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복지칼럼] 루즈벨트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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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故루즈벨트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두 사람은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인간존엄과 자유와 평등 등 인권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수호하고 쟁취하기 위해 갖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투쟁하여 왔던 점이 비슷하다. 또한 루즈벨트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두 사람 공히 신체적인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훌륭히 극복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지도력(leadership)을 보여준 공통점이 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휠체어를 탄 대통령으로 이미 세계사에도 기록될 만큼 그의 극복의지와 위기관리능력 그리고 인간애를 인정받고 있다.
김대중 당선자는 어릴 때부터 신체장애를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교통사고와 군사독재정권시대의 엄청난 고문으로 인해 신체적 불편을 겪고 있으며, 장애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헌정사상 초유의 정권교체를 이룬 [인동초]이다.
아울러 두 사람은 장애우나 서민대중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가는 [마음이 가난한 이웃]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사랑, 그리고 애정의 넓은 가슴을 품고 살아온 점이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두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인품이나 철학 그리고 사상적 기저나 살아왔던 배경에서 우리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 한편 두 사람이 처한 역사적·시대적 상황에서도 너무나 유사점이 많다는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라고 하면 우리는 미국의 경제공항을 이겨 낸 인물로 기억한다. 주식공황에서부터 시작된 경제공황이 미국에 끼친 영향은 심각했던 것이다. 생산의 규모는 급속하게 축소되었고 실업자 수는 예상을 뒤엎고 점점 증가하여 1930년 봄 4백 만 명이었던 것이 1931년에는 8백 만 명, 1932년에는 1천만 명을 넘었다. 운 좋게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의 단축과 임금절감의 태풍이 급습했던 것이다.
당시의 후버(31대)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 정부는 ‘생활문제는 주와 지방정부만이 대처할 문제’라고 하는 식민지시대 이후의 지방분권주위와 19세기 이후의 개인책임이라는 전통적인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점증하는 빈곤자, 실업자에 대해 후버 대통령은 “번영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결제의 자동회복능력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급기야 직장을 잃은 사람은 약탈대열에 섰다. 하지만 가장 빈궁에 처해 희생양이 되었던 사람은 중증장애우, 65세 이상 영세노인, 아버지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모자세대 등 그 사회의 취약계층이었다.
이들은 경제공황에 무방비로 당했던 것이다. 1933년 3월 새롭게 대통령이 된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으로 불황과 실업 그리고 경제의 마비상태로부터 미국을 새롭게 부흥시키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당시 뉴딜이 지향한 새로운 질서는 사유재산제도를 파괴시키지 않고, 독점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경제공황의 악순환을 방지하는 틀을 만든 것이다.
특히 [소비가 오히려 미덕]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과잉소비를 조장하는가 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공장을 가동시키며 고용을 증대해 나가는 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그런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러한 경제회생정책에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경제공황의 가장 피해자였던 중증장애우, 65세 이상 노인 모자세대를 위한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1935년부터 제정·시행된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이었던 것이다. 이 사회보장법은 연방직영의 노령연금, 주운영실업보험에의 연방보조금 등도 포함이 되어있지만 중핵적인 요소는 시각장애우를 비롯한 중증장애우, 노인 그리고 모자세대에 최저생활을 보장해주는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사실상 이 법으로 인해 지금도 미국의 노동력이 없는 중증장애우는 장애수당(Disability Income)을 받아 최저생계를 보장하도록 하면서 독립생활을 영위하도록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와 더불어 [복지]의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여 경제공항극복과 함께 복지사회로 진입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어서 경제대공황은 미국이 다져온 가치관에 일대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빈곤은 반드시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고 사회체제의 결함 때문에 발생되는 것으로 이식되고, 그러므로 구제 대책은 정부의 책임에 의해서 수행되어져i 한다는 필요성이 인정되게 되었다.
사상 초유의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여 IMF시대를 살고 있는 현시점에서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도 우리 경제 살리기를 위한 다양한 [개혁정책](Reform policy)을 추진하고 있다. 노·사·정 협의체를 만들어 기업의 구조조정과 함께 부도와 도산을 막고, 대기업을 필두로 우리 기업의 체질을 다시금 가다듬고 IMF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 1월18일에는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의 경제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고 고통분담과 협력을 요구하는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95% 이상이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TV대화와 토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의 TV대화에서는 물론 요즘 어느 한곳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고난을 당하는 중증장애우를 비롯한 [위약계층]의 복지에 대해 역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복지사회, 복지국가라는 구호조차도 점점 찾아보기 조차 어렵게 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만 강조하지 [복지]의 확충이나 복지구조개혁의 조정은 거론조차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우리나라는 실업자가 1백 만 명을 넘어서고 물가인상률도 30%를 상회할 것이라는 불안전한 고용과 경제위기상황에서 복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복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복지의 광의적 의미는 주택, 교육, 노동 등이 포함되는 전 국민의 삶의 질과 관계된 것이지만 협의적인 개념의 복지는 공적 부조라든지, 사회복지서비스 등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과의 관련이 많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가장 큰 논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노동이나 고용은 물론 구조조정이나 소위 [정리해고]도 따지고 보면 복지문제라는 얘기이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복지마인드]와 [복지철학]이 남다른 데가 있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는 것이 있다면 [국가책임주의]와 [생산적인복지]의 실현이다.
노동력이 전혀 없고,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인권보장, 인간보장 그리고 사회보장차원에서 국가책임주의를 역설하고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심한 중복, 중증장애우일지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잔존능력을 최대한 발굴, 개발 그리고 훈련하여 직업재활과 자립을 영위하도록 한다는 것이 [생산적 복지]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이 [생산적 복지]는 나눠 먹기식인 시혜적이고 동정적이며 일방적인 복지형태가 아니라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복지를 의미한다.
사실 그렇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복지개혁을 기대하게 된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이러한 복지의식에 기대와 믿음을 보낸다. 루즈벨트가 잡았던 두 마리 토끼인 경제와복지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도 꼭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확신도 가져본다.
글/ 김종인(재활학 박사)
함께걸음은 재활학박사 김종인 교수의 복지칼럼을 2월호부터 연재합니다. 김종인 교수는 현재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에 재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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