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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보장구 변천사

[굿바이! 장애우의 20세기]

본문

  전통적으로 보장구는 지체장애용 의수족(의지),  보조기, 목발, 휠체어,  청각장애용 보청기 그리고 시각장애용 안경,  점자판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인체 내부의 조직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장기와 인공관절에서부터 첨단공학기술의 산물인 문자언어 인식장치 그리고 장애우 보철용 차량 등 종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보장구의 역사는 크게 일제시대 이전과 한국전쟁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 오사카에 있는 의지제작소의 분소가 서울 남창동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주로 우리나라와 만주에 주둔한 일본 군인들의 의수족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곳 분소에서는 취형만 하고 3,4개월 걸러 일본에서 제작해 왔으며 간혹 우리나라 절단자들의 의지를 제작해 주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한국인 최초의 업소는 1940년 부산 초량동 8백번지(현 부산고등학교 뒤)에 임종철 씨가 설립한 평림의수족제작소가 가장 오래된다.

  그 당시 하퇴의족의 가격은 3백50원으로 월급이 50원이였던 것에 비하면 매우 비싸 소 팔고 논 팔아서 의족을 맞추었다고 한다. 또한 보장구 종류는 보조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의수족이었으며 재료는 소가죽과 오동나무가 주로 사용되었고 의수는 오동나무로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있고 마디가 구부러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우리나라 보장구 분야가 피치 못하게 발전하게 된다.

  한국전쟁 발발 5개월 후 부산 제5육군병원 앞에 육군 의지창이 설립된다. 상지의수인 후크는 미국의 지원으로 처음 국내에 사용되었으나 상이군인들이 당시 사회의 푸대접에 반발하여 흉기로 사용하는 일부 사례가 발생해서 상이군인 본인들은 사용을 기피하고 미용수를 선호하였다고 한다.

  1977년에는 의지창장이던 박정하 소령을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 의지청으로 1년간 연수시켰다. 박정하 소령은 1983년 제대와 동시에 박의지센터를 설립하고 주한미군 121병원에 납품함과 동시에 세계 최대 보장구 부품회사인 독일 오토백회사의 한국 대리점을 취득하면서 전자의수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1980년대에 가장 크게 성공하였다.

  휠체어는 환자 운반차라는 명칭으로 허가되고 있는데, 1994년 현재 제조허가를 받은 회사는 8개지만 현재 대성, 대세, 미키코리아. 동방 등 4개만 생산 판매하고 있다.

  청각장애우를 위한 대표적인 보장구인 보청기의 역사는 집음기(集音器)에서 시작한다. 문헌상 집음기에 대한 첫 기록은 1673년으로 돼 있다. 이 집음기는 180cm가량의 나팔모양의 관으로서 2천 메가헬츠 이하의 음역에서 15데시벨 정도의 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는 것으로 최근 과학적인 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금속이어서 무겁기 때문에 의자나 가정용집기에 부착,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기적 보청기가 개발된 것은 진공관이 활용되던 18세기로 보고 있다. 20세기 초 트랜지스터가 발명되면서부터 전기를 사용한 현재의 보청기가 1900년 오스트리아 알트에 의해 개발되었다.

  87년에는 원격조정으로 잡음감소기능이 가능한 제품을 선보였고 88년에는 3채널의 프로그램이 내장된 타입을 개발했다. 93년에는 외이도에 넣을 수 있는 초소형을 개발한데 이어 매년 다기능, 개선된 기능의 보청기 개발에 집중해 왔다.

  우리나라 보청기의 수요증가는 구화교육의 시작과 그 시기를 같이 한다. 한국구화학교에서 종래의 수화교육에서 벗어나 최초로 구화교육을 시키게 된다. 이때부터 청각장애우들의 잔존청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보청기 사용이 절대 필요했기 때문에 보청기의 집단적이고 전문적인 수요가 발생하였다.

  한국구화학교에서는 1962년 일본 농아학교 교장단의 협조로 일본 리온보청기회사 제품 5대를 기증받아 재학생들에게 공급했으나 적합한 기종이 아니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46년에는 삼우양행과 한국구화학교가 증폭기를 개발해서 트랜지스터라디오에 개조 부착한 보청기를 2년간 사용했으나 성능이 좋지 않았다. 이때 만든 트랜지스터 개조 보청기가 현재 한국구화학교에 1대 보관되어 있다. 이후 삼우양행은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보청기를 수입 판매하는 최초의 보청기사가 되었고, 1977년 4월에는 대구 보청기상사(현 대한무역 보청기상사)가 설립되어 국산보청기 개발에 본격 착수해 뚜라미라는 독자 브랜드를 제조 판매 및 수출까지 하고 있다. 현재 8개의 업체가 보건 복지부에 등록되어 있으나 대부분 외국산 부품 수입 후 조립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경의 최초 사용기록은 기원전 2283년 중국에서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며 중국인이 안경을 발명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오늘날과 같은 안경은 13C말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최초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안경이 처음 사용된 것은 임진왜란 직후로 보인다. 이수광의「지봉유설」에 “안경은 노인이 책을 볼 때 쓰는 것으로 작은 글자를 크게 보이게 한다. 안경은 광복(조개의 이름)껍질로 만든다”고 하여 안경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중국 용어인 왜남 ․ 애체 ․ 애희 등의 용어도 간혹 사용되었다.

  점자는 1670년 Francesco lano Terzi의 점과 선의 조합에 의한 문자를 프랑스 포병사관인 Barbierk가 1822년 12점 점자를 구성하고 1834년 파리 맹학교 교사인 Braille이 6점 점자를 완성했다.

  우리나라에 점자가 처음 전해진 것은 1894년 평양에서 시각장애우 교육을 시작한 미국인 선교사 홀 여사가 1898년 뉴욕점자를 번안해서 조선어 점자를 고안한 것이고 이듬해 1899년에 점자교재를 출판했다. 1913년 제생원 맹농부 설치로 시각장애우에 대한 본격적인 특수교육이 시작되었고, 제생원 맹아부 교사이던 박두성이 1926년 11월 한글점자를 창안한 것이 본격적인 시각장애우 교육용구 개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도로 안내판이나 표시 등을 스스로 볼 수 없는 시각장애우에게 GPS를 활용해 위치 정보를 기지국의 PC에서 음성으로 합성, 시각장애우가 갖고 있는 휴대폰에 송신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으로 내년도에 실용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애우를 위한 서비스 로봇 개발도 한창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 김승호 박사팀의 ‘보행장애우의 재활을 위한 훈련사 로봇 조작기’, 한국과학기술원 장명진 박사팀의 ‘장애우의 의도를 읽기 위한 눈-마우스 시스템’, 한국과학기술원 권동수 박사팀의 ‘장애우를 위한 힘반향 조종기’ 개발연구 등이 그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로봇연구실 정명진 연구원은 “장애우의 의도를 파악해 휠체어나 로봇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장애우의 눈동자와 머리 움직임을 분석 ․ 이용하는 장치 개발을 시작했다고”밝혔다. 3년 후면 상품으로 선보이게 된다. (『한국장애인복지변천사.』 한국재활재단 편, 1996. 참조)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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