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휠체어는 물건이 아니라 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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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에 이사 오기 시작해 수년째 다니는, 너무도 익숙한 길이였고 맞은편 차선에 승용차가 서 있 길래 마음 놓고 이쪽 인도에서 아파트 입구를 가로질러 저쪽 인도로 거의 건너갔을 무렵 반대편 차선에 정차해 있던 승용차가 순식간에 좌회전을 하여 내게로 다가오더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오른쪽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자칫 전동휠체어에서 떨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커다란 부상은 안 입은 거 같고, 전동휠체어도 외견상 별다른 고장은 나지 않은 것으로 보여 가해자 측에서 보험 처리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일단 집으로 귀가를 했다.
다음날 교통사고가 나면 아무리 경미하더라도 일단 입원하고 검사하며 2~3일을 지켜봐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집근처 동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다른 장애인들도 비슷하게 느끼겠지만 중증의 장애인이 집을 떠나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고행의 길은 막이 오른다.
인형으로 ‘변신’한 병원생활
걷지 못할뿐더러 상체의 힘도 5살짜리 아동만도 못한 근육병이란 장애가 있는 내가 병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1급 장애인이라도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활동보조인을 쓸 수 없게 되고, 교통사고라 구청에서 간병인도 안 보내준단다. 설상가상으로 자동차보험사 역시 사지마비 장애인이 아니면 간병인을 보내주지 않게 돼 있다는 보험약관을 들먹이는 통에 할 수 없이 주변의 지인들에게 간병을 부탁하였다.
그렇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중증장애인의 고생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엑스레이(x-ray) 촬영, 심전도 검사, 물리치료 등 각종검사와 치료 받는 내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나를 계속해서 안고, 들고, 누이고 일으키고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도 힘들지만 사고의 통증으로 인해 가뜩이나 아픈 나는 고통이 배가 된다.
더구나 장애인 화장실조차 없는 동네 병원의 현실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을 더욱 압박하고, 푹신한 병실 침대는 안 그래도 온 몸의 힘이 없는 사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옴짝달싹 못하도록 인형으로 변형시킨다.
옆에서 도와주던 사람들도 밤이 깊어 모두들 돌아가고 인형으로 변신한 나는 밤새 뜬눈으로 병실을 수호하다 9시 병원 원장이 출근하자마자 냉큼 달려가서(?) 퇴원을 읍소하였다.
“원장님 아픈 거 보다 입원으로 인한 불편과 고통이 너무 큽니다. 퇴원해야겠어요.”
퇴원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중상을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만약 크게 다쳤다면 어쩔 수 없이 오랜 기간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할 거고, 중증장애인인 나에게는 기나긴 악몽의 시간이 됐을 거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런 위로도 잠깐, 며칠 후 더 큰 황당함이 다가왔다.
나는 부상이 크지 않아 금방 퇴원이 가능 했지만 나의 애마인 전동휠체어는 수리비가 250만원이 나올 정도로 크게 고장이 났단다.
이에 나도 그랬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자동차든 휠체어든 보험사에서 피해자가 원하면 무조건 고쳐주거나 상응하는 보상을 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휠체어는 나의 몸, 그러나 보험회사 직원은 고철덩이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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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험사 직원의 말은 달랐다.
사람(대인)은 나이에 상관없이 완치 될 때까지 보상을 해주지만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물건(대물)은 구입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몇 년이 경과했느냐에 따라서 감가상각을 한단다. 그래서 대물이 오래 된 것이라면 수리비 보다 보험사의 보상비가 훨씬 적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자문을 구한 사람 중에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 뿐 만 아니라 자동차 운전을 수 십년씩이나 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전동휠체어 영업직원도 있었지만 정확하게 자동차 보험 규정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나의 차가 10년을 탓 든 20년을 탓 든 가해 보험사는 차 수리를 액수에 관계없이 피해자가 원한다면 원상복구 해야 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자동차 보험약관은 무슨 물건이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 중고가 되어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입시점이 1년 이상이 지났다면 교통사고 시 처음의 구입가액에 준하는 수리나 보상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물보상에 관한 보험약관 중에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안경이나 보청기, 의족, 의수 등은 대인으로 간주하여 보상 한다’는 조항 이었다.
대인(사람)이 다쳤을 때 나이의 적고 많음을 따지지 않고, 완치 될 때까지 치료비를 지급하듯이 의족, 의수, 보청기 등은 구입시점에 관계없이 수리비를 전액 지급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물건들은 사람이 어디를 가든 항상 착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물로 보지 않고 대인으로 간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나의 애마인 전동휠체어는 왜 대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는 식당을 가던 지하철을 타던, 영화를 보든 화장실을 가던 언제나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나뿐만 아니라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잠 잘 때나 목욕할 때를 제외 하면 늘 함께 할 것이다. 이런 점은 대인으로 간주하는 의족이나 보청기등도 비슷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준국가기관이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안경을 제외한 이들 모두를 장애인용 의료 보장구로 보고 지원을 하고 있는데, 왜 전동휠체어만이 자동차 보험에서 대물 취급을 받아 야만 할까?
덩치가 크고 무거우니까?
엔진이 달려있고, 장난감같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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