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 대학생 기자단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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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황폐한 자화상

  9월 24일 오후 10시경 광희시장 앞 인도에서 옷장사를 하던 노점상 전창옥 씨(장애 2급)가 중구청 용역단속반 50여 명과 경찰 2개 중대의 단속에 맞서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을 시도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전 씨는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정확한 진상에 대해서는 아직 다정을 지을 수 없지만 95년 최정환 씨, 96년 이덕인 씨의 분신에 이어지는 생존권의 위협에서 빚어진 사건임은 분명하다.

  이밖에도 요즘 기사 가운데 장애우과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IMF체제 이후 장애우의 생존권과, 환경, 장애우에 대한 민심이 급격히 황폐화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지난 7월 19일 아버지가 뇌성마비 장애 아들에게 농약을 탄 야구르트를 먹여 독살을 하고 보험금을 타내려던 장애우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범행 전날 아들을 데리고 주도면밀한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데 이후 경찰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유력한 용의자인 그에 대한 감사를 소홀히 해 달아나게 했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 수사대를 축소하는 등 소극적인 수사태도를 보여 범인을 검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경찰의 이러한 태도 또한 장애우를 무시하는 정서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어린 아들의 손가락을 절단해 보험금을 타내려던 유사범죄가 발생해 우리 사회 도덕의 현주소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지난 9월 11에는 50대 어머니가 60대 동거남과 함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20대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고, 9월 9일에는 정신지체장애 여성을 유인해 상습적으로 폭행한 50대 남자가 구속됐다. 같은 날 소아마비 장애우에게 환심을 산 뒤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7차례에 걸쳐 7천여만원을 떼먹은 택시기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장애우에 대한 민심도 여유롭지 못하다. 서울 용산구청은 관내 장애우 차량소유자 3백30여명 중 1백27명이 주차장을 갖고 있지 못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주택가 이면도로 등에 장애우 전용 주차공간을 설치 계획을 세웠다. ‘장애우 전용주차구역 관리 지침’에 따라 장애우 차량의 우선 주차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장애우 우선 주차지역을 설치한 앞선 행정이었다.

 그런데 구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시작됐다. 지난 4월부터 17개동의 이면 도로 및 빈터 등에 장애우 전용 주차공간 설치작업을 시작했으나 곧바로 주민 몇 명이 구청장을 찾아와 항의했고, 개인적으로 구청장이나 동장들을 찾아가거나 전화로 항의하는 일이 잇따랐다. 심지어는 주차공간에 휠체어마크를 못 그리게 해 작업반원들이 몸싸움 끝에 철수하는가 하면 이미 그려진 마크를 지워버린 것도 10여 차례나 됐다. 장애우들이 주차를 못하도록 아예 쓰레기나 못쓰는 리어카를 갖다 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78대분의 장애우 주차공간을 확보했을 뿐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전시에는 시가 지으려던 산성종합복지관이 설계에 들어가자 9월 7일 주민들이 시청앞에서 집단반발에 나서고 있다. 수영장 등 주민 편의시설이 포함되어 있어 주민에게도 긴요한 시설임에도 주민이 이토록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시각장애우 점자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전에서는 94, 95년에도 서구청이 건립하기로 했던 장애우복지관 건립을 둘러싸고 주민과 장애우들간에 충돌사태를 빚은 바 있다. 결국 2년여의 표류 끝에 복지시설인 서구 건강체련관리사무소로 명칭을 바꾸고 이용자도 장애우 중심에서 저소득층등 일반인으로 넓힌 끝에 겨우 문을 열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진 주민과 장애우들간의 반목은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앞에서 열거한 사건들은 알게 모르게 내재된 우리 사회의 장애우의 편견과 멸시의 표출이란 점에 일련의 연관성이 있다. 언제까지나 장애우의 삶이 합리성이 결여된 본능에 의해 좌우되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최근 영국의 BBC 방송의 간판 뉴스프로그램 투데이의 진행자로 시각장애우가 발탁되었다가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이미 국회 출입기자 경력을 지니고 있고, BBC 내에는 또 한명의 시각장애우기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시각장애우인 데이비드 블런켓이 장관에 임명된 것이 이례적인 일로만 알았었는데, 그것은 노력에 따라 쟁취할 수 있는 영국 사회 장애우의 보편적인 위상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한편 메이저리그에서 퇴출당했던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가 2년만에 메이저리그에서 우승을 따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장애우복지란 것이 결코 특별한 대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설사 기대치에 못미친다 하더라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지는 그것이 바로 복지의 실체인 것이다.


