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소리] ‘정부 홀로 인권법’이 되어선 안된다 > 대학생 기자단


[붓소리] ‘정부 홀로 인권법’이 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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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의 장애우 차별 인습은 참으로 뿌리깊다. 요즘도 아침에 시각장애우를 만나면 ‘재수없다’며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관공서에도 장애우 편의 시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에 금지법령이 제정되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애우 학교나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 시위가 잇달았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부모와 이웃들, 유치원과 학교, 관공서와 기업, 언론과 매체들이 지속적으로 교육캠페인을 조직해 바로잡지 않는 이상 이런 현상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렇듯 정신나간 차별행위가 장애우의 마음을 얼마나 서럽게 하는지 모른다. 필자의 경우에도 어릴 때 동네와 학교 아이들로부터 ‘사팔뜨기’라는 놀림을 하도 받아서 바깥에 나가 놀 수조차 없었다.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금싸라기같은 청소년기의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이 상처를 치유하는데 쓸 수밖에 없었다. 눈빛과 말투, 그리고 행동으로 장애우를 흉보고 놀려대고 차별하는 행위의 피해자는 장애우와 그 가족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약점을 올려대고 차별하는 사람들의 인격인들 온전할 리가 없었다. 또한 “부족한 지치에게 특별히 존귀를 더하는” 대신 놀려대고 차별하는 사회의 품격은 어떠하랴.

  갖가지 유형의 장애우 차별이 공․사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져왔지만 그 동안 두 가지 이유로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첫째, 마땅히 호소할만한 데가 없었다. 법원에 가자니 시간과 돈이 너무 들고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귀찮아서라도 참을 수밖에. 둘째, 흔하게 내뱉는 차별적, 모욕적 언사의 경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장애우는 눈물을 머금고 ‘적응’해야 했고 비장애우는 ‘뭐, 그정도 갖고 그러느냐’는 식의 반응이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런 상황이 머지 않아 바뀌게 될 전망이다. 금년 안으로 각종 장애차별 금지를 명문화한인권법을 제정하고 내년 상반기 중으로 이를 집행할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권법과 국가인권기구가 장애 차별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고 그 집행을 신속, 간이하게 하는 것은 물론 국제인권법과 현법이 정한 인권과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데 필요한 모든 일을 국가로 하여금 맡게 하는 것이 인권법 제정과 국가인권기구 설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다. 이 좌절과 불안의 IMF시대에 그나마 한 줄기 서광이 아니고 무엇이랴. 마침 금년은 평화적 정권교체에 의해 이 땅에서 본격적 민주주의 개시된 첫 해일 뿐 아니라 헌법이 제정된 지 반 세기가 되는 해이다. 헌법과 민주주의 원래 목적이 인권 보장에 있는니만큼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여 헌법 왜곡과 인권침해의 반세기 역사를 마감하고 인권보장에 적극 나서겠다는 새 정부의 지당한 방침의 쌍수들어 환영하는 마음이다. 특히 다른 누구보다도 실질적 인권보장사회로의 전환을 열망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싸워왔던 소외계층과 정치적 소수자, 그리고 사회경제적 약자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반갑기 그지없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현실은 이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한다.

  우선 인권법 제정과 인권기구 설치에 대해 주변에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 알지 못하니 이것에 대해 얘기하는 이는 더욱 없다. 아직까지는 그저 먼 나라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러한 무관심과 몰이해는 장애우들과 장애우단체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여성계, 노동계, 빈민계 등 다른 인권관련 영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는 인권보장을 명분으로 밥먹고 사는 법조계와 법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런가?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금까지 법무부는 인권법안을 밀실에서 홀로 작성해왔다. 대통령 보고용 내부 시안을 만든다는 이유로 민간단체들은 물론이고 다른 부처나 여당과도 아무런 공식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오로지 법무부장관 개인의 철학과 소신, 그리고 외국의 입법례만을 나침반 삼아 ‘나홀로 인권법안’을 만들어온 것이다. 그리고는 대통령에 대한 예의상 청와대에 보고하기 전에는 절대로 공개할 수 없노라며 언론에마저 보도통제(이른바 엠바고)를 걸었다.

  하지만 인권법의 주체는 정권도, 대통령도, 법무부장관도 아닌 국민 모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법 제정은 헌법을 개정할 때와 마찬가지로 전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보장되는 절차와 과정을 통해 진행해야 옳다.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민주적 관점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법무부는 ‘가만 있어도 좋은 것을 만들어 줄테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얌전히 있으랴’는 투다. 하지만 인권은 결단코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확인된 법무부안의 개요에 따르면 국가인권기구의 위상이 너무 낮다. 이른바 소비자보호원류의 특수법인 위상에 고충처리위원회류의 권고적 권한만을 부여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약체가 인권기구의 경우 정치적, 정책적 이해가 크게 걸려있는 민감한 인권사안에서 정부의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경우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냉소와 회의가 독버섯처럼 퍼지게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다. 이제라도 정부는 인권법 제정의 주도권을 원래 주인인 국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인권법 기초과정에서부터 민간단체들의 참여를 보장해서 범국민적 열망과 합의를 담아낸 단일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간단체들의 주도와 정부의 후원 아래 우리 사회의 인권현실과 인권과제에 대한 전사회적 인권교육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민주적 참여, 성찰 과정을 거쳐 금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전후해서 범국민적 인권법을 제정하는 동시에 수배자 해제와 양심수 석방을 단행하고 의문사 진상규명을 결의하여 어두운 과거사의 상혼들을 치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적 축제 분위기 속에서 차별없는 인권보장의 새 시대를 열었으면 하는 것이 비단 필자만의 꿈은 아닐 것이다. 정부, 여당의 각성을 촉구한다.


글/ 곽노현 (방송대 법학과 교수)

작성자곽노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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