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음의 세상보기]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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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번역돼서 나온 ‘사랑의 집’이라는 일본 만화가 사람들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도토리 집’ 건립 실화를 극화했다는 이 만화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또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 이 만화가 일본 내 중증장애우와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화 속에 그려진, 중증장애우들이 이웃에게 냉대를 당하고, 교육받을 권리도 박탈당한 채 아무런 대책 없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는 일본 내 중증장애우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아 자녀의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장애아 자녀보다 단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부모들의 모습도 바로 현재 우리의 장애우 부모 모습일 것입니다.
이렇게 중증장애우 문제는 국경을 초월해 심각성을 드러내며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에 맞춰 그동안 이 함께걸음 세상보기 지면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중증장애우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거론하며 중증장애우들을 위한 획기적인 복지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식상하게 받아들일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중증장애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사랑의 집’을 보면서 장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장애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은 현재 중증장애우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되풀이해 강조하지만 장애우 자녀보다 단 하루를 더 살고 싶다는 부모들이 간절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중증장애우는 어떻습니까. 현재는 물론 미래도 암울함만 가득한 중증장애우들의 입장에 서 있으면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 그 자체일 것입니다.
누구도 이런 중증자애우들이 고통을 외면하고 장애우 문제와 복지를 거론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면 장애계에 있는 한 누구도 이들 부모와 중증장애우들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중증장애우들은 고통을 곱씹으며 뭔가 변화가 있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 살 수 있게만 해준다면 어떤 대책이라도 좋으니까 우리들을 배려하는 복지 정책을 시행해 달라고 정부에 간곡히 촉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증장애우들의 간절한 바람은 아직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중증장애우 문제 해결책을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그 기대가 아직까지는 현실에서 구체화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부의 외면 속에서 중증장애우들의 고통스런 삶이 지금 이 순간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진한 비애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앞장서서 중증장애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장애계가 중증장애우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날카로운 대립과 반목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히 강조하지만 장애우 현실의 개혁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장애우 가운데 말없는 다수인 중증장애우들의 입장에 서서 직업 정책의 개혁도 관철해 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논리와 주장도 중증장애우들이 겪고 있는 고통보다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아닌 중증장애우들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 것입니다. 중증장애우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을 앞당길 수 있도록 장애우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손을 맞잡아야 할 것입니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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