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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수화통역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한 소고

˝나는 십만원을 포기했다˝

본문

수화통역사로서의 `나의 이야기`
제목부터가 좀 심상치 않다. 뭔가 쇼킹한 이야기를 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고, 정치권의 이미지 전술처럼 눈길이나 끌어보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흙탕물 기사일 것 같기도 한 제목이다.
그러나 분명 사실이다.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몰라 그냥 이렇게 시작한다. 먼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부탁할 것은 `불필요한 오해`나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극복해 달라는 것이다. 이 글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며, 그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뿐 불특정 다수를 대표하는 글이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니 또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가끔 소위 진보라고 말하는(자의든 타의든) 집단 속에서 비(be)자본주의적 모습과 비(非)자본주의적 모습을 목격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굳이`반자본주의`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자본주의적 삶의 모습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나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으로 굴러가는 것에 제동을 걸고 인간 냄새 폴폴 풍기는 사회를 만들려는 일련의 운동에 대한 나의 경험, 특히 수화통역사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처음의 부탁을 새기며 읽어주길 바란다.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과 효율을 가진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다. 그런데 그 능력과 효율은 소위 자본이라는 형태, 내 수준으로 말하면 `쩐(錢)`으로 표현되며, 그 쩐은 개인의 지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한다. 대개 쩐이 많이 나오는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투자를 해야하고 그 투자는 인적, 물적, 정신적 모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남의 칭찬이나, 죽은 뒤 출판되는 책이라기보다, 그 개인이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쩐의 양일 것이다. 솔직해지자,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 한국사회에서 그 현실을 정확하게 보자는 거다. 물론 난 정확하든 확실하든 이 사회의 모습이 싫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내 이야기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

농아인이 없는 자리에서의 수화통역
자본주의의 영속적 존속을 위해 존재하든 사회주의의 유산이든 `사회복지`는 자본주의적 삶의 형태와 그 존재 방식을 거부하는 경향을 띤다. 간혹 예외적으로 아주 자본주의적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사회복지의 실천은 자본주의적으로 실현될 수 없음은 확실한 듯 보인다. 물론 개인적 의견이다. 이 사회복지 개념 속에 장애우 복지가 있다. 요즘은 장애우 복지가 시혜와 동정을 넘어 당당한 권리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장애 가진 사람을 복지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목소리중의 하나가 바로 `청각장애우의 정보접근권`이다. 음성언어 세계에서 음성언어를 사용할 수 없거나 음성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청각장애우(물론 언어장애우도 포함한다)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소통되고 활용되는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소화하기 위해서는 ꡐ시각언어ꡑ인 수어(手語)가 청각․언어 장애우들의 또 다른 의사소통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수어가 그들의 언어이며, 그들의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음성언어 중심의 현실에서 청각장애우들은 음성언어와 소통하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 없다. 그래서 소위 ꡐ수화통역ꡑ이라는 게 생겨난 것이다. 즉 수화통역이란 시각언어를 사용하여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 뜻은 중간자라는 말도 되지만, 결코(강조하지만 개인적 견해이다) `중립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화통역은 건청인이 주로 한다. 나도 그 중 하나인데, 내가 하는 일은 농아인의 수화를 음성언어로 통역하는 `음성통역`과 건청인의 음성언어를 수화로 통역하는`수화통역`이다. 그런데 주로 하는 것이 수화통역이란 것이다. 이 수화통역도 세분하자면, 농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통역과 농아인이 없는 상황에서 하는 통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통역을 다 경험했다. 비교해보면 농아인이 앞에 있는 상태에서 수화통역하는 것이 더 어렵다. 즉각적인 반응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수화통역을 상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시험관 앞에서 면접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농아인이 없는 상태에서의 통역은 거의 `보여주기`식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농아인이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장애우 집회임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든지, 수화통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거나 수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전시적으로 보여주어 장애우의 현실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교육적인 효과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여기엔 수화경연대회나 수화노래는 포함되지 않는다. 수화통역사는 그 자리에서 평가받고 농아인과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아인이 없는 자리에서의 수화통역은 문제가 된다. 일단 수화통역사 개인에게는 방심의 기회를 제공하고, 수화통역에 대한 긴장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니 현실적으로는 내가 이 통역을 해야 하는건가 하는 자존감과 사람들의 수많은 시선에 `전시되어 있는 나`가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어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있더라도 단어를 찾아내서 자신의 수어 암기 실력을 확인하는 정도일 것이다) 수어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취지는 고사하고 수화통역사의 `율동`에 감탄하거나 표정에 탄복(?)하기 때문에 수화통역사의 입장에서는, 아니 최소한 나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럽고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제목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농아인이 없는 자리에서의 수화통역`에 대한 나의 입장이다. 여기까지가 서두라고 한다면 조금 놀라시기도 하시겠지만 의외로 본론은 아주 간단하다. 시간이 되시면 끝까지 읽고 나의 생각을 비판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해 주셨으면 한다.

