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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다 1988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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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창간 30주년을 맞는다.

창간 연도인 1988년, 아무런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잊혀 졌던 한 발달장애인의 죽음을 기억한다. 그가 죽음으로 알리고자 했던 시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현재의 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미워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나를 미워했다. 하느님만은 내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이다.”

당시 스물두 살이었던 발달장애인 故 정동열 씨, 그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시설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해당 시설에 근무했던 보육사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 시설은 하루에 한 번 왕래하는 배로 3시간을 가야 하는 섬에 있었습니다. 위치적으로 섬이었기에 생활의 불편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역적 취약점으로 원생들은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고, 사회의 시선이나 간섭, 보호가 미치지 못해 원장을 비롯해 관리자의 횡포가 극도로 심했습니다. 구타는 물론, 원생들에게 심한 노동을 시켜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주식, 부식이 부실해 원생 대부분이 영양실조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특수학교라는 것은 허울 좋은 이름뿐, 실질적으로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은 모두 작업에 동원돼 노동 외에 다른 생활은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정동열 씨는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더욱 심한 노동을 강요당해 왔고, 도망칠 것을 우려해 별도로 격리된 채 살았으며 철저하게 편지, 전화 통화 등을 금지당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근무하는 동안 관리자들의 횡포를 막으려 맞서서 많은 싸움을 했었지만 결국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직원이 저 하나뿐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원장 및 관리자들의 목적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와 같은 일을 당해야 했습니다.
정동열 씨가 죽은 후 경찰이 밝힌 사인은 뇌전증, 정신질환, 비관자살 등이었습니다.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구실로 덮여지고 결국 억울한 개죽음을 당한 결과가 됐습니다. 그의 죽음을 불행하게 태어난 한 고아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 외면해 버리실 수 있으신지요. 사회복지의 일선에서 장애인들에게 삶을 보장해 주고 있다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급급한 일부 시설장과 관리자들, 그리고 그런 비리를 알면서도 적당히 챙겨주는 뒷돈에 눈감아 버리는 공무원들. 이러한 사회에 태어난 수많은 장애인들은 어디 가서 그들의 인권을 찾으며 어디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겠습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해 겨울 당시 이 사건제보를 받고 그 시설에 가보려 했었다. 인천 선착장에 갔는데 궂은 날씨 탓에 섬으로 가는 배가 출항하지 않았다. 뱃길 왕복 6시간, 그것도 날씨가 좋아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섬. 그곳에 있는 시설에서 장애인이 죽음으로 시설문제에 항거했지만 세상은 그의 죽음을 외면했다. 하다못해 단신 기사 한 줄로 그의 죽음을 알린 신문조차 없었다.

그는 죽음으로 왜 탈시설이 필요한지를 외쳤다. 지금도 어느 외딴섬에서, 섬처럼 외진 곳에서, 도심이지만 사방이 성벽처럼 둘러싸인 시설에 갇혀 신음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1988년 어느 겨울, 외딴 섬에서 쓸쓸히 죽어간 정동열 씨의 호소는 외면당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 장애계에 탈시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훗날 탈시설의 바람이 훈풍이 돼 현실로 이뤄지고, 그 바람의 기운이 따뜻하게 그의 넋을 안아줄 것으로 믿는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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