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음의 세상보기] 동정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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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의무인 동시에 권리이자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젊은이들이 사회로 편입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한 사회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밤 늦은 시각,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대졸 실업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면서 대학생들이 썼다는 엽서 한 구절을 읽게 됐습니다. 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글이 아닐 수 없었는데 글을 읽다가 문득 이 구절의 한 단어, 즉 ‘젊은이’를 ‘장애우’로 바꿔 엽서를 써보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동을 통해 장애우들이 사회로 편입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한 사회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런 장애우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반박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주징이 현실에서는 공허하게만 들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장애우들의 취업을 통한 사회참여를 위해 정부도 노력해 왔습니다. 장애우도 발버둥쳤고, 장애우 단체도 장애우들의 노동시장의 참여를 이루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단 경제위기 한복판에 있는 지금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가 오기 전에도 노동을 통한 장애우들의 사회 참여는 지지부진하기만 했습니다. 그간 장애우 취업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대사회적으로 비굴해 보일 정도로 간절한 호소를 되풀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장애우들의 노동을 통한 완전한 사회 참여는 말 그대로 요원한 구호에 그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녕 무엇이 잘못 됐습니까? 현시점에서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정부의 장애우 노동정책이 잘못 시행되고 있든지, 장애우들의 노력이 부족했든지, 아니면 사회가 장애우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든지, 이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 외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꼽는다면 그건 지금처럼 장애우들이 동정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 노동을 통한 장애우들의 사회 편입의 길은 정말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도와주어야 할 대상을 노동시장에 참여시키는 건 좋게 말해도 자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선은 베풀기 싫을 때, 그리고 형편이 좋지 않으면 외면하면 그뿐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우선해서 중증장애우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중증장애우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대표적인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중증장애우들은 수용시설에서, 혹은 거리에서 인격체로 대접받기 보다는 비장애우들의 동정의 대상이 되어 힘든 나날들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소름끼치는 것은 이런 부당한 현실이 사회적으로 어느새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노동을 통해 장애우들이 사회로 편입할 수 있는 길을 제대로 뚫으려면 우선 동정의 대상인 중증장애우들이 더 이상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정부의 올바른 중증장애우 정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노동 정책도 복지 정책도 중증장애우들이 동정의 대상에서 벗어나는데 우선 초점을 맞춰 시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증장애우들이 동정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한 장애우 사회 편입의 길은 요원할 뿐 이라는 사실이 이제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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