불편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어린 발명가들

  발명에는 반드시 특별한 연유가 있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데서 발명은 시작된다. 따라서 모든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는 장애우와 발명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시회에서 장애우용 도움이의자가 출품되어 2등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발명품 뒤에는 한 소녀의 절절한 사연이 숨겨져있다. 도움이의자를 발명한 전북인산 삼기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최보아 양은 중풍으로 투병중인 할머니를 위해 2년 동안 목욕과 용변을 받아내는 등 수발을 해왔다. 할머니에 대한 갸륵한 효심에서 할머니가 앉아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의자는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전문가 구점을 돌아다녀도 장애우의자를 구할 수 없자 손수 발명할 마음을 먹었다. 최 양이 만든 도움이의자는 눕히면 침대가 되고 세우면 의자가 된다. 또 이동용 바퀴가 달려 있어 환자를 목욕시킬 때 쉽게 움직일 수 있고 의자 받침에 구멍을 뚫고 밑에 휴대용 변기를 달았다.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의 장애우 관련 발명품은 이 뿐만 아니다. 97년 대회에서는 박광묵 군(당시 중2)이 발명한 문지방이 필요없는 문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문짝에 설치된 고무막대가 문을 여닫을 때마다 오르내리도록 만들어 완벽한 방음, 방충, 방습, 단열, 방풍, 방범효과를 거두면서도 문지방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우나 어린아이, 청소기 등이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는 불편을 개선한 점이 격찬을 받았다.

  경북학교발명연구회장 교사 강인구 씨가 지난해 영남일보에 연재했던 재미있는 발명이 야기란 칼럼에 따르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어린 발명가들이 우리 주위에 매우 많다고 한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장애우를 위한 발명품을 많이 개발하는 이유는 순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연히 목격한 장애우의 불편함이 안타까워 발명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96년 대한민국 학생 발명전에서 경북의 모 초등학교 학생이 자동차에 간편하게 접어서 실을 수 있고, 탄성이 있는 개량 목발을 출품해 금상을 획득한 것도 우연히 창문으로 운동장을 내다보던 중 한 아이가 위태롭게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또 있다. 94년 대한민국 학생발명전 금상을 차지한 장애우용 젓가락은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양은란 양이 텔레비전에서 한 뇌성마비장애우가 젓가락질을 무척 힘들게 하고 이는 것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학생은 우리 나라에는 장애우용으로 개발된 물건이 너무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장애우용품을 발명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순수함에서 발명된 장애우용 발명품은 매년 전시회 때마다 줄을 잇는다.

  두 손이 불편한 중애우를 위한 ‘전동 책장 넘기기 장치’ (98 금상), 보행자가 완전히 건널목을 건너갈 때까지 녹색등이 켜지도록 한 보행자 우선 신호등, 접고 펼 수 있으면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고안된 야광목발, 계단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휠체어, 소리가 나는 지팡이, 자동차에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승강기(이상 97년) 등 다양한 작품이 매년 입상의 영광을 차지고하고 있다. 96년에는 또 다른 학생 발명품 전시회인 제18회 학생과학발명품 경진대회에서 개량 환자용 변기와 장애우를 위한 밥그릇이 출품되었고 움직이는 미로놀이라는 과학완구는 점차를 채택, 시각장애우도 놀이가 가능하도록 했다.
 

