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동안 빼앗긴 나의 인권 > 대학생 기자단


3일 동안 빼앗긴 나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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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나는 지난 3월 31일 학원에 다녀오다가 휴대폰을 분실을 했다. 다음날 공무원 시험 문제로 학교 동기와 약속이 잡혀 있었고, 4월 8일 국가직 공무원 시험 장소 확인, 4월 3일 마감인 군무원 시험접수 등등 여러 가지 많은 일들로 휴대폰이 급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바로 용산전자상가에 휴대폰을 구입하러 갔다.

처음엔 평소와 별다를 바 없었다.
휴대폰 판매처에서 휴대폰을 고르고 계약서를 쓰고 신분증과 장애인등록증을 제시하고…, 모든 절차를 거치고 개통만 남겨 놓은 상황에서 일이 벌어졌다. 개통을 위해 LG 텔레콤 대리점과 통화한 판매처 직원이 갑자기 회사 측에서 "장애 1급은 법정대리인이 있어야 가입이 된다."고 했다며 법정대리인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때 이미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 내가 호주이며 법정대리인이 없다. 이러한 상황설명을 듣고 판매처 직원이 다시 대리점과 통화를 했으나 돌아온 답은 "그럼 불가능하다"였다.

아니, 그럼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애우들은 모두 휴대폰을 만들 수 없단 말인가. 게다가 나는 이미 내 명의로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음날 다시 대리점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따졌다. 그랬더니 대리점 직원은 "이번에 휴대폰 보조금과 관련해 법이 개정되면서 통신법에 그런 규정이 마련됐다."며 다시 거절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전화를 끊고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법제처, 정보통신부 등의 법률을 다 찾아봤지만 그런 내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 걸어, "저희가 법조문을 찾아봐도 그런 내용이 없던데, 그런 법이 어디 있나요? 민법상에 한정치산자에 그런 규정이 있긴 하던데, 한정치산자와 장애우 용어를 혼동하시는 것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리점 직원이 짜증을 내면서 "아무튼 그런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희도 바빠 죽겠는데 한번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 왜 그러세요! 차라리 다른 통신사에 가시든지요!"할 뿐, 마치 너 같은 장애우 하나쯤 가입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말투였다.

나는 상당히 불쾌했고 화가 났다.
시험이 일주일 밖에 안 남았고 처리해야 되는 일은 많은데 지금 뭐하는 건가. 정말 법적 대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 확실히 알기 위해 그 다음날 아침에 한 장애우 인권단체에 상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다시 LG 대리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날 법적으로 따져서일까. 갑자기 대리점 직원이 법적대리인이 없다는 증거가 있으면 해주겠다고 나왔다. 정말 허무하고 황당했다.

첨부터 되는 거였는데, 스트레스 받고 맘 고생한 건 둘째 치고, 공무원 시험을 한 주 앞두고 이틀 동안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닌가. 우선은 급해서 일단 이러한 의문과 짜증을 접고 동사무소에 찾아갔다.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 온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헤매다가 택시를 타고 겨우 찾아간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아 팩스로 보내고 왔더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졌었다.

그런데 친구가 그때 나에게 "나한테 전화 왔는데, 호적등본도 필요하다던데?"하는 게 아닌가. 휴대폰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일이 이쯤 되자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LG 본사 사장 민원실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이 전화를 통해 나는 "직원이 실수 한 것 같습니다. 시정조치하고 정중히 사과를 드리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애초부터 법정대리인은 필요조차 없었는데 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대리점 직원이 임의로 요구한 것이었다.

사장 민원실에서는 해당 직원이 전화를 해서 직접 사과를 하겠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알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대리점 측에서 전화를 건 것은 이제까지 나와 통화를 했던 직원이 아니었다. 처음 통화하는 여직원이 전화를 해서 사과를 할 뿐이었다.

끝끝내 이런 태도를 보이는 해당직원에 대해서 인권단체의 중재를 통해 공식 문서로 사과를 받기로 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해당 대리점 직원이 직접 사과하고 영화 표 두장을 선물했다. 그 3일 동안 겪은 것을 생각하면 이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지만, 대신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직원이 장애우 인권교육을 받는 것으로 하고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셨지만,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일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차별받은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자마자 많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마음고생을 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장애우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는 그동안 선배 장애우들의 노력으로 장애인권이 많이 성장해 온 것처럼 장애우가 이 사회의 한 인격체로서 권리를 확고히 다져갈 수 있도록 후배 장애우들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글 /이종국
가슴 속에 벅찬 꿈을 지니고 있어 행복하다는 이종국씨는 올해 나사렛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에 있다.

작성자이종국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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