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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칼럼] 장애인과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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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정립회관에서 장애인 자립생활 세미나를 연 적이 있다. 마침 필자도 그 세미나에 초청 받아 참관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일본에서 자비를 들여 건너 온 전문가와 자립 생활자들이 연사로 나와 자립 생활의 여러 문제와 방안 등을 논의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자립.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자립이야말로 모든 장애인의 꿈이고 희망이며 궁극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어떠한가. 장애인에게 있어 자립을 입에 올리는 것은 요원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오죽하면 부모가 성장해봐야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자신의 장애아를 먼저 죽이고 뒤따라 자살하는 경우까지 있겠는가 말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일이었다. 동네에서 아이들과 흙투성이가 되어 놀고 있는데 지나가던 책 외판원이 말하는 거였다.

  “몸이 불편해도 머리만 좋으면 잘 살 수 있다.”

  당시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잘 살 수 있다고 나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간단 말인가. 집에 가면 언제고 부모님이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하지만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자립해서 먹고 사는 문제는 절대 절명의 문제임을 깨달아야만 했다. 아무리 고상한 형이상학적 명제나 총론도 생계라는 각론 앞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림을 절감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자립은 나에게 마치 70년대에 부르짖던 백억불 수출, 천불 소득의 분홍빛 꿈만 같았다.

  게다가 필자는 소위 돈 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대학 4년이 모자라 대학원 석사 박사까지 해야 했으니 이건 그야말로 부모님에게 완전한 민폐였고, 동생들에게는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으리라.

  결국 필자가 완전한 자립을 할 수 있었던 건 몇 년 전의 일이었다. 92년도에 박사학위를 받고 소설가로 등단하면서 글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 때 내 나이 32세였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감에 사로 잡혀 살고 있다. 전업 작가로서, 대학교의 강사로서 어느 하나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생계대책이 될 수 없는 것에 기대어 아내와 세 아이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 내가 봐도 어떻게 가정을 꾸려 나아가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오죽하면 내 소원이 월급쟁이 되는 것이겠는가.

  하지만 일급 장애인인 내가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일을 갖게 되면서였다. 그렇기에 나는 내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일본의 자립 장애인들은 손 하나 까딱 못해도 정부지원금으로 혹은 자신이 번 돈으로 봉사자를 고용해 방청소며 요리, 빨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며 살 수 있다고 했다.

  하다 못해 요리할 때 양파를 몇 조각 내라는 것까지 자기 의지대로 시키면서 주체적인 삶을 산단다.

  그건 우리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자립의 대책은 뭐 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주면 된다. 우리 장애인들이 호사스럽게 먹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돈을 모아 치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반지하라도 좋으니 월세방 얻어서 독립된 생활하면서 남들처럼 출퇴근하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게 어려운가. 어려운 일 아니다. 정부가,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만 지켜도 순식간에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의 앞날이 갑갑한 것은 한 치 앞의 계획도 세울 수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 갑갑함을 해소하고 앞날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길은 바로 안정된 고용 뿐이다.

  결국 장애인의 자립은 원론적인 입장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그치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문제는 실천하는 사람의 의지일 뿐이다.

  비록 정리해고에서 장애인부터 일차로 해고되는 현실이지만 우리 용기와 희망은 잃지 말자. 자립은 비장애인에게도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이 IMF 시대에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글 고정욱 (소설가 성균관대학교 강사)


※ (필자의 요청에 따라 ‘장애인’을 살려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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