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유혹 이겨내고 우리는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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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형 씨와 시각장애인 정운노 씨의 이집트사하라사막 마라톤 도전기 |
마라톤 마니아들에게는 '꿈의 레이스'로 불리는 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가 지난 10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아프리카 이집트에서 열렸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서바이벌 방식으로 치러진 이번 대회에 한국에서는 총 9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그 중 현대모비스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안기형 씨가 시각장애우 정운노 씨와 함께 마라톤 코스를 끝까지 완주해 주목을 끌었다. 안기형 씨가 보내온 6박7일의 마라톤 도전기를 싣는다.
또 다시,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도전하다.
08년 9월 어느날, 평소 알고 지내던 모방송국 PD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기형 씨, 오래만입니다. 지난 2003년 모르코사하라, 2004년 아마존정글마라톤을 다녀온 후 아주 조용히 지내고 계신데, 올 10월에 이집트 사하라사막마라톤에 참가할 생각이 없습니까?” 순간 가슴의 심장박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그간 잊고 지냈던 일들이 영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고는 싶지만 10월이라면 준비 기간도 짧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여건이 안 되어 참가하기 어렵다는 짧은 대화로 통화를 마무리 했다.
사막마라톤에 대한 참가 유혹을 잊을만 했을 즈음 또다시 참가를 종용받았다. 사하라사막을 달려야 하는 정확한 이유가 있으니, 현실적인 문제는 뒤로 미루고 일단 참가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사막을 달리는 것은 혼자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안기형 씨가 현재 자원봉사하는 시각장애인 마라톤회원과 함께 사하라사막을 달리고, 연말에 시각장애인의 개안수술 비용 마련 특집이 방영될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순간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사막을 달리는 것이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였다면, 이번 사하라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달려보자고 마음을 굳혔다.
함께 사하라를 달릴 동반자를 정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선택해도 바로 이사람 정운노였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실명을 한 후 무수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도, 항상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가진 당찬 친구였다. 그는 달리기를 시작한 지 올해로 7년째 접어든 베테랑이다. 또한 학창시절에는 유도 선수로서 바로셀로나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여 -60kg급 이하에서 동메달을 딴 경력의 선수 였다.
9월 추석을 지나고 남산에서 정기 훈련을 하면서, 운노에게 이집트 사하라사막 이야기를 꺼냈다.
“운노야, 모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연말에 사하라사막을 달리는 모습을 다큐로 제작해서 방송에 보내는데, 그 취지가 시각장애인 개안수술 기금 마련이라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시각장애인이 사막을 달리는 동안 힘들고 어려움을 극복한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고, 어둠 속에 있는 장애인에게 세상의 빛을 보여주는 기금을 마련한다네.” “그거 상당히 괜찮은 취지인 것 같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좋은 것 같아. 그런데 우리들 중 누군가 가야 하는데, 누가 갔으면 좋을지 네가 추천해 볼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섭게 달리는 것을 멈춘 채 운노가 한마디 한다.
“감독님, 지금 저보고 가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기세에 눌려 목소리가 잦아든다.
“응. 난 너와 함께 가고 싶은데….” “농담하지 마세요. 지난 번에 사막마라톤대회 갔다온 사람 이야기 들었더니, 비장애인들도 힘들어 포기하고 발에 온통 물집투성이고 달리다 탈진해서 사막에 쓰러져 죽기 바로 전에 발견돼 헬기로 수송되기도 했다는 데, 앞도 못 보는 내가 가서 사막을 달리라고요. 난 남산 달리는 것도 어떨 땐 힘들어요. 감독님께서 저를 선택하시는 것은 감사한데요. 전 사막을 완주할 자신이 없어요.” 한마디로 NO다.
사하라사막을 함께 달릴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운노,기형) 뿐 아니라 주변에서 모두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혼자도 힘들 텐데 장애인과 함께 달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모두들 진정으로 우리를 염려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9월29일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대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광주에서 2008년 전국 장애인전국체육대회가 있다. 여기에 운노는 400m, 800m, 1500m, 10km 부분에 참가한다.
전국체전 기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함께 운동할 수 있는 날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거기에다가 사막대회는 철저한 서바이벌 마라톤 대회이기 때문에, 6박7일간 자신이 먹을 음식·간식·침구 등 무려 15kg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달려야 하는 힘겨운 대회라 장비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회 주최 측에서 필수 장비 목록을 보내왔는데, 그중에 한 가지만 빠져도 패널티를 적용한다. 필수 장비는 대부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장비들로, 1일 2,200칼로리 음식(7일분), 배낭, 침낭, 칼, 나침판, 랜턴 2개, 소금, 진통제, 방한재킷, 알루미늄 바람막이, 물통, 분말이온음료 등 20여 가지에 달한다.
