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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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준비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틀어놓는 버릇이 생겼다. 이럴 때 가스렌지에 앉힌 찌개 끓는 소리, 수돗물 트는 소리, 그릇 부딪히는 소리들 사이로 텔레비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인권운동가인 어느 재일 교포 여성이 삶의 방영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 이름 석 자를 당당하게 쓰는 사람이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유난히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잠시라도 손놀림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는 한 순간 나의 눈길을 단번에 화면에 옭아매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그냥...○○○으로 살고 싶어요.(자기 이름 석 자를 대며)”
―인권운동 열심히 하시는 중에도 인간적인 욕망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꼭 가정을 가지고, 무엇을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건 아니죠. 나는 자기 자신을 굉장히 사랑해요. 나의 생각, 몸, 이런 모든 것들이 너무도 소중해요. 물론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현재의 나에게 만족해요.”
나는 꽤 철이 들 때까지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가 몹시 어려웠었다. 눈만 뜨면 맞닥뜨리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장애를 가진 별난 존재였기 때문이다.
거울보기가 몹시 두려웠던 시절, 어쩌다 외출을 하면 균형이 안 잡힌 몸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내 몸을 거리의 쇼윈도에서 만나곤 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나를 대하는 주위 사람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상처를 받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니. 이렇게 싫고 어색한 나를?
어쨌든 그런 말은 오랜 동안 나에게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다. 그 무렵 읽었던 짧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그때 이야기가 한동안 내 마음에 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둥지에 커다란 새가 자신의 알을 하나 떨구어 놓고 갔다. 암탉은 그것도 자신의 알인 줄 알고 열심히 품었다. 얼마 후 새끼들이 알을 까고 나왔다. 그런데 노랗고 귀여운 병아리들 틈에 유독 한 마리만이 갈색의 뻣뻣한 털에 몸집과 부리가 큰놈이 섞여 있었다. 다른 병아리들은 그를 ‘못생긴 놈’이라고 놀려댔다. 그래서 못생긴 놈은 병아리들과 같아지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먹이를 먹는 모습이나, 걸음걸이까지도 병아리들과 비슷하게 되었지만 그의 생김새나 그를 대하는 병아리들의 구박을 달라지지 않았다.
한없이 슬픔에 겨운 어느 날, 못생긴 놈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커다란 갈색 날개를 펼치고 눈매와 부리가 날카롭게 생긴 새 한 마리가 멋지게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못생긴 놈은 넋을 잃고 그 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참 멋지구나.’
아마 나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일찍이 이솝우화에서도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삼 ‘못생긴 놈’ 이야기가 마음을 흔들었던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타인과 비교당하면서 자학을 일삼았던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들과 같지 않다고 해서 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었던 것이다. 나는 ‘나’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열등감도 우월감도 의식 속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장애우 문제, 혹은 소수 집단의 문제를 ‘차이’로서 의식하지 않을 때 사회적 차별이 생겨나고, 그리하여 문제를 안고 있는 집단이나 당사자들에게는 막대한 고통과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장애우 문제를 나와 남의 다름이라는, ‘차이’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 우리들 마음속에 새로운 천년은 그렇게 왔으면 좋겠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던 그 여성은 일찍이 자신이 병아리 둥지 속의 독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편안하고 당당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부럽고 아름다웠던지. 어느새 가스렌지에 올려두었던 찌개가 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냄비 뚜껑을 열어 젖히는데 ‘아! 참 멋지구나’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새어나왔다.
글/ 심성은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빗장을 여는 사람들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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