발명에도 장애와 비장애가 없다.

  누구보다도 불편함을 절실히 느끼는 장애아동들 가운데에도 알아주는 발명가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94 대한민국학생 발명전에서 ‘휠체어용 수직 승강 엘리베이터’를 고안,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던 손유리 양(현재 청주 혜화학교 초등부 6년)이었다. 같은 학교 출신인 전재선 군(현재 청주 혜화학교 중등부 3년)도 손 양에 못지않은 발명가다. 전 군은 그 동안 편리한 보행기와 목발, 휠체어 조정장치 등을 스스로 개량해냈다. 전 군은 95년과 96년에 대한민국 학생발명전에서 잇달아 입상하였고 97년에도 ‘신체장애우를 위한 자세교정용 책상’ 등으로 수상의 기쁨을 맛보았다.

  손 양과 전 군이 재학중이던 특수학교 청주 혜화학교 발명반(뇌성마비 학생들)은 93년 발명반을 처음 개설한 이래 거의 매년 충북학생 과학발명품 대회를 휩쓸만큼 명성이 드높다. 94년 대한민국학생발명전에서 손유리 양이 국무총리상을 수산한 것을 비롯, 95년 이수종 군이 금상, 변정선 양이 동상, 전재선 군이 입상했고 96년 대회는 임혜식 양이 동상을 차지하는 등 대한민국학생발명전에서도 매년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97년 제19회 충북학생과학발명품대회 대회에서는 손유리 양의 ‘문 통과시 문턱이 내려가 장애가 되지 않는 문턱’과 채여진 양의 ‘손사용이 힘든 장애우를 위한 다용도 컴퓨터 키보드판 받침대’가 금상을 수상하는 등 출전 11점 중 7점이 상을 휩쓸었다.

  따지고 보면 이렇듯 장애우 용품에 대한 발명마인드가 넘쳐나는데도 정작 장애우에게 필요한 장애우용품 개발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의욕이 넘침에도 정작 이를 발전시켜야 할 당국이나 기업의 무관심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폭넓은 발명마인드를 기반으로 경제대국으을 이룬 것은 물어보나 마나 한 일이다. 문명에 결정적 기여를 한 발명품에는 장애우와 연관된 것도 적지 않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인 전화의 발명 뒤에는 청각장애우인 어머니와 아내, 청각장애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를 둔 벨의 성장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 벨은 이미 10대 때부터 청각장애우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한 발성기계에 관심을 가졌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 26세 때 보스턴대학 발성생리학과 발성학 교수가 된다. 청각장애우에게 소리를 보여주자는 그의 열정은 1876년 3월 전화의 발명을 낳았다. 전화에 의해 급속도로 발달한 정보통신은 정보화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인터넷에 의해 다시 대도약을 하게되는데 인터넷도 사실은 청각장애우에 의해 창안되었다.

  컴퓨터, 우주선, 나일론, 녹음기, 트랜지스터 등 인류문명의 혁명을 이룬 발명품 뒤에는 두뇌공장 싱크탱크가 버티고 있다. 소아마비 백신도 바로 싱크탱크가 낳은 발명품이다. 즉 오늘날 미국이 경제대국이 된 것은 폭넓은 발명마인드와 이를 뒷받침하는 현재 1천5백개에 달한다는 싱크탱크의 힘에 의한 것이다. 한때 미국에서는 잠만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싱크탱크가 문을 열 정도로 대단한 붐을 이루었다.

  미국에는 2차대전 후 불과 20~30년만에 수만 개의 연구소가 생겨났는데 남녀노소 빈부에 상관없이 일반 국민들의 저금통을 뜯고 재산을 끌어모아 연구에 헌금을 했다고 한다. ‘한푼 모아 연구소를 만들자’는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미국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문명발전이 도화선이었듯이 장애우의 불편함을 생각하는 순수함을 갖고 있는 어린 싱크탱크들을 제대로 키우는 일이야말로 우리 나라의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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