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포기했던 아이,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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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중복 장애아동을 위한 순회교육 제도가 처음 시행되기 시작되고 내가 그 일부분을 담당하게 됐을 때 ‘장애아교육의 전도사’라는 순회교사의 사명감을 가슴에 새겼다. 그러다 처음으로 찾아간 학생은 김기수라는 아이였다. 기수는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상촌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의령읍에서도 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깊고 깊은 산골 속에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기수를 찾아왔다고 낯선 사람이 웬일로 기수를 찾아 왔는가 하여 슬쩍 슬쩍 들여다보는 주민들의 근심 어린 표정을 뒤로 하고 좁은 방 공간에서 마주한 기수의 모습은 사실, 놀라움일 수밖에 없었다. 특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로서 중증․중복장애 아동들을 매일 만나고 대해 왔지만 기수를 본 순간 ‘세상에 이럴 수가’하는 한탄의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기수의 장애 정도는 심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순회교육의 필요성과 취지에 대해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지만 주민들은 이해를 못하는 듯 “(기수는)그저 빨리 죽는게 낫다”는 얘기를 되풀이하면서 긴 한숨만 쉬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수의 할머니에게 “어떤 점을 도와 드렸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어 보았지만 손자의 앞날에 대해 오래 전에 체념해 아무런 희망도 갖지 않고 있는 듯 역시 한숨만을 내쉬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내일 당장 죽게 되더라도 특수교육 서비스가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애써 또박또박 전해 보기도 했고, 우선 집 앞 정리 정돈과 청소를 하고 기수에게 간단한 물리치료도 해주고 첫날의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음 방문 때는 무엇보다도 기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웃 주민들과 할머니에게 물어본 결과 기수네는 정부의 생활보호수당과 72세의 고령인 할머니가 칡뿌리를 캐서 내다 판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수의 부모도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정신지체 2급이었고, 청각장애우인 아버지는 지난 해 가출해서 집을 나간 후 불행히도 결국 객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 사이에 둘째로 태어난 기수는 9살이지만 키는 90cm, 몸무게는 17kg밖에 되지 않는 너무나도 왜소한 아이였다. 특히 시신경 쇠약 증세로 안구운동에도 장애가 있었고, 거동이나 의사표현이 전혀 불가능했다. 극심한 영양 결핍 때문에 성장발달에도 장애가 생겨 발육이 늦어진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마을 이장님이나 주변의 이웃주민들에게도 그 분들이 바라는 요구사항을 조사해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해야할 일은 집안 청소와 소독인 것 같았다. 그리고 기수에게는 치료교육의 일환으로 소리 구별과 관절 운동, 의사표현과 여러 생활 적응훈련부터 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 은광학교 기숙사에 근무하는 보모와 양호 교사, 물리치료교사 그리고 면사무소의 장애우복지 담당자에게도 지원을 요청해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지난해 지역 신문에 기수의 사연이 소개됐다. 나는 그 기사를 스크랩한 것을 들고 경남도청 사회복지 담당자를 찾아가 기수의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기수 어머니에게 장애우 등록을 시킨 후 다른 서류들도 갖추어 기수를 적당한 보호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경남 양산에 있는 한 시설에서 치료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기수는 상태가 점차 호전되어 가고 있다. 나는 매달 한 번씩 기수를 찾아가는데 이제 나를 만나면 기쁨의 표정을 지으며 맞아준다.
순회교육을 하다 보면 이름 없는 독지가들로부터 격려와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선량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피로를 잊고 맡은 일에 최ㅏ선을 다하고자 다짐한다. 그런 다짐을 새기며 오늘도 집에 혼자 외롭게 누워 있는 장애아동들을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다.
글/ 이정구 (경남 은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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