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우일상다반사(6)
본문
ꡐ장루ꡑ를 아십니까?
옛날에는 없었던, 아니 있었지만 없는 듯 숨겨진 이야기. 그러나 지금은 의학의 발달과 함께 목숨을 구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 되어버린 ꡐ인공항문(장루)장애ꡑ를 여러분들은 알고 계신지요?
제가 수술 받던 18년 전만 해도 정말로 생소했던 그 장애가 이제는 독자 여러분들의 집 한 블록만 넘어도 감추어져 있을 뿐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는 장애랍니다.
그래도 아직은 ꡐ장루란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돼ꡑ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기에 장루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ꡐ장루장애란 각종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정상 배변 기능을 상실해, 배변 및 배뇨기 계통의 인공 배설루(장루)를 자신의 장(대장 또는 소장)을 이용해 복벽에 시술 받은 상태ꡑ를 말하는 것입니다. ꡐ대변 배설루ꡑ로는 대장을 이용해 만든 ꡐ결장루ꡑ, 소장을 이용해 만든 ꡐ회장루ꡑ가 있으며 ꡐ소변 배설루ꡑ는 ꡐ요루ꡑ라고 부릅니다.
ET가 된 것 같은 당혹감
제가 이 장애를 처음 갖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무어라 말로는 표현 못할 정도였습니다. 주변에서 ꡐ장루ꡑ란 말은 전혀 들어본 바 없던 젊은 나이였기에 질병을 극복하기에도 힘겨웠던 상태에서 후천적 장애까지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이 무척이나 괴로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처음 수술한 때가 대학 4학년 때라 졸업은 어떻게? 앞으로의 진로는? 결혼은? 등등 고민이 많았지요. 특히 ET가 된 듯한 모습에 고민하며 힘겨워했던 제 모습을 생각할 때, 요즘 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의술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발전하게 되면 ꡐ장루 장애ꡑ란 용어는 아마도 고어사전에서나 찾아보게 될 그런 날이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랍니다.
장루와 나의 일상
이렇듯 제가 장루를 보유하게 된 후 겪게 된 생활변화는 다양합니다. 첫째로는 대중목욕탕을 거의 가지 않게 된 것이고, 둘째로는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 등 운동을 기피하게 된 것이며, 셋째로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게 됐고, 넷째는 내 집이 아닌 숙박은 항상 부담스럽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답니다.
의학적 상식이 없는 분들께서는 쉬 이해가 안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대장 전체와 소장의 일부마저 절제해 3분의2정도 남겨진 소장을 이용해 배변을 유도하는 ꡐ회장루ꡑ를 보유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항시 변이 묽은 설사로 배변됨으로 24시간 내내 복벽에는 회장루를 통해 배설되는 설사변을 받아내기 위해 착용하고 있는 변수집장애용구가 붙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변종(?)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가 정말로 싫어 대중탕을 가지 않죠. 그러다 겨울철 간혹 부득이 큰맘 먹고 눈에 잘 띄지 않을 복대를 착용하고 목욕탕을 가기도 하지만 ꡐ젊은 사람이 어찌?ꡑ 하는 수많은 시선들을 느낄 때마다 또 다른 유형의 장애우들은 어떻게 이를 극복해 낼까를 동지 의식을 느낍니다. 그리고 언제나 장애우들이 마음 편히 정상적 육체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답니다.
제가 그 좋아하던 운동을 기피하게 된 이유는 복벽에 시술된 장루 때문입니다. 장루는 뱃속에 들어있던 아주 연한 장을 돌출시켜 만든 것이라 작은 외부 접촉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어 남들과 함께 부딪히며 하는 운동은 부득불 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가려야 하는 이유는 대장이 없이 소장이 수분흡수까지 감당하고 있어서 가능한 변이 더 묽어져 흡수율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다보니 그 수술 후유증이 심해, 조금이라도 질기고 억센 음식을 조심 않고 섭취했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숙박은 항시 비상 대기 상태로 긴장하게 됩니다. 왜냐면 혹여 장애용구가 떨어져 이부자리를 더럽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내가 화장실을 쓰고 난 뒤 나는 냄새를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나의 이러한 상태를 모르고 갑작스럽게 사우나하자며 끌고 가면 어떡하나?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싫어 즐거운 장소일지라도 가능한 외박은 삼가 하게 되지요.
하루종일 노심초사
이와는 또 다른 형태로 장루 장애로 겪는 어려움이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장루가 돌출된 복부 부위는 불룩하게 탈장되어 밥그릇 하나를 엎어놓은 듯 솟아올라 항상 헐렁한 바지와 늘어지는 상의를 입어 짝짝이 배를 눈가림해야 합니다. 소화효소가 함께 섞여 나오는 묽은 변의 독소 때문에 장루 주위 피부는 늘 화상을 입은 듯한 상처의 화끈거려서 심신은 위축되고, 작은 부주의에도 복부에 붙어 있는 변 수집 장애용구는 쉽게 떨어져 흘러나오는 변과 냄새 때문에 어떠한 중요한 자리에서든 아무리 먼 곳에서든 무슨 핑계를 대고서라도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심리적 물질적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장루 장애우들은 복부에 달린 장애용구의 안전과 탈장 및 장 탈출의 위험 때문에 힘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마음놓고 몸통을 마음껏 움직여 활동하지도 못하는 답답함을 참아내야 하는 등 그 불편함은 다 말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경계의 눈초리도 차별
그래도 저는 십여년 이상 장루 장애우들과 함께 상담하고 관리해주는 일을 해온 노하우가 있고 비교적 손놀림이 세밀하고 예민한 편이라 다른 장루 장애우보다는 훨씬 안정되고 적극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세 드시고 손놀림이 둔하신 분들께서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벌어지는 이런 실수 때문에 일상이 어려울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를 비관해 생의 단절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구미 각 국의 인구 대비 장루 장애우 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고 기독교 정신의 영향으로 산업사회 이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사회복지분야의 수준이 매우 높아 현재는 일반인이나 장애우거나 특별한 구분도 부담도 없이 가족이나 이웃으로 사회인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의식수준은 이에 따르지 못해 어떤 이들은 장애우들과는 식사하기도 꺼리며, 애틋한 마음은 있을지 몰라도 장애우가 지나가거나 함께 있으면 구경거리 보듯 합니다. 이렇게 가급적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모습은 그만큼 더 장애우들을 힘들게 하는 차별의 모습입니다.
언젠가 들은 안면 화상장애우 한 분의 서글픈 넋두리가 생각납니다.
ꡒ저는 아무리 복잡한 지하철이나 버스라도 자리 잡으려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돼요. 그냥 차에 오르기만 하면 내 주변 반경 1~2미터 내에는 사람이 금방 사라지니까요.ꡓ
이는 제가 공중목욕탕엘 갔을 때도, 가끔 밖에서 실수하여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꼭 ꡐ장애 바이러스(?)ꡑ라도 감염될까봐 제 주변에서 슬그머니 멀어지는 사람들. 이젠 초월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는 것과 같은 마음이겠지요.
그러나 더딜지라도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음을 믿기에 이제 여러분들 앞에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와 있는 ꡐ장루 장애ꡑ를 이해하는데 제 글이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글 유 천(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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