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자유로운 나라 한국의 의심스러운 장애우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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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권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가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국제인권연맹이 지난 6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올해의 인권상’을 수여한 데 이어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는 11월 ‘세계인권상황 평가서’에서 한국의 인권상황을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양면에서 모두 자유로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 단체는 국민이 누리는 자유도를 1(최상)~7(최하)로 분류하고 한국의 인권상황을 1~2.5점(한국 2점대)의 ‘자유로운’국가 (세계 81개국 : 42%)에 올려 놓았다. 3~5.5점대는 ‘부분적으로 자유로운’국가, 5.5~7점은 ‘자유롭지 못한’국가로 각각 분류된다.
한편 장애우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유전적인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해 불임수술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한 모자 보건법 15조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의 모자 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지난 10월 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3개 단체의 여성과 장애우 6인이 제기한 제대군인의 가산점제도가 평등권에 위배됨을 주장하는 헌법소원 청구가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심판에 회부, 본격 심리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장애우 인권헌장 선포가 반갑고 인권법에 대한 기대가 크다.
차별 국가에서 장애우 인권 보장 국가로
요즘 들어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사상전향제도를 폐지하고 준법서약제를 도입함에 따라 백태웅 씨와 박노해 씨 등이 석방되고, 지난 달 말 현재 국가보안법 입건자와 구속자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5%, 30% 감소했다. 사법부의 독립성 보장도 한결 나아지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 독단도 부쩍 사라졌다. 보안법 위반자 구속사계나 도처의 관행이 여전하고 노동법의 제한, 범죄자에 대한 인권 침해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지만 유엔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해에 인권운동의 대명사였던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과 흐름을 같이 해 인권상황이 눈에 띄게 호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애우의 인권으로 초점을 돌려보면 과연 우리나라는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일까?
장애우의 인권은 국가의 정책과 사회의 인식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측면이 강하다. 프리덤 하우스의 기준에 비춰 장애우 편의 증진법이나 고용촉진법 등의 보장책을 고려하면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일 것이고, 장애우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권과 각종 권리행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자유롭지 못한 국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미 국무부는 95년 세계인권현황 보고서에서 한국은 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 및 편견 등이 해소되지 않아 장애우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우의 인권상황은 여전하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서 장애우는 사회로부터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권리박탈을 당해왔다. 시각 장애우, 청각장애우, 혼자 수학이 어려운 장애우들은 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대학문 앞에서 눈물을 삼키고 돌아서야 했고, ‘불구’ ‘폐질자’라는 규정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농촌근대화촉진법 시행규칙(농기구운전면허), 직업훈련기 본법(심신장애자 채용규제), 전파관리법 (무선사), 영사기면허령(영사 및 촬영기사 면허)을 비롯, 의료법, 의료기사법, 약사법, 이․미용사법, 특수교육진흥법, 수의사법, 방사선관리 및 장해방어령, 공무원채용 신체검사규정, 직업안정법, 운전면허 교부, 해외이주법상 시․청각장애우 자격제한 등 무수한 법안들에서 장애우들의 채용을 규제해 사실상 정부가 장애우의 직업재활을 길을 막아 놓았었다.
지금은 그때와의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장애우들이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대다수의 장애우들은 교육의 혜택이나 직업보장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정부차원에서 장애우 인권 헌장을 제정, 선포한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러나 선언적인 헌장보다 정작 기대되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인권법 제정이다. 인권법 시안에 따르면 성별, 인종, 종교, 정치적 견해, 장애우,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정치-경제-사회 어떤 영역에서도 차별할 수 없다는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당한국민은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당한 국민은 인권위원회에 진정서 등을 내 피해사실을 호소할 수 있고 인권위는 검사나 경찰관 등에 대해 관계자료 제출이나 위원회 출석을 요구할 수 있고, 필요하면 현장조사도 벌일 수 있도록 보장할 예정이어서 제대로만 시행이 된다면 장애우의 인권이 크게 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지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것은 세계 최초의 장애우 인권선언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장애우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장애우를 더 이상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권보다 부정이 우선한다?
캐나다에서는 뇌성마비 장애우 딸을 살해한 아버지의 처벌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은 아버지의 부정이냐 인권이냐를 둘러싸고 국민 여론을 5년 동안 들끓게 했다.
12살 뇌성마비 딸의 아버지 로버트 래티머(41) 씨는 93년 10월 수 차례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날마다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딸을 자신의 트럭에서 가스 중독사시키고 곧바로 자수했다. 그는 딸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 죽였다고 자백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이웃들이 딸에 대한 그이ㅡ 사랑을 증언했고 아내는 용기가 있었다면 자신이 먼저 딸아이를 죽였을 것이라고 했다.
