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 사업으로라도 기본소득제를 시행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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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본소득제도 이야기를 해보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민 모두에게 매달 일정소득을 조건 없이 지급해 기본 삶을 보장하고 아울러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의 기본소득제. 그동안 간간이 외신을 통해 여러 나라에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만 접할 수 있었다. 그랬던 게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제 실험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라는 단체에 따르면, ‘당신에게 매월 50만 원이 생긴다면 무얼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지난해 8월 시작한 한국판 기본소득제도 실험이 올해 4월로 끝이 났다고 한다. 50만 원 기본소득 지급대상이 단 4명, 거기에다 지급 재원도 공적 기금이 아닌 민간 조달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성과 국가책임제를 지향하는 기본소득제의 취지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관심을 끄는 건 기본소득제 실험 결과다. 만약 평범한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만약 장애인들에게 여윳돈 형식으로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삶의 질이 어떻게 바뀔까.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여러 가지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기본소득제 실험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한국판 기본소득제 실험은 ‘쉼표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신청자가 많아서 추첨을 통해 4명에게 6개월간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수의 연구자가 매달려 과정과 결과를 분석했는데 일단 부작용은 없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모두 기본소득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혼자만의 성을 쌓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로, 또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실험 참가자들은 기본소득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고, 함께 여행을 가고, 자전거, 세탁기 등 갖고 싶었던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일들이 불가능했었는데 기본소득이라는 여윳돈이 생기면서 가능해졌다. 즉 요약하면 기본소득이 나와 가족을, 친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삶에 여유를 갖게 만들어 줬다는 게 실험의 결과다.
아직도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장애인들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기본소득 실험 결과는 다른 나라 이야기이고 가능하지 않은 현실일 것이다. 특히 빈곤에 시달리는 기초생활 수급 장애인들에게는 단 몇 만 원이라도 가외수입이 생기면 바로 생계비가 깎이는 실정에서 기본소득 지급으로 여유 있는 삶은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한낱 꿈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희망고문일지라도 꿈은 누구나 자유롭게 꿀 수 있다. 그리고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기본소득 실험이 미약하지만 국내에서도 이뤄졌다.
장애인 문제의 태반이 빈곤 문제인 현실에서 장애인들에게 기본소득 문제는 여윳돈이 생기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지금 장애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빈곤으로 단절된 너와 나의 관계를 이어주는 일이고,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가족·친구 등 주변을 보듬기 시작하는 일이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빈곤으로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장애인들도 약간의 여유가 있으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고, 함께 여행을 가고, 전동휠체어 등 갖고 싶었던 보조기기들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세상으로 나가는 삶과 여유로운 삶의 길이 꽉 막혀 있다.
대안은 보편적인 복지시스템 안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게 힘들다면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이라도 인정하고 보상해줘야 한다. 이것도 힘들다면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처럼 민간에서 시작해 보는 방법이 있다. 장애인 단체에서 그 흔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펀드를 모금해서 신청자가 많으면 추첨을 통해서 수십 명, 아니 다만 몇 명이라도 대상자를 선정해서 일정 기간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한 다음 장애인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추적해 보자. 틀림없이 징검다리가 생기면서 놀라운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누가 아나, 시범사업이 나중에 제도로 정착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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