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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보조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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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친구가 늦깍이 유학길에 오른 아빠를 따라 영국으로 간 것이 작년 9월, 어느 덧 다섯 달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 만났던 게 5살 때였는데 벌써 11살, 점점 의젓한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다. 영국에 들어가고 두 어주에 한 번씩 통화를 하면 한국에서 매주 만날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화기에 대고 한다. “으~아응~꺅~끼약. 으하하~하하하~” 신나서 웃고, 소리지르는걸로 봐서 ‘반갑고, 잘 지내고 있고, 보고싶다’는 이야기일꺼라고 믿고 있다.

꼬마친구 아버지나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보면 영국에 도착해서 친구가 학교를 다니면서 생기고 있는 일들을 소상히 말해주신다. 처음 특수학교 입학 면접이라고 날짜를 알려주시던 날, 내심 속으로 ‘장애가 너무 심하다고 안 받아주는건 아니려나’ 걱정하고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입학허가가 난 후 그것이 엄청난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입학면접은 특수학교를 다녀야 할 만큼 중증의 장애가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절차였다고 했다.

입학하고 5개월 동안 학교에서 보조인력을 붙여주었고, 어느날은 보조기 신발을 맞춰주었고, 지난 주에는 지금 쓰고 있는 휠체어가 너무 작아져서 친구에게 불편할 것이라며 지역 보조공학센터에 방문 일정을 잡아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센터 위치를 묻기 위해 연락을 해보니, 되레 친구가 사는 집 위치를 물어서 약속된 시간에 휠체어 이동 차량을 보내주고, 센터에 도착해보니 꼬마친구 한 명을 위해 6명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서 새 휠체어를 맞춰주기 위한 팀평가를 했다고 한다. 새 휠체어는 8주 정도 후에 받을 수 있을거란다.

그 나라 입장에서는 그저 평범한, 그리고 수 많은 유학생 중 한 사람의 자녀일 뿐인데 말이다. 꼬마친구가 보고싶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아직은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고 싶지 않다.

전신마비 장애를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종배 박사는 우리돈으로 약 3천만 원 정도하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다. 경추장애로 팔꿈치와 손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데, 미국에서 개인 차량도 직접 운전하고 다닌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운전면허조차 받을 수 없겠지만, 아주 약간의 손 움직임만으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장애인용 운전보조기구가 미국에서는 상용화돼 있는 덕분이다. 가격은 기능에 따라 3천~5천만 원 정도로 알고 있다. 물론 차값은 제외한 금액이다. 이러한 고가의 보조기구들을 미국 정부가 지원했다.

박사라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고, 그 장애로 인해 직업활동을 하는데 불편을 겪고 있고, 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보조기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원하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보조기구를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장애인이 개인의 능력을 개발할 수 없을 것이고,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면 사회에 참여할 수 없고,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면 개인이 인간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그 개인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더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을 것이다.

우리가 1달러를 보조기구 지원에 지출했다면 개인이 능력을 개발하고, 직업을 갖게되어서 세금을 내는 국민이 되었을 때 절감된 비용으로 6달러를 벌어들이는 셈이된다.”는 빠른 손익계산이다. 얄밉다. 이렇게 얄미운 미국이 2004년도에 「보조공학법(Assistive Technology Act)」을 개정했다.

1998년 제정된 법이 보조공학과 관련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에 기여를 했지만 장애가 있는 개인을 지원하는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는 문제인식 속에 장애인 개인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한다는 것이다. 내 눈에는 2004년 이전도 부러웠는데 점점 더 부러워진다.

‘보조공학 관련 법’이 갖고 있는 의미

지난 해 11월 16일, 장애계와 보조공학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보조공학법 제정 TFT’와 안명옥 의원(한나라당)이 함께 법안을 만든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조기기 관련 산업 육성 및 서비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선진국들이 보조기구에 대한 지원 제도를 마련한 것이 국민소득 1만~2만 불 시대였다고들 하니, 우리나라도 적당한 때가 된 것 같다. ‘보조공학법 제정 TFT’가 법률안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미국의 2004년 보조공학법 개정에서 고려되었던 것과 같은 개인에 대한 지원 정책의 강화였다.

아무리 훌륭한 보조기구가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혹은 개발되도록 연구비와 개발비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개인에게 보조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만 늘어나는 것이고, 개발된 보조기구는 연구자들의 실적만 한 건 올려준 시제품의 형태로 국가의 예산만 잡아먹은 채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반대로 앞서 미국이나 영국의 예처럼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겨나면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개인과 가족, 사회의 효율성이 증가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용자들의 욕구에 입각해서 제작된 보조기구들이 판매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거나 연구·개발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생겨날 수 있다.

안명옥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이러한 고민이 균형있게 담겨 있다.
전체적인 법의 구성을 살펴보면 총 5개 장에 33개의 조항과 부칙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제1장 총칙에서는 법의 목적과 정의, 장애인과 노인 등 이 법의 적용 대상집단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 보조기기 관련 종합 계획의 수립과 국무총리실 소속의 보조기기정책지원단의 구성과 같은 포괄적인 내용들이, 제2장은 보조기기의 지원, 지원대상 품목의 관리, 보조기기 사업자의 의무, 관련 정보의 구축과 같은 보조기기 지원 및 품목관리에 대한 내용들로 돼 있다.

