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중장애우 일상다반사 ⑧
본문
저는 ‘연골무형성증’ 일명 왜소증(Dwarfism)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신체조건을 가지고 사는, ‘장애우’라고 불리지요. 먼저, 연골무형성증이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저를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흔히 “난장이다.”라고 합니다. 감이 오나요? 예, 저는 다른 사람들과 겉으로는 확연히 차이가 있는 ‘키가 작은 사람’입니다.
‘연골무형성증’은 작은 키 때문에 보통 하체가 약하고, 다리 마디가 약해 다리가 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수술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선천성 연골무형성증은 아닙니다. 부모님 얘기로는, 두살 되던 해 갑자기 심하게 울어 병원에 가보니 척추가 굽는 병이 왔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구루증인가 하셨대요. 하지만 구루증은 키가 작긴 해도 연골무형성증과는 좀 다를 것입니다. 등이 굽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다행히 저는 등이 굽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병 고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동분서주하신 덕에 등이 굽는 것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회복되는 건 어려웠나 봅니다.(^^;)
저는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졌지만, 저를 아시는 많은 분들은 저의 밝은 얼굴이 좋다고 합니다.
누가 저에게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묻는다면, 신체조건이 다른 것 때문에 힘들었다기보다, 그 모든 것보다 힘들고 괴로웠던 것은, 싫었던 것은,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올바르지 않는 ‘시선’이었습니다. 무슨 이상한 나라에서 온 ‘외계인’ 쳐다보듯 하는 시선… 저와 같은 자리에 서지 않은 이상 그 시선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선’은 무엇보다 절 힘들게 했습니다. 어린 친구들이야 철이 없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른들까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심지어는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질 때 자존심이 매우 상했었습니다. 어릴 땐 그것 때문에 참 많이 울기도 울고, 그랬는데… 외모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런 유아적 수준 이젠 벗어나야 되지 않을까요?
어디 힘든 것이 그것뿐이었겠습니까? 요즘은 서구식 체형이다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키가 크죠. 그렇기에 우리 같은 사람이 불편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실 요즘에 와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예전에도 그랬을 것입니다.) 한 예로,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도서관에 물건보관함이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고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었는데, 그 동전 넣는 곳이 제 키가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물론, 비장애우들은 쉽게 동전을 넣지만, 저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참… 별 것 아닌 것에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것이 씁쓸했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불편했습니다. 정말 별 것 아닌데, 신경이 쓰였지요. 졸업 전에 대학에서 저와 같은 장애학생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불편한 것들을 얘기하라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것을 얘기했죠. 이후 그것은 제 키가 닿을 정도로 재조정 해 놓은 것을 보며 작은 것이지만,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비장애우 위주로 된 시설이 많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데, 그것이 부족해 불편한 경우가 많죠.
아, 힘든 점이 또 있습니다. 저는 장애 때문에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싫습니다.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전면에 나서서 하는 활동에 차별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성격이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뒷켠에서 일할 것을 강요받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나는 싫습니다. 자신을 표현하고 개성을 발휘해 활동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단지 외모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보다 더한 일도 많았지만, 지금 제 삶은 한마디로, 행복합니다. 왜냐구요? ‘사랑’ 때문입니다. 늘 제 편이 되었던 가족이 곁에 있답니다. 다른 신체 조건을 가졌다고 특수학교를 선택하는 부모님들도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저를 일반학교에 입학시켰고, 저는 비장애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며 자랐습니다. 겉모습 외에는 다른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 비뚤어짐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고, 비장애우들과 어울리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는 이유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종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래 들어보셨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사람은 모두 사랑 받고 싶어하고, 사랑을 주길 원하는 존재이지요. 모두 공감하실 것입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사랑이 없어서’다라고 감히 말해도 될까요? 사랑과 관심, 믿음과 소망… 그것이 이 세상을 살맛나게 할 것입니다.
글 김희정
스물다섯살 부산아가씨. 교회에서의 시간이 가장 소장하다는 그녀는 친구들에게 웃음으로 힘을 준단다. 한국 작은키 모임의 회원.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