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직, 빈 웃음 > 대학생 기자단


빈 손직, 빈 웃음

함께걸음 편집자문위원 칼럼

본문

거짓이라는 마음에는 담긴 것이 없다. 속이 빈 것을 거짓이라 하기 때문이다. 빈 자리를 메꾸려 드는 꾸밈은 눈 선 사람을 속여 보려는 짓거리일터인데도 자칫 이 놀음에 넘어가 손뼉을 치며 웃기도 하드라만 그 웃음이란 긴가민가의 어설픔에서 나오기 마련이라 그런 자리에 있으면 담배 생각밖에 안 나는 것이 내가 듣는 귀를 잃은 뒤로 눈치만 늘어났기 때문이리라. 듣지 못하면 모든 이야기를 눈으로 듣는다.

손놀림을 보고 손짓말을 듣고 입놀림을 보고 입말을 듣고 눈짓을 보고 그 마음을 읽어 버릇하기 어느 덧 쉰 해, 사람의 짓이 아홉 해에 이르고 열 해를 넘기면 도깨비 꿰뚫을 눈을 가졌겠구나. 그렇지만 이런 재주가 즐거울 수 없는 것이, 이런 눈을 가지고 이 이웃  저 마을을 기웃거리면 차마 눈 뜨고 보아 넘기기 딱한 일을 아니 볼래야 아니 볼 수 없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주는 재주이기에 이걸 가끔 써먹는다. 뭐냐하면 술값 벌기인데... 나는 이따금 남의 손금을 봐 주고 술값을 버는 기특한 재주를 부리곤 하는데 손금에 뭐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이라 이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짚어 ‘손금을 봐주겠다’면 아무나 손을 쑥쑥 잘 내밀기 때문이다.

이게 다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술이란 사람의 꼬부장하게 마른 마음을 젖게 만들어 널부죽하게 펴는 물이라 저 녀석들 좀 축축하게 젖었거니 싶으면 술 값 벌 꿍냥을 아니할 수 없게 되더라. 그렇다고 아무나 잡고 거침없이 ‘손금보자’고 덤비는 짓은 안 하는 것은 사람 속내 모르고 손금을 본들 무엇이 생기리오 하는, 내가 벼르는 바는 어디까지나 술값이기 때문이다.

손금이 아니다. 사람이란 얼굴에 ‘나 술값 있소’하는 글말이 씌어 있다. 술이라는 말에 마음 젖으면 얼굴에는 그 젖은 속내가 질펀히 나타난다. 남의 얼굴 보고 ‘술값이 있나’, ‘밥값이 있나’쯤 알만치 되었으니 그 술값 밥값이 어찌어찌해서 저 얼치기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모를 턱 없는 거! 뻔히 보이는데 술 값 벌 꿍냥이 안 일어날 수 없기라. 덥썩 손을 잡고 손금을 보는 둥 마는 둥, “너 어릴 적에 이러이러하게 자랐으니 앞으로는 이러저러하리라”고 흰소리를 하게 된다. 이래 놓으면 사람의 어리석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어떻게? 좀 그럴 듯한 말 해주지 않겠소?”하고 달려들지. 술자리니까. “그럴려면 좀 어려우니 맞으면 값을 치러야 해.” 이렇게 고삐를 단단히 조인 뒤 도깨비 속내 알아맞추는 솜씨로 몇 마디 하면 술값 얼마는 갈 곳 없이 내 주머니를 찾아들기 마련.

그대들이 봐도 어리숙하기 짝 없는 내 꼴에 무슨 그런 재주까지 지녔담, 하고 혀를 찰지 모르지만 이게 다 쉰 해를 눈치보며 살아온 끝에 터득한, 듣는 귀 잃고 얻은 보람인 터. 이런 재주꾼이 얼마 안되는 어끄저께에 입맛 쓴 일을 겪었으니 들어보아라. 뭔가 하면 듣지 못하는 사람들 모아 놓고 손짓말을 떠벌린 어느 실없는 모임에 갔던 얘기다. 무슨 자리든 사람이 모인 자리를 모임이 핑계된 쪽이 어른이다. 그 모임은 듣지 못하는 사람 자리지만 여태 겪은 바로는 아무래도 담배가치나 버리지 싶었던 것은 장애판 모임에서 장애우가 어른 노릇하는 일 본 바가 없어서다. 아니나 다르랴. 이것 보소!

