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강군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 대학생 기자단


‘마산 강군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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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마산 강군 사건은 큰 물난리 끝에 시름에 잠겨 있던 온 국민에게 분노와 충격, 그리고 허탈감을 잇따라 안겨 주었다. 당시 들끓었던 국민 감정과 언론에 연일 보도 되었던 온정의 물결들을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의 쉽게 감동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심성을 다시금 새긴다.

  그런다. 강군 사건은,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가능한 빨리 잊혀지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그래야 강군도 하루 빨리 과거의 충격과 기억에서 벗어나 오로지 밝은 앞날만 그리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강군 사건을 새삼 끄집어 내는 까닭은, 강군 사건을 잊어 버리고 강군의 앞날을 그의 앞날, 그의 가정 문제로 맡겨 버리는 것이 강군을 진정 위하는 일이 짚어 볼 필요가 있어서이다. 덧붙이자면 혹시 우리가 쉽게 감동하고 쉽게 잊으면서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을 쉽게 넘기지 않았는지 살펴 보고 싶어서이다.

  강군 사건은 미성년자나 직계 존속에 대한 단순 상해 사건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보험금을 타낼 요량으로 열 살바기 초등학생인 아들의 새끼 손가락 한 마디를 자른 뒤 이를 10대 떼 강도짓으로 위장 신고하여 봉합 수술조차 받지 못하게 한, 전대미문의 가정 폭력 범죄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의외성과 드라마같은 반전 때문에 우리 언론은 연일 중계방송하듯 강군 주변을 쫓으며 이야기 거리를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강군의 얼굴과 그가 다니는 학교 그리고 친구들까지 시시콜콜 공개되었다.

  우리는, 사건이 생기면 늘 이런 식으로 처리하여 왔으나 으레 그러느니 여긴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만약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는 경찰에 붙잡히는 즉시 전문의의 정신 감정을 받게 되며 감정 결과와 함께 기소된다.

  법원은 아버지의 유죄를 따지는 것 못지 않게 아들을 비정상적인 아버지(가해자)로부터 어떻게 보호하며 또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특히 미성년자이자 피해자인 강군이 언론, 특히 TV로부터 사생활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한다. 언론의 관심은 이 어린이를 맡아 키우겠다고 나선 몇몇 가정과 이번 가정의 환경이 적합한지를 살피는 법원과 민간 전문가의 견해를 신중히 다루는데 집중된다.

  한편 전문의의 감정 결과, 아버지가 정신 질환자라면 그는 치료와 함께 격리 수용된다. 설사 형기를 마쳤다 해도 그의 정신 질환의 완치되지 않으면 정도에 따라 아들과 아예 만날 수 없게 하거나 일정한 거리 이내로 접근하는 것을 금하는 조치를 내린다. 법원은 정기적으로 이런 결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보호자로부터 점검한다.

  만약 아버지가 법원 결정을 어기면 다시 수감되거나 격리된다. 미국 법원의 이런 조치는 바로 가정 폭력과 범죄를 친권이라는 이름 하에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정폭력방지법이 어렵사리 제정되어 최근 시행을 돌아간 터여서 더욱 그러하다

  어쨌든 이야기를 강군 사건으로 되돌려 보면 한심으로 데가 하나 둘이 아니다. TV는 흐린 영상처리로 강군의 얼굴을 가리려 했지만 간간이 노출되었고, 그의 학교와 급우가 벌인 강군 돕기 운동을 집중 부각함으로써 강군 보호 문제를 일회선 불우 아동 돕기 캠페인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 캠페인은 대통령의 금일봉이 탐지하면서 절정에 이르렀고 몇몇 장관과 지역 기관장이 가세하면서 성금이 봇물 터진 듯 했다.

  그러나 고아 아닌 고아인 열살바기가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 아니 장애를 안은 채 맑고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성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대통령과 장관까지 이 대열에 끼어 들어서야 될 법한 일인지 모르겠다.
  애당초 일을 그르친 것은, 경찰이 강군 아버지를 범인으로 체포한 뒤 정신 감정을 의뢰하지 않은 데 있다. 경찰을 어렵게 검거한 범임이 정신 이상으로 진단될 경우 기소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간혹 있어 이를 기피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강군을 가해자(아버지)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이며 둘째, 아버지가 정신 질환을 갖고 있다면 죄 값을 치르고 치료를 받은 뒤 건강한 몸으로 사회로 돌아와야 이들과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의 정신 감정은 우선 해야 한다.

  강군 아버지는 경찰에서 “살기 힘들어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어린 아들의 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타내려 기도했고 실망했고, 게다가 잘린 손가락을 안고 신음하는 자식 앞에서 며칠씩 연기하다 경찰에 잡혀서야 참회한 그가 제정신이었겠는가? 그는 분명 비정상이다. 가부장 전통이 뿌리 깊은 사회에서 아버지의 잘못은 가능한 이해되고, 자식의 잘못도 너그러이 용서받는 우리 가정 문화는 아름답고 보존되어야 할 전통이다. 그러나 전통 문화가 범죄를 용인하는 빌미가 되어선 안 된다.

  강군은 한 손에는 함께 살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과자 봉지를 한 아름 안은 채 병원 문을 나서는 사진과 짤막한 퇴원기사를 끝으로 언론에서 사라졌고, 우리는 강군 사건을 쉬 잊었다.

  모두 잊는다고 강군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예처럼, 이제 법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세심한 배려를 기대할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도 어떻게 해야 진정 강군과 같은 미성년 피해자를 위하는 일인지 숙고해 보길 바란다

글/ 박중환

작성자박중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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