애)아동에 초점을 맞춘 법률 및 정책을 각 국 정부는 마련하고 관련 내용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3장 장애여성 및 장애아동 등 제34조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에서 제①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요인이 제거될 수 있도록 인식개선 및 지원책 등 정책 및 제도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강구하여야 하고, 통계 및 조사연구 등에 있어서도 장애여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별도의 장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이상의 국내외 장애인의 인권 등 관련 법률들은, 현재 어느 사회에서나 장애여성은 사회 구성원 그 누구보다도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력할 것을 법으로써 요청하고 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은 세계인권선언과 협약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의 자유에 직결되는 조건이다. 안전은 자유를 의미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이동권, 장애여성에게는 안전 사각지대
▲전철역과 멀리 떨어진 엘리베이터 |
장애여성 우리는 사회의 그 어느 계층보다 빈곤하고 덜 교육받고 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하루하루 생존권 그 자체를 걱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장애여성들은 끈질기게 생명을 위협하는 빈곤과 폭력 등의 긴박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해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의 한 장애인 관련 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장애여성은 한 달에 집 바깥으로의 외출이 3번 이하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집 밖을 나서자마자 경험하게 되는 ‘예상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더군다나 특별한 이동수단이 없는 한
▲전철역까지는 주차장 하나만큼의 거리가 있다. |
, 목적지에 도달하는 당사자인 우리 장애여성 스스로도 우리들의 이동 현실이 이렇게 어렵고 열악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우리를 ‘방’에, ‘집’에 그래서 결국 ‘내 안’에 가두고 있는가.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라는 복지 부재 현실에서,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쩌면 아직은 사치스러운(?) 욕구로 들릴지 모를 일이다. 특히 도시 생활의 이동에 관한 안전도 요구와 그에 따른 실태를 조사한다는 것은 조금 낯선 활동으로 보여 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이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숨 걸고 외쳐 온 장애인 활동가들의 노력과 서울의 발전은 몇 년 전부터 대다수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가능하게 해 왔으며, 이제 서울에서도 저상버스를 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장애여성이 한 달에 세 번도 외출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 사회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직도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일까. 장애여성들이 이동 등의 일상생활 활동의 제약을 받고 있는 현실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것을 ‘안전’이라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여성의 몸 구조에서는 집안의 환경조차 결코 편리하거나 안전하다고 말 할 수 없다. 장애여성에게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주거 형태는 비록 대다수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안전사고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형국에 집 밖을 나가다니, 그것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온통 따갑고 불친절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도시 생활을 누리라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낯선 누군가에게 해라도 당한다면, 폭력이라도 당한다면, 버스와 지하철에서 안전사고라도 난다면 누가 달려와 보호해 줄 것인가. 이러한 이동에 관한 공포감이 장애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묶어두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달에 세 번도 외출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서, 앞으로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억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분명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들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일까.
장애여성이 안전한 서울, 장애여성 안전감시단이 떴다
지난 7월 16일, 장애여성에게 안전한 도시 서울을 조성하기 위한 ‘장애여성 여(女)행(幸) 와이즈단(WISE : Women Inititive Safety Envoriment)’ 이른바, 장애여성 안전감시단 발대식이 있었다. 더 이상 장애여성의 안전에 대한 욕구를 막연하게 타자에게 내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 여행 와이즈단’은 지체장애, 뇌병변 등의 장애여성 22명과 장애여성 조사 활동 지원을 위해 서울시자원봉사센터에서 모집한 자원활동가 22명인 총 44명으로 구성되었다.
와이즈단은 지난 7월 17일부터 31일까지 2주 동안 서울시 지하철역 총 289개 중 182개 역, 저상버스 총 109개 중 44개 노선을 대상으로 장애여성의 일상생활 공간과 관련한 서울시 도시 안전도를 점검하는 조사활동을 펼쳤다. 특히 지하철의 승하차 안전도, 엘리베이터 안전도, 리프트 안전도, 전동차 내 안전도, 장애인 화장실 안전도와 저상버스의 버스정류장 안전도, 저상버스 내부 안전도 등을 중심으로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 2인 1조가 돼 안전감시 도구에 의한 현장점검을 실시한 것이다.