가슴에 꽃을 달고 높은 자리에 쭉 늘어앉은 ‘어른’들이란 모두 멀쩡한 치들이라 들어가면서 첫눈에 뜨인 그 꼴이 아니꼬운 터에 그치들의 하는 짓거리라니. “너희들 듣지도 못하는 못난이들 때문에 내 여기에 왔노라.” 베풀어 흘리는 웃음이라니.

이 글을 읽는 분 가운데도 그 날 그 자리에 간 분이 있겠고, 또 이런 일 겪기 한두 번이 아닐 것으로 알지만 이래서는 어떻게 사람 구실하고 사느냐. 이게 다 베풂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우리 못난 속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아니랴. 귀를 잃으면 귀를 잃은 것이고 눈을 잃으면 눈을 잃은 것이지 남에게 빌붙어 살아야 귀 듣게 되고 잃은 눈 보게 되나.

그러니 우리부터 속 좀 차려야지. 나처럼 남의 지난 일이나 얼렁뚱땅 얘기해서 막걸리값을 벌 망정 남에게 손 내밀지 말고 살 길 찾아라. 나라에서 무슨 돈 좀 나왔다면 나에게도 몇 푼 돌아올라? 이런 생각도 말 일이고. 모두 멀쩡한 놈들 가슴에 다는 꽃값이니 군 생각말고 내 살 길 내가 찾는 일에 매달리기! 매달리되 어벙거리며 뛰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외우물 파라. 그래야 삼이웃에 가뭄들 때 물 한바가지는 퍼 나누어 먹을 거! 이런 베풂을 바란다면 우물 하나 파라.

그렇더라도 아까운 담배 축낸 것 그저 넘기고 싶지 않은 것이 정치하는 녀석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기가, ‘장애판’ 일을 왜 장애우들에게 맡기기 꺼리느냐이다. 멀쩡한 사람들도 한뎃잠 자는 때라 어쩔 수 없다 할 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마다 멍쩡하고 않고를 손가락 꼽는 못된 버릇을 버려야지 늘 어려운 일 만나면 멀쩡한 놈 타령만 하려 드니 그렇게 들일 버릇이 나라 살림 얼마나 기름지게 가꾸었나? 나라 이 꼴로 만든 것이 멀쩡하지 못한 몸 가진 우리 탓이랴? 겉은 멀쩡해도 속은 귀 먹고 눈 먼 치들이 나라 살림 도맡아 꾸린다고 날뛴 탓 아니랴!

오늘은 국회에서 나라 살림살이 어떻게 꾸렸나 따지는, 시어미 트집으로 하루 해 보내게 되어 있다던데, 글쎄라 그게 잘 될까, 긴가민가 싶어지는 것이 사람이란 속이 멀쩡해야지 밖만 멀쩡해서는 하는 짓 다 버려놓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걸 하는 치들은 밖만 멀쩡해서다.

가슴에 꽃 달고 높은 자리에 줄느런히 버티고 앉은 그 자리 밑에 뭐가 스는 지 우리는 나름의 눈치로도 보고, 읽기도 하지만 모른 척하고 담배 한 가치 피워물고 마는 것은 그 꼴 보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속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는 탓이다. 그렇기에 담배 한 가치 다 피우고 나면 다시 그 꼴을 봐주면 빈 손짓말에 빈 웃음 흘리며 손뼉을 치는 치들의 얼굴들을 더 찬찬히 살펴 저 녀석들 어떻게 살아왔기에 저렇듯 뻔뻔해질 수 있나 손금 보듯 하며 달리 막걸리 값 벌어 볼 꿍냥을 대는 것은 저 겉멀쩡이 ‘도움’ 안 받고도 우리가 살 길을 찾아야 비로소 우리 마을에도 햇볕이 비추리라 믿기 때문이니... 늘 그늘 밑에 눌려 살았던 우리 판에도 햇볕 한 줄기 내리쬐어야 다가오는 겨울 안 떨고 살지 싶어서다.

올 겨울은 무척 추울 거라고 하더라.


글/ 박용수 (한글문화연구회 회장)

작성자박용수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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