마라톤 대회 첫날, 사막에서의 황홀한 기대에 부풀어..
대회 1일째. 이집트에 도착해 사막의 중심부로 가기하기 위해 버스로 7시간을 이동했다. 사막 중심부에 도착하니 한밤중이 됐다. 이곳에서 또 다시 4륜구동 자동차로 무려 1시간 이상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저녁 7시40분. 이미 세상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렌턴이 없다면 코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칠흙 같은 어둠이다. 운노에게 주변 상황을 설명해 줬다. 참 신기했다. 사막인데 양쪽에 거대한 바위가 늘어서 있다. 마치 계곡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이윽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입이 쩍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운노에게 주변을 설명하다 말을 멈추었다. 밤 하늘의 별이 어쩜 저리도 많을까. 하늘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수를 놓았다. 사막에서의 첫밤은 황홀할 정도로 많은 별을 바라보며 보냈다.
다음날 새벽 3시. 간밤에 바람이 얼마나 불어 댔던지, 추워서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발이 시려워 주섬 주섬 양말을 신고, 준비해 간 방한점퍼를 입고, 또다시 새우처럼 구부려 잠이 들려고 열심히 주문을 외워도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한참을 눈을 감고 숫자를 세어 보았으나 소용없다. 아이고, 추워! 뒤척임을 반복하는 동안 새벽 5시가 됐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한밤중이지만, 더 이상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아침을 준비하려고 나왔다. 물만 부으면 밥이 되는 특수 건조 식품에 물을 부으려 밖으로 나와 보니, 이미 여러 사람이 추위를 못 견디고 모닥불 주변에 모여 있다.
새벽 6시, 운노를 깨우고 함께 사막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그야말로 불쌍한 아침을 먹고, 침낭을 챙기고 배낭을 정리해 어깨에 둘러맸다. 이 세상에서 내 배낭이 제일 무겁게 느껴진다. 옆에 있는 운노도 배낭이 무겁다며 내 배낭을 슬쩍 들어 보더니, ‘감독님 배낭이 내꺼보다 훨씬 가볍다.’며 무거운 건 다 자기 배낭에 넣었다고 엄살을 부린다. “운노야, 내 배낭이 가벼우면 우리 서로 바꿔서 멜까?” 넌지시 말하니 “내가 젊으니 젊은이가 좀 무겁게 메야죠.” 하며 농담을 받아 넘긴다. 사실은 운노 배낭보다 내 배낭이 1kg 이상 항상 더 무거웠다.
7시 30분, 오늘 대회 코스에 대한 브리핑이 있다. “오늘 달려야 할 거리는 38km, 제한시간은 8시간으로, 체크 포인트는 10km마다 한 군데씩 있으며, 물은 1.5리터 공급한다. 또한 주변의 경관이 아주 아름답다. 달리면서 충분히 감상하길 바란다.”
출발시간까지 대략 30분 정도 남았다. 우리는 한국 참가자와 서로 기념 촬영도 하고 다가올 고통은 잠시 잊은채, 그저 즐거운 기분으로 남은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8시 정각. 출발 신호와 함께 전 세계 건각 2백여명이 묵직한 배낭을 어깨에 멘 채 발목까지 빠지는 사막을 환호성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운노도 그들 사이에 끼어 힘차게 스타트했다. 나중에 어찌될지언정 우선 출발은 선두권에 서서 당당히 달리기로 했다.
사막의 더위와 모래,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마라톤 완주는 계속됐다
“운노야, 앞에 모래가 가득하다.” “아이 참, 감독님도. 사막에 모래가 있는 건 나도 알아요.” 슬쩍 농담도 하면서 출발은 산뜻했다. 출발 후 30분이나 지났을까. 선두를 달리던 우리는 어느 순간 후미로 서서히 밀리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예전 모르코 사하라에서는 바람이 불어 간간히 더위를 식혀 줬었는데, 이곳은 달리면 달릴수록 바람이 점점 잦아지는 것을 느꼈다. 1시간이 지나면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데, 사막의 더위가 정말 가혹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우리가 달리는 모래 길은 한 걸음 한 걸음 다리에 힘이 들어가게 만들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게 한다. ‘비장애인인 나도 이렇게 힘들게 달리는데 옆에 있는 운노는 얼마나 힘들까? 잠시 힘든 고통을 벗어나게 하려고 주변의 경치를 열심히 설명하며 달린다. “운노야, 전방 20m 앞에 바위가 있는데, 색깔은 흰색으로 되어 있어 형상은 마치 사자상처럼 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이곳의 모래는 석회가루처럼 희고 발목까지 빠지는 고운 모래로 되어 있어, 우리가 한발 한발 밟을 때마다 먼지가 사방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체력이 소진된다.