장애여성들은 왜 거리로 나선 것일까
와이즈단을 창설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이번 와이즈단의 조사활동은 서울시 여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장애여성에게도 행복한 도시 서울 만들기’란 관점에서 장애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과 심각성을 직접 확인하고, 안전 증진을 위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조사에 앞서 220명의 장애여성들이 참여한 설문지를 통해 장애여성 당사자들이 느끼는 이동에 대한 안전에 대한 불안감과 그 안전 체크리스트를 정리하는데 동참하고, 그 척도를 가지고 실제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점검 내용은 ▲지하철역 접근성 및 승하차 안전도, ▲장애인 화장실 안전도, ▲엘리베이터 및 장애인용 리프트 안전도, ▲버스정류장 안전도, ▲저상버스 내부시설 정상 작동 여부 등이이며, 점검 결과는 8월 말 보고서 형식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휠체어리프트 이용 예약 서비스 안내문 |
사실 여성으로 구성된 와이즈단은 캐나다 토론토 등 선진 도시에서도 활성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마도 ‘장애여성’ 와이즈단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활동단이 될 것이다.
장애 여성의 관점에서 일상생활 공간 바깥의 문제점과 이동에 관한 안전도 등을 찾아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기회로, 현장조사 결과가 서울시 여성정책에 장애여성을 고려한 정책제언으로 이어질 전망이어서 조사단에 참여하는 장애여성들의 기대가 사뭇 크다.
무엇보다도 “장애여성 당사자 스스로가, 장애여성들의 안전 그래서 나아가 모든 서울 시민들이 안전한 서울을 점검하기 위해 조사단으로 출범하는 것”은 복지와 안전 등의 대책에 “수혜자가 아닌 주체자”로서 나서는 일이기에 더욱 뜻 깊고 새롭다.
장애여성, 직접 부딪쳐 겪어보고 목소리를 내야
지체 장애여성 장미화씨(38)는 서울 대방역 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타면서 “직접 부딪쳐 겪어 보고 목소리를 내야지, 두려워서 피하니 달라지는 게 없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서는 처음 타본 버스였다. 도착한 저상버스 운전사는 처음엔 장씨를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가까스로 자원봉사자 김효요(46)씨가 떠나려는 버스를 붙잡아 간신히 탑승출구 리프트를 내려줬지만, 하필 소화전 앞이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다시 리프트를 올려 약간 이동한 뒤 버스에 올라탔지만 휠체어 고정 장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운전사가 나와 간이 좌석을 접어줘야 했다. 차가 출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이상 정차했어야 했다. 다른 승객에게 폐가 된 듯해 죄책감이 드는 순간이다.
놀랍게도 장애여성 와이즈단은 평소 거의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말하면서도 대부분 버스는 한 번도 이용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버스는 장애여성에게 그 어떤 이동교통수단보다 두려운 존재”라고 전하는 그녀들은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 이용해 보겠다.”고 말했다. 일상이 아닌, 이러한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어쩌면 평생 타 볼 엄두도 안 나는 저상버스, 장애여성들은 거기에 어떤 안전상의 문제가 있길래 두려워하는 것일까.
장애여성 감수성으로 다시 바라보아야 할 지하철
지하철 또한 장애여성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이동 수단이다. 장애여성 와이즈단 안용녀(33)씨는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바퀴가 빠지는 일은 다반사”라며 “그 순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사고가 날 것이 뻔한데도 지하철을 타야 하는 우리는 매일 목숨을 걸고 있다”고 전한다.
지하철 이용에 대한 모든 조사는 장애여성이 집에서 나와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구성된다. 첫 번째 조사 항목은 지하철 접근 안전도. 일반적으로 지하철 공사에서 접근성을 고려할 때는 ‘얼마나 접근하기 편리한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이 당연히 대중이 가장 이용하기 편리하게 출구를 설계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은 지하철 출구에의 접근이 매우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출구 바로 근처에 엘리베이터 등이 설치되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대부분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나중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출구 근처에 공공 공간이 없다면 출구와 멀리 떨어진 곳에 엘리베이터를 설칠 할 수 밖에 없거나 아예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어려운 여건이 된다.