수화통역을 거부하다
<함께걸음>과 나는 92년부터 현재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관계다. 처음에는 장애운동 입문서로써 아주 좋은 운동 원론서이기도 했다. 이런 <함께걸음> 지면을 빌어 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ꡑ에 대한 의견을 내게 돼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비판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연구소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이렇게 분위기를 깔면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 시작하고자 한다.
보통 연구소에서는 수화통역을 하면 통역시간에 대한 고려 없이 5만원 정도의 통역비를 책정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비단 연구소만의 모습은 아니다. 보통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장애운동 단체에서도 비슷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잠깐 갓길로 가는 것을 용서하신다면 나의 당황한 경험 하나를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하긴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아도 나는 글을 쓸 것인데 묻기까지 하다니 아주 가증스럽죠, 죄송합니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자주 통역을 하는 장애우 운동 단체의 행사 1부 통역을 맡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2부 통역을 한 동기 통역사와 통역비가 달랐던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문제삼지 않았다. 왜냐면, 운동의 대의에 합의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경우를 왕왕 경험하다 보니 그 운동 속에서, 아니 그 단체에 대해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나는 내 자존감과 운동의 대의(?!!)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문제제기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일이 연구소와 관계된 일이다. 이 글은 이렇게 쓰게 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연구소에서 의뢰받은 토론회나 행사 중에는 농아인이 없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런데, 통역을 부탁 받았기 때문에 약속한 입장에서 충실히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농아인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수화통역을 했다. 그러나, 연구소가 농아인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곳이 되어야 하고, 장애우 운동을 균형있게 실현해야 한다는 나의 충심(?이 발동해서 더 이상 그냥 지나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지난 4월 19일 고용장려금 축소 저지를 위한 집회에서 통역을 거부(?!)했다. 집회에 참석한 안면있는 한 분은 왜 통역을 하지 않냐고 물었다. ˝농아인이 없어서…˝라고 했더니˝그래도 해야죠˝라고 말했다. ˝그래도 해야한다니…˝ 이 말은 나에게 `빨리 너의 생각을 당당히 말해`라고 불붙이는 그 무엇이 되었다.

10만원을 포기한 이유
나는 연구소에서 `농아인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두 번의 통역을 거부했고, 그래서 10만원을 포기했다. 10만원이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현재 청년실업자의 한 명으로 등록되어 있고 또 지난 1월까지 모 단체에서 연봉 360만원을 받았던 내 입장에서는 아주 큰 돈이다. 학교 식당에서 1800원짜리 식권을 사도 55번 나의 생존을 연장할 수 있는 쩐이다. 그런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연구소가 지급하지 않은 것이지 내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연구소가 의뢰한 시간에 맞춰 나갔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중간에 농아인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잘 알 수 없지만,(어떻게 되는건지 일언반구도 없었다) 연구소는 수화통역이라는 눈으로 보이는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에게 통역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나는 연구소 입장에 토를 달지는 않겠다. 다시 받을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 입장은 밝히려 한다. 통역자는 의뢰를 받으면 통역활동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자신의 일은 잠시 미루어 둔다. 내 경우를 보면, 보통 오후 2시~ 5시 사이에 많이 의뢰를 받는데 시간을 맞추려면 거의 하루를 재구성하거나 통역에 집중해서 나머지 시간 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자, 19일 나는 최소한 한시 반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12시 반에 광화문에 도착(내가 움직이는 곳이 인천이며 이동하는 시간이 거의 한시간 반을 소요한다는 계산을 해 넣으면 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해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집회에 참석을 했고, 끝나는 발언을 들은 후에 나는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보통 저녁 7~8시 사이가 된다. 온전히 하루를 그 집회현장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소요했다.(사실 통역이 아니었어도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다) 물론 어떤 이는 개인이 알아서 시간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게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만일 어떤 행사에 20~30분 토론하는 토론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온다고 하면. 그래도 20분~30분 토론 발표문 읽는 것으로, 아니 2시간 토론회에 참석한 것으로 계산할 것인가? 사실 의문이다. 또 하나 내 경험을 보면 세시간 통역을 한 나는 5~1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20~30분 발표한 발표자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20~30만원의 수고비를 받는다고 들었다.(이는 연구소 예가 아니다) 결코 나는 1대1의 비율로 계산하라는 것은 아니다. 수화통역자 대우에 대한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그 날 한 명의 농아인이라도 있으면 통역을 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날 참석자의 한 사람이 되었고 통역으로 하루 일과를 맞춘 나는 그냥 돌아왔고 오히려 ˝그래도 해야지˝라는 충고의 화살을 맞고 하루를 마감하였다. 피가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두 번 통역 거부로 10만원을 포기했다. 아니 나는 두 번의 통역 거부로 이틀을 사용했으며, 내가 누군지 더욱 두 배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수화통역사 인정은 농아인 권리 확보하는 일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모습은 비단 연구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위 반자본주의의 실천 또는 비자본주의적 실천을 말하는 운동단체 거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장애 운동 단체의 이런 인식이 나를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통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역비를 지급하지 않는 인식의 바탕은 결국 비(be)자본주의적 인식 아닐까? 능력과 효율이라는…. 장애단체의 집회를 더욱 장애우 집회답게 만드는 전시적 수화통역을 거부해, 결국 집회의 효율에 반하는 행동을 한 나는 ꡐ수화통역사ꡑ로서 아주 비효율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나는 수화통역사가 오직 농아인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건청인과 농아인의 중간자로서(다시 강조하지만 중립은 아니다) 건청인과 농아인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농아인이 없는 수화통역의 경우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의뢰자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그 개인 수화통역사 개인의 결단에 따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번 ꡐ농아인이 없는 집회ꡑ에서 행하는 수화통역에 대해 연구소가 깊이 있게 생각해 주기 바라며, 더 나아가 농아인 단체가 참가단체로 되어있거나 농아인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수화통역을 의뢰한 경우 수화통역사가 농아인이 없다는 이유로 수화통역을 거절하더라도 그 통역사의 역할을 존중해 주어야 하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수화통역사가 상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화통역 업무와 상담을 제일차적으로 부여하고 부수적으로 연구소의 일을 분담할 수 있도록 말이다. 15년이 넘는 연구소가 수화통역이 필요할 때마다 인력을 외부에 의뢰한다는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주길 바란다. 처음 연구소를 만났을 때의 감동과 기대처럼 `처음처럼` 장애우 권리에 대한 운동을 해 나가길 바래본다. 

글 도임방주

작성자도임방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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