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의 궤변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본문
먼저 <인터넷 함께걸음>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글재주도 일천한 나에게 칼럼리스트를 제안하며 보여준 ‘우’정에 앞선 ‘인’정에 <함께걸음> 제작진에게 감사를 표한다.
최근 두 번째로 상근을 했던 단체에서 ‘대표의 독단과 조직의 민주성 및 운동성 결여’라는 똑같은 이유로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애인단체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 비슷한 리더십의 문제에 봉착해 있어 이것이 몇몇 리더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라진 시민사회의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 개념의 변화에 대한 시민사회 전반에 걸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하기로 한다.
암튼 그러저러한 이유로 의기소침한 상태라 활동에 있어 전과 같은 열정이 일지 않는 요즘이라 글을 쓰는 것도 솔직히 쉽지만은 않다. 글이라는 것은 경험과 생각을 텍스트라는 매개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나에게 있어 글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장에 대한 감각과 그에 대한 깊은 고민인데, 몇 달 동안이나 현장에서 멀어져 사무실에 틀어박혀 사업비 조달을 위한 프로포절 작성에 발이 묶여있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감각이 많이 무뎌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지금 나는 글쓰기에 있어 일종의 변비상태에 있다. 뭔가 하고 싶은, 해야 할 이야기는 많은데, 막상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답답함이 마음 한가운데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억지로 글을 쓰게 되기도 하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쓴 글을 내가 봐도 궤변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 꼭지의 이름을 쾌변이라 지은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 내가 앓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변비를 해결할 수 있는 쾌변(快便)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글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의 굴레에 얽혀 신음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배반하도록 만드는 자본과 권력, 그리고 기득권 장애인들의 궤변을 ‘거침없이 하이킥(^^)’해버릴 쾌변(快辯)이 되길 바라는 의미다.
이 공간을 통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독자들 모두 쾌변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최근 두 번째로 상근을 했던 단체에서 ‘대표의 독단과 조직의 민주성 및 운동성 결여’라는 똑같은 이유로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애인단체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사회단체에서 비슷한 리더십의 문제에 봉착해 있어 이것이 몇몇 리더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라진 시민사회의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 개념의 변화에 대한 시민사회 전반에 걸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하기로 한다.
암튼 그러저러한 이유로 의기소침한 상태라 활동에 있어 전과 같은 열정이 일지 않는 요즘이라 글을 쓰는 것도 솔직히 쉽지만은 않다. 글이라는 것은 경험과 생각을 텍스트라는 매개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나에게 있어 글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장에 대한 감각과 그에 대한 깊은 고민인데, 몇 달 동안이나 현장에서 멀어져 사무실에 틀어박혀 사업비 조달을 위한 프로포절 작성에 발이 묶여있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감각이 많이 무뎌져 있는 상태다.
그래서 지금 나는 글쓰기에 있어 일종의 변비상태에 있다. 뭔가 하고 싶은, 해야 할 이야기는 많은데, 막상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답답함이 마음 한가운데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억지로 글을 쓰게 되기도 하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쓴 글을 내가 봐도 궤변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 꼭지의 이름을 쾌변이라 지은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 내가 앓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변비를 해결할 수 있는 쾌변(快便)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글이 철저한 차별과 억압의 굴레에 얽혀 신음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배반하도록 만드는 자본과 권력, 그리고 기득권 장애인들의 궤변을 ‘거침없이 하이킥(^^)’해버릴 쾌변(快辯)이 되길 바라는 의미다.
이 공간을 통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독자들 모두 쾌변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성자김주현 (칼럼니스트)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