어떤 지역은 출구 근처에 엘리베이터 설치 가능 장소가 개인 주택지 공간과 겹쳐서 지역의 주민이 설치를 절대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어쩔 수 없이 출구와는 멀리 떨어진 어쩔 수 없는 공공 필지를 찾아서 엘리베이터를 설치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역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거나 거리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접근도가 상당히 낮고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특히 야간에는 장애여성들이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이러한 엘리베이터 입구 근처 지역은 그 지역을 잘 알고 있거나 살고 있는 장애여성이 아닐 경우, 처음 그 지역에 가는 경우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듯한 긴장감과 두려움 속에서 집을 나서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미리 알 수 있는 관련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엘리베이터에 그 흔한 CCTV가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비상시 역무원등의 도움을 요청 할 수 있는 비상벨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등이 장애여성의 안전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현재로선 전혀 없었다. 와이즈단의 조사는 이러한 기준 설정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하철역내 여성화장실, 장애여성에게도 친화적일까
▲화장실 한 번 가는데 3층 높이를 올라야 한다. |
지하철 역 이용에 있어서 장애여성에게 어쩌면 가장 민감한 공간은 바로 화장실.
그 동안 공공 화장실들은 이용하기 편리하고 안전한 곳뿐 아니라 모든 시민의 휴식처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는 특히 여성 친화적인 화장실 만들기를 실시해 왔다.
여성친화적인 화장실 문화 만들기는 여성들이 남자아이 등의 자녀들도 엄마와 함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여성의 감수성에 맞는 인테리어와 청결도를 유지하기 하는데 중점 등을 두었다.
또한 여성 들이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이 남성들보다 더 길다는 것에 착안하여, 공간도 넓히고 옷매무새 등을 고칠 수 있는 파우더룸 등을 설치했다. 여성친화적인 화장실은 이제 더 나아가 가족 친화적인 다목적 화장실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 친화적인 화장실이 과연 장애를 가진 여성들에게도 친화적일까? 조사지에 따르면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여성화장실, 편의시설 등을 고려한 장애여성 화장실 칸은 거의 대부분 없다. 자녀들을 동반할 수 있는 곳은 엄마의 휠체어가 입구에서부터 막힌다. 세면대는 손이 닿지 않고 비장애여성들의 옷매무시와 아름다움을 가꾸어주는 거울 등은 장애여성들을 비추지는 않는 높이에 있다.
결국 여성 친화적인 지하철의 화장실들은, 사실은 비장애여성에게만 친화적인 화장실인 것이다. 장애를 고려하지 않아 편의시설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은 친화적인 것은커녕, 장애여성 안전사고를 유발 할 수 있는 위험한 공간이 된다.
장애인화장실, 장애여성에게 안전한 화장실인가
▲변기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비상호출 통화장치 |
그렇다면 대부분 지하철 역사에 마련되어 있는 장애인화장실은 장애여성들에게 모두 편리하고 사용 가능한 곳일까?
장애여성에게 무엇보다 남녀구분이 없이 설치된 장애인화장실은 그 어느 경우보다 장애여성의 성 정체성이 무시되는 공간이다.
이는 무의식적인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을 공공연하게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좀 심하게 말해 반(反)장애여성적인 공간이다.
우리는 “뭐, 예산도 많이 들고 장애인화장실이 이용도도 낮은데 굳이 남녀 따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무언의 압력에 짓눌려 있다. 남녀화장실이 아닌 장애인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는 장애여성은 그 곳에서 ‘그 공간의 낯설음만큼 우리 사회에서 낯선 존재로 인지되고 있는 나’를 만나는 당황스러운 순간을 마주한다. 그렇게 경제적 효율성을 따진다면 아예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사용 가능한 화장실을 만들지 싶다.
가장 대중적인 공간인 지하철의 화장실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 남녀로서 다른 고유한 성격과 몸의 구조를 가진 인격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장애인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아닌 어떤 ‘낯선 존재 대상’이기 때문에 화장실도 그냥 ‘장애인화장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장애인화장실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장애여성이다. 물론 장애남성도 소변기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서 불편한 점이 없진 않지만, 중성적 의미의 ‘장애인화장실’은 암묵적으로는 장애여성보다는 장애남성에게 그나마 친화적이라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결국 장애남성에게만 친화적인 ‘장애인화장실’과 비장애여성에게만 친화적인 ‘여성화장실’, 그 어느 곳도 장애여성들을 반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만큼 자연스러운 공간이 없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공간에서의 장애여성의 배제, 우리는 그러한 도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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