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 대응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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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집값 하락이 아니라 장애인 혐오다.
떠들썩해 보이지만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 반대 사태는 또 하나의 흔한 장애인 혐오사건일 뿐이다.
사태 와중에 나온 설왕설래와 기록을 보면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지역사회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 후 시설 부근 집값이 하락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 결론은 무지에서 비롯됐든, 편견에서 비롯됐든, 본능에서 비롯됐든, 반대 주민들은 장애인 이웃이 보기 싫다는 말을 집단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라는 저서에서 “흔히 혐오나 증오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특정한 사회적 ‘표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멸시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표준이라는 믿음 자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순수성에 대한 맹신이자 폭력적인 편견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시 특수학교 건립 반대 얘기를 하자면, 비정한 경제논리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폭력적인 편견을 내뱉는 주민들에게 장애아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언제까지 장애인 혐오에 대한 대응이 무릎까지 꿇고 애원하는 것이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애초에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 반대 사태는 그 부지가 특수학교 설립 부지였으면 당연히 학교를 지으면 되는 것이고, 한방병원 부지였으면 병원을 설립하는 게 당연하다는 원칙으로 접근했으면 문제가 없었다.
굳이 장애인 혐오로 설왕설래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장애인 혐오의 다른 말은 차별이다. 무엇보다 ‘오죽하면’이란 말이 어른대지만, 그래도 무릎 꿇은 부모들에게는 미안한 얘기로, 장애인 차별에 대한 대응이 감성적 애원이었던 것은 섣부르지 않았나 싶다.
차별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있기 때문에 일단 법적으로 대응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론을 보면 현재 서울 서초구와 중랑구, 강원도에서도 특수학교 설립이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장애인들만 따로 모아놓고 교육하는 특수학교 설립이 아주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교가 됐든, 다른 시설이 됐든 장애인 관련 시설이 지역사회에 들어서는 데 사전에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반대하면 무릎을 꺾으며 빌어야 하는 야만적인 현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제는 님비(NIMBY) 현상이라고 부르지 말고 장애인 혐오 범죄라고 직접적으로 말해야 한다. 무너진 공동체 의식과 약탈적 이기주의에 대한 대응도 무릎 꿇고 애원하는 게 아니라 법적 대응 등 강경하고 단호한 방식이어야 하며 반드시 그 행위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혐오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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