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패러사이트 싱글 문제 해결의 원칙
본문
얼마 전 일본 언론 몇 군데서 일본 내 패러사이트 싱글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신조어인 ‘패러사이트 싱글’은 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 성인이 되어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동거하면서 식비, 주거비, 생활비 일체를 부모에게 의존하는 성인을 말한다. 바로 이들의 고령화가 향후 일본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 주요 위험 요인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는 우려였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1990년대 일본 버블 경제 붕괴로 정규직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등장했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45~54세 연령대 중 부모에 의존해 살고 있는 패러사이트 싱글은 2016년 158만 명으로 증가했고 이 가운데 의식주 등 생활의 가장 기초적 부분까지 모조리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들이 31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제 이들의 부모 세대가 70~80대에 접어들어 10~20년 뒤 사망하게 되면 중장년층 패러사이트 싱글들은 생활의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사회에 그냥 내버려지게 된다는 언론 보도였다.
일본 언론들이 딱히 일본 내 45~54세 연령대 장애인들을 지목해 패러사이트 싱글 범주에 넣지 않았지만,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해 보면 일본의 성인장애인들이 패러사이트 싱글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아직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 45~54세 연령대 장애인들 상당수가 독립할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나 형제에게 의존해 기생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유는, 장애인이 비정규직으로 일했기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갈 곳이 없어 부모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성인장애인들의 절박한 문제는 다가올 내일이다. 10~20년 뒤 부모가 연로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앞으로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보호자가 없으면 거주시설이나 양원에 들어가 살면 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애인들에게 이런 간단한 결론은 너무나 가혹하다. 그렇지 않아도 평생을 장애인으로 힘겹게 살았는데 다시 그 장애가 이유가 되어 중장년시기와 인생의 마지막을 갇힌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면, 그동안의 장애인 운동이 실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자괴감을 곱씹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 현실에서 지금 장애인 패러사이트 싱글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이르다고 치부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모두가 인정하고 있듯이, 어느새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한 예를 들면 지난 5월 12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연탄불을 피우고 함께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두 모자의 비극에 투영된,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 어느 날의 모습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연로한 부모가 중장년의 장애인 자녀를 보살피다, 생활의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장애인 자녀를 그냥 집 밖으로 내팽개쳐야 할 상황에 몰리면 같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안타까운 비극이 여러 번 발생하게 되면 정부는 마지못해 대책을 내놓겠지만, 십중팔구 그 대책이란 것이 시설 수용이라는 뻔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지금의 문제일 수도 있고, 곧 눈앞에 닥칠 미래 문제인 장애인 패러사이트 싱글 해결책에서 시설 수용을 배제하고, 어떠한 대책이 있을까? 부모를 대신해 형제에게 부양의무를 지운다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
결론은, 장애인 패러사이트 싱글이라는 단어가 일시적 신조어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고 원칙을 가진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의 첫 번째는 격리된 시설 수용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자립생활 보장이어야 할 것이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