지방법원은 그를 2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언론과 국민들은 선처를 호소했고 변호인단은 법적용과 절차가 잘못됐다며 항소했다. 다시 고등법원 재판부는 아버지의 고통을 정상참작해 1년형이라는 파격적인 처분을 내렸다. 이번에는 인권 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장애우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우려할만한 조치라는 것이다. 결국 지난 11월 23일 대법원은 10년형을 최종 확정했다.
이러한 문제가 국내에서 일어났다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국내 법원은 장애아의 살해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75년 7월 10일자 경향신문에는 ‘불구아들 살해 모정 기소유예’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모 (당시 38) 여인은 트럭에 치여 오른 쪽 다리를 절단, 의족을 한 10세 아들을 두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방에서 자던 중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아들의 절단된 다리가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정신장애를 일으켜 허리끈으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하고 곧바로 자수했다. 검찰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지 못하는 것을 항상 비관해 왔으며 박군의 장래에 대한 근심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고 자백했다. 당시 담당 검사는 심신미약 상태에서의 우발적 범행이고 처벌해도 일반예방이나 특별예방의 효과가 없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기소유예 석방을 내렸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96년 8월 비슷한 사건에 대한 국내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한 장애아의 어머니가 모체로부터의 매독 감염으로 발육부진과 소아마비 증세를 갖고 태어난 2개월 된 아이를 방바닥에 내팽겨쳐 죽인 사건이었다. 아이의 장애가 생명의 위협을 당할 정도의 심한 장애도 아니고 살해 방법이나 동기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기 어려움에도 정상참작을 하여 3년형이란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녀의 고통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면 국내에서 벌어졌던 두 사건은 한국적인 현실에서 장애아와 살아가야 할 버거움에서 빚어진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아를 둔 부모의 고통이란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고 이러한 사건의 판결을 신중해야 한다. 어떤 힘도 생명의 힘에 앞설 수 없음은 두말 할 나위 없고 관대한 판결은 자칫 유사한 동기에서 빚어진 장애아에 대한 살해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우를 부를 수도 있다. 캐나다의 인권단체가 반발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독자 속인 모그룹 사외보
모그룹 사외보에 오려두고 싶은 글이라는 코너가 있다. 지난 10월호 이 코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제목의 대단히 감동적인 독자수기가 실렸다.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자애우인 필자를 뒷바라지 하느라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못간 누나가 평소 장애우 손님을 성심으로 돕고 고아원 후원 등의 선행을 펼치다 교통사고로 장애우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휠체어를 탄 누나와 외출을 하는데 대부분의 택시들이 외면하는데 한 여자 택시기사가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성심껏 도와 태웠고 이것이 인연이 돼 그 필자는 그 여자 택시기사와 결혼을 해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일보의 N기자는 이 기사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수소문 끝에 인천 가정1동에 산다는 필자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그 주소지는 어이없게도 미나리를 기르는 논이었다. 알고 보니 사외보를 낸 회사가 모 편집회사에 외주를 주었던 것이고 글쓴이는 픽션전문 작가였다. 그 잡지에 실린 사람들은 그가 가공한 인물들이었다. 4만 2천부를 발행, 고객과 여론 지도층들에게 보내지는 공신력 있는 잡지가 독자들을 우롱한 것이다.
올해 고입 검정고시에서 수석과 3등을 차지해 화제가 되었던 장욱, 장훈 현제(골형성부전증)로부터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여성잡지사 여기자가 취재를 요청했단다.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여서 밀려드는 취재요청에 질려 거절했는데 여기자는 돌아가지 않고 대문 밖에서 장대비를 맞고 서성이고 있었다. 형제의 어머니가 보다 못해 취재를 안한다는 조건으로 불러들여 이런 저런 얘기 나누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여러 여성지에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여기자란 사람은 기사를 작성해 팔아먹는 취재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연말이 되면 언론사마다 미담 찾아내기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그 주 고객은 장애우들이다. 신문, 잡지, 방송할 것 없이 좀 더 색다르고 좀더 감동적인 미담 기사를 찾느라 머리를 싸매지만 소재가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니 위의 예처럼 무리한 행태마저 빚어지는 것이다.
미담 기사들은 관점이 정해져 있다. 대부분 그 장애우가 하는 일이나 그를 둘러싼 환경과 편경을 알리기보다는 뒤틀어지고 삐뚤어진 시체와 장애에 대해 더욱 관심을 보인다. 남들 다하는 일을 장애우가 하면 마치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일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장애우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지 순수한다느니 천사 같다느니 하는 미사여구를 즐겨 쓴다. 그렇게 높이 사는 능력이라면 왜 사회가 그에게 임무를 부여하는데 그토록 인색한 것인지, 사회가 천사를 그렇게 푸대접을 해도 되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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