“감독님! 혼자만 좋은 길로 뛰지 말고, 나도 좀 좋은 길로 안내 좀 해줘요!”
“야, 좋은 길이 어디에 있니? 다 똑같지.”
“아니에요. 내 감각으로는 감독님은 딱딱한 모래를 밟고, 나는 푹신한 모래 위를 달리는 것 같아요.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그렇다. 사막을 달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힘들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친 사막을 달리는 것은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는 더 힘든 일일 것이다.
이때 운노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체크 포인트가 어서 나오면 좋을 텐데….
우리의 바람을 읽은 것일까? 작은 모래 언덕을 올라서니 멀리 희미하게 체크 포인트가 보인다. 작은 체크 포인트는 우리에게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그곳에서는 물을 공급해 주고, 잠깐이지만 배낭을 내려 놓을 수 있으며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좋다.
첫날은 더위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7시간을 걸려 37km를 무사히 완주했다.
첫날을 무사히 완주하고 나서 무려 7시간 이상 어깨에 매달려 있던 배낭을 지정된 텐트에 던져놓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밥을 준비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자신이 먹을 음식과 잠자리를 챙기면 되지만, 나는 항상 2인분이다. 음식도 2명분, 잠자리도 2명분, 배낭 정리도 항상 두 개씩이다. 그래서 잠시 쉴틈없이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한다.
건조된 밥에 물을 붓고 15분이 경과된 후에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었는데, 반찬이라곤 고추장과 사막의 열기에 믹믹한 생수 한 병 뿐, 그나마 생명을 유지하려면 먹는 수밖에….
식사를 마치고 운노가 발에 물집이 얼만큼 생겼는지 봐 달라고 한다. 오른쪽 엄지 발가락 옆에 한 개, 그리고… 많다. 왼쪽도 마찬가지다. 발톱도 이미 여러 개가 퍼렇게 멍들어 있다. 저 정도면 고통이 상당히 심할 텐데, 달리는 도중 아무 소리 않고 견뎌 준 운노가 대견하고 고맙다. 서둘러 메디컬센터를 찾았다. 이미 그곳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모두 물집투성이다.
사하라 사막의 고통을 느끼며 달리는 마라톤 이틀째
대회 이틀째. 어제 첫날부터 물집으로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운노가 오늘은 몹시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움직인다. 주최 측에서 좋은 길과 나쁜 길을 이야기해 주고 주의를 준다. “내가 뛰자고 하면 뛰고, 내가 걷자고 하면 군소리하지 말고 걸어요. 안 그러면 완주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내 욕심대로 달린다면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달리는 모든 과정은 운노에게 맞춰져야 할 것이다.
이틀째 구간은 첫 출발부터 심상치 않다. 모래가 얼마나 고운지 마치 분가루처럼 곱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흙먼지가 눈앞을 가린다. 발은 말할 것도 없이 발목까지 빠진다. 게다가 모래 위에는 사막의 화석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가벼운 모래는 바람에 날리고, 무직한 돌은 광할한 사막을 온통 검은색으로 수를 놓았다. 보기에는 그토록 아름다운 돌이 한 걸음 내딪는 발에 부딪히는 순간, 물집으로 상처난 곳은 고통스럽다. 그나마 나는 뽀족하게 나온 돌을 피해 갈 수 있지만, 옆에서 함께 달리는 운노는 피해 갈 상황이 못 되므로, 그가 받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달리며 쉬지 않고 중얼거려 본다. “운노야, 1m 앞에 작은 돌 그 앞에 또 돌 나와.” 그가 묶여 있는 50cm의 작은 끈으로 좀더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인도해 보려고 애쓰고 노력했지만, 피해 가고 싶은 건 결국 인간의 욕심이었다.
길이 얼마나 험난했으면 첫날 물집이 없었던 내 발에도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발톱 또한 죽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운노는 말도 못할 정도의 고통이 수반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도는 해발 40m를 가르키고 있으며 온도는 섭씨48도. 정말 죽음이다.
하지만 주변의 신비로운 경치만큼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다듬어 져 있을까. 처음에는 분명 커다란 바위덩어리였지만, 바람이 불면서 모래알갱이가 바위를 때리면서 서서히 깎인 자연이 만든 조각상일 것이다. 운노에게 상황을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모래바람이 불면서 자연이 바위를 깎아 만든 위대한 조각상이라고….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운노가 단 10초, 아니, 단 한 순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노와 함께 달리면서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앞을 못 보고 사는 동안 무엇이 제일 궁금하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운노는 나에게 솔직하게 답변해 줬다.
“제일 먼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그리고 부모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궁금해요.”
소박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에 깔린 진실된 답변이었다. 순간 달리는 고통도, 물집에 의한 고통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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