제3장은 보조기기 관련 서비스 전달체계 확립 및 기관 운영으로, 보조기기 관련 서비스 제공에 대한 국가의 책임, 설립 운영 대상 기관, 소비자 권익 보호, 전문인력 양성 배치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고, 제4장은 보조기기 관련 산업 육성과 연구개발 지원으로 보조기기 연구개발과 산업 육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 육성 대상 기술에 대한 세부적인 명시, 유통구조의 개선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마지막 5장은 보칙으로 재원 조달과 기금조성, 보조기기 사용에 대한 차별 금지, 기초지자체와의 협조, 권한의 위임이나 법 내용의 위반에 따른 벌칙과 관련된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나누면 총칙과 보칙 외에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보조기기의 지원에 대한 내용’, ‘지원을 위한 서비스 기관 설립과 운영에 대한 내용’, ‘관련 산업 육성과 연구개발 지원에 대한 내용’, 이렇게 3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국가의 책임 구체적으로 명시

주요한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법의 명칭과 용어의 정의에서 보조기구의 사용 대상을 장애인에 국한하지 않고 노인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어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개념을 반영하는 선진국의 추세를 적용하는 동시에 적용 대상 인구 집단의 확대를 통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보조기기 뿐만 아니라 ‘보조기기 서비스’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제4조에서는 보조기기 지원, 관련서비스 제공,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선언적으로 명시하였다.

제4조의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이후 5조에서 국가가 보조기기 지원, 관련서비스 활성화, 산업 육성을 위해서 각 부처들이 통합적으로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의 검토와 계획 실천사항의 점검을 위해서 보조기기 정책지원단을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두는 것으로 국가 책임의 실천을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제2장은 제7조 보조기기의 지원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에는 복지부가 장애인의 신청에 따라 보조기기를 무상교부, 대여, 수리하거나 구입비용 지원, 융자 등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무와 기존에 지원되는 품목 외에 지원 대상 품목과 자격에 대한 내용을 시행령으로 위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외에도 보조기기의 품질관리에 대한 내용, 지원 대상 품목을 지정해서 세부적인 품목 분류, 기술표준과 품질 기준의 제정과 고시, 관련 업체의 기준 등을 준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관련 서비스와 기관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있는데 제13조에서는 정책개발, 홍보, 서비스망과 지원 기기 업체의 관리와 같이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중앙보조기기센터와 광역자치단체에서 설치 운영하며 전시장, 보조기기 관련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광역보조기기센터, 그리고 지역사회의 각종 재활관련 기관과 연계해 보조기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사회 보조기기 관련 서비스 연계 수행기관, 이렇게 세 가지 종류의 보조기기 서비스 기관을 설립하도록 한다.

그리고 제12조에서 각 기관들이 정보제공, 전시체험, 상담, 평가, 보조기기 적용, 대여, 교부, 구입자금 지원과 융자, 제작, 개조, 수리, 교육, 훈련과 같은 세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그리고 제4장 보조기기 관련 산업 육성과 연구개발지원에서는 장애인의 욕구에 따라 제작돼야 하는 기술, 제품 단위로 우수 품목을 지정해서 지원하고, 현장 서비스 기관들도 장애인의 욕구에 기반해서 관련 서비스나 기술을 개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법안의 통과와 시행까지 몇 가지 논란의 여지와 아쉬움도 남아 있다. 첫 번째로는 시기적인 부담이다. 이번 4월로 회기가 마감되는 국회에서 법률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이 법률안은 자동폐기되고, 다음 국회에서 다시 발의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지난 해 말 대선의 홍역을 치르고, 민생현안은 물론 2008년도 예산까지도 기한 내 처리하지 못하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겪은 국회가 이번 회기 내에 이 법안을 통과시킬 것인지 적잖은 우려가 앞선다.

지원품목 선정 과정에 장애계가 참여해야

아직 논란이 끝나지 않은 내용들도 군데군데 있다. 예를들면 용어의 정의에서 ‘보조기기’를 사용한 것은 기존에 사용되던 ‘장애인보조기구’를 보다 보편화 시킨면이 있지만, 반대로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익숙치 않은 용어라는 점에서 혼란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또한 이 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제7조의 보조기기 지원에서 지원 품목이 시행령으로 위임됨에 따라 적극적인 보조기기 지원 정책이 수립되지 않을 수 있는 여지도 남겨져 있다.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원품목의 선정과정에 장애계가 참여할 수 있는 절차와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타 부처에서 이미 지원하고 있는 보조기기 관련 사업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통합시켜 나갈 것인가하는 과제도 남겨져 있다. 법안의 취지는 보건복지부가 종합계획 수립의 통합과 조정의 종합적 책임을 가지고, 연관 부처들이 협력적인 관계 속에 해당 부처의 소관 대상자와 보조기구 지원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가지는 것이지만, 다른 부처들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책임을 복지부로 미룰 때 보다 강력한 조정과 강제의 수단이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의 시행을 위한 예산 확보다.
법의 시행을 위해서는 장애인 개인에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과 함께 가장 중요한 보조기기 지원을 위한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국내 장애인과 노인 인구의 절반 정도를 법 적용 대상 인구집단으로 예측하고 대상인구 350만 명의 20%인 70만 명씩에게 연 평균 5만 원씩의 보조기기를 지원한다고 가정해도 연간 350억 원씩의 예산이 소요된다.

물론 이 예산은 앞서 미국정부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향후 사회 보장 비용을 통해 지출될 더 큰 예산을 막을 수 있는 투자적 성격의 예산이 분명하지만, 이러한 내용으로 기획예산처와 행정부처를 설득하는 것이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장애인 복지는 앞으로 더 나아져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논란도 있고 과제도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풀어가야만 한다는 점이다. 보조기구에 대한 지원 강화는 선진국으로 가야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세계적인 필수요구조건이다.
지난 해 체결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장애인 개인이 부담 없는 수준에서 보조기구를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협약 가입국들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꼬마친구에게 영국에서 계속 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얄미운 미국 부럽다고 침만 흘리지 말고, 하루속히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법 제정해서 이젠 “법대로 합시다”라고 큰 소리 칠 수 있는 날을 속히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작성자남세현(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편의증진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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