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우 일상다반사
“그럼 어르신들은 주민등록증 걸고 다니실건가요?”
본문
난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뇌성마비 3급의 장애우.
그러나 난 걸어 다닌다. 뇌성마비가 있어 3급을 받기는 했지만 지하철의 크지 않은 움직임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장애우다. 하지만 내가 앉아있을 때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장애가 있는지 못 알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출퇴근 할 때 지하철 노약자 전용석에 앉아 있노라면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양보하라고 하신다. 어떨 때는 자리를 내어드리기도 했고, 정 몸이 힘든 날에는 “제가 장애가 있어서 그런데 다른 분께 부탁하시면 안될까요?”하고 사정을 설명 드리기도 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오히려 양보해주시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그렇지만 사람 생김생김이 다 다른 만큼 모두 이렇게 좋게, 요즘 하는 말로 “쿨~하게” 끝나지 않는 경우도 제법 있다.
어느 날 출근길에 있던 사건이다.
지하철이 정차하고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누군가 쏜살 같이 내 앞으로 달려오는 것이 아
그 시커먼 물체는 내 앞에 선 지긋이 나이 드신 어르신이었다. 170센티미터에 조금 못 미칠 키에 듬직한 풍채를 지니신 할아버지였다.
나는 ‘어이구~, 자리를 양보하라고 하실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옆을 보니 40대 정도로 보이니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몸도 무척 힘드니 부탁하시면 적당히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풍채도 좋으신 할아버지는 뒷짐을 짚은 자세에서 내 눈 앞에 오른손 손바닥을 내미셨다. 그 손바닥이 주먹으로 접히는가 싶더니 검지 손가락이 다시 펴지면서 ‘까닥까닥’ 나를 부르는 것이다.
약간은 황당스러워 고개를 들어 보니 나를 바라보시면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턱짓을 해보이셨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나를 압도하는 어르신의 카리스마(?)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니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래도 할 이야기는 하자!’라는 생각에 “저… 제가…” 라고 입을 열었다. 난 약간의 언어장애가 있어서 말이 좀 어눌한 편이다. 느릿느릿 설명을 드리려고 하자 이내 할아버지의 눈가에 불쾌한 기운이 감돌더니, “불구자네”라고 툭 한마디를 내뱉으셨다.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몸이 불편하네’, ‘장애가 있구만’, ‘장애우네’도 아닌 ‘불구자’라니… 말문이 막힌 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위험한 기운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꼈는지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얼른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불구자”라는 말의 충격으로 어리벙벙해져 있던 내게, 옆 자리에 앉으신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은 것이 불만이신지 “불구자”를 압도하는 후속타를 날리셨다. 어르신은 그 옆에 앉으신 할머님께 “요즘 젊은 것들이 약해 빠졌더라”, “조금만 아파도 엄살이다”, “가짜 장애우가 많더라” 등등 수없이 많은 불만을 토로하셨다.
만원 지하철 웅성거리는 그 소음 속에서도 어르신의 말씀은 또랑또랑하게 들려왔다. 그러던 중 나를 폭발하게 만든 말이 있었으니,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말해서 “장애가 가벼우면 알아보기 힘드니까 명찰을 달고 다니든지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 하고 내뱉었다.
“그럼 어르신들은 주민등록증을 목에 걸고 다녀야겠네요? 요즘은 워낙 젊게 사셔서 가짜 노인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라고 말했다.
그 이후 상황은 구태여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 외에도 나는 지하철에서 “왜 불편하고 위험한데 지하철을 타냐? 집에 있지”라든지 “여기가 어디라고!”라고 호통을 치시는 어르신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물론 어르신들이 이렇게 요구하시는 행동은 크게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그렇지만, 어르신들!
자신의 주장이 상대방에게 실례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는 사과를 해야 정말 어르신이지 않을까요?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는 권해야 할 미풍양속이지만, 실례를 범하고도 사과하지 않으면 폭력이잖아요. 점잖으신 어르신께서 그러시면 되나요.
글 최영식(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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