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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라는 모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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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계 내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심정은 언제나 곤혹스럽다. 열악한 장애인 현실을 감안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일단 자기 식구를 감싸고 봐야 하는데, 이 점을 무시하고 비록 일부지만 장애인 단체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비판의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일부 장애인 단체의 행태가 지켜야 할 선을 한참 벗어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장애계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전동휠체어 부정 수급 문제에 더해, 지하철 내 판매대 문제가 새롭게 불거지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면, 최근 서울 지하철 5·6·7·8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도시철도공사는 적자를 이유로 올해 9월부터 141개 역 가운데 138개역에 편의점을 설치·운영할 방침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역사에 편의점이 들어오면 장애인 등이 운영권을 갖고 있는 기존의 승강장내 통합 판매대와 파는 물품이 겹쳐서 장사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농성 등을 통해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무척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태 와중에 엉뚱하게 장애인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운영 실태를 직접 확인해본 결과 현재 판매대 91개 중 장애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은 채 10개도 안 되고, 나머지는 모두 유통업자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유통업자들의 수법을 보면, 업자들은 신청 때 일부 장애인 단체와 공모해서 저소득 장애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영구 임대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면서 라면 한 박스나 현금 3만원을 주고 한 업자 당 수백 명의 명의를 빌린 다음, 판매대 운영권에 당첨되면 ‘내가 돈과 발품을 들여서 당첨된 거니까 판매대 운영권은 내 거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한 예를 들면 운영권에 당첨된 장애인에게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단 5만원만 지급한 업자도 있다는 게 도시철도공사 담당자 얘기다. 또 대부분의 업자들이 당첨된 장애인들과 이면 계약을 맺는다고 하는데, 가령 계약 때 장애인에게 150만원을 주면서 3년 안에 문제가 생기면 세 배로 갚아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해서 목돈이 없는 장애인들이 업자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역시 도시철도공사 측의 얘기였다.

현재 지하철 판매대 운영은 장사가 잘되는 역은 한 달 수입이 1천만 원을 넘는 곳도 있는데, 이렇게 유통업자들이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 장애인들에게는 거의 돈을 주지 않고, 사실상 유통업자들이 장애인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 도시철도공사 측 얘기의 골자다.

이런 도시철도공사 측 주장에 대해 농성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현재 판매대 운영 조례에 따르면 직접 운영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의 경우 종업원을 채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고, 무상임대가 아닌 유상임대라는 점을 들어 도시철도공사는 운영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판매대 운영을 둘러싸고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는 도시철도공사가 조만간 이 문제를 검찰에 수사의뢰 한다니까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그런데 그 전에 장애인 입장에 서서 한 가지 지적할 수밖에 없는 건, 도시철도공사 얘기대로 만약 단 한 곳이라도 유통업자가 개입되어 사실상 장애인들을 착취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건 여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인데, 드러난 정황상 일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판매대 운영에 유통업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유통업자 뒤에 일부 장애인 단체 간부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장애인 단체 간부들이 유통업자들에게 돈을 받고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결국 요약하면 저소득 장애인을 위한 소득보장 정책이 엉뚱하게 유통업자들 배를 불리고 있다고 봐야 하며, 그 뒤에 유통업자와 일부 장애인 단체 간부와의 검은 커넥션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런 장애인 단체 비리도 문제지만, 정작 장애인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점은 전동휠체어 부정 수급 문제도 포함해서 업자에게 당하는 장애인이 바보라는 사회적인 모멸감이다. 아무 죄도 없는 장애인들이 왜 이런 모멸감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장애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일부장애인 단체와 간부는 분명하게 해명해야 한다.

검찰 수사로 장애인 단체 간부가 결과적으로 장애인을 착취했다는 보도가 나온다면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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