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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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국원폭환우 2세인 김형율씨가 연구소에 다녀갔다. 형율씨의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몇번에 걸쳐 약속을 미루다가,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만난 반가움과 함께, 연구소에서 과연 한국원폭피해자의 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란 실무자의 버거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러나, 피해당사자이면서 원폭환우들의 인권활동가인 형율씨는 나의 버거움을 단숨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원폭피해로 인해, 호홉기장애 1급인 형율씨는 대부분이 쉬쉬하면서 드러내지 않는 원폭피해 문제를 2세이면서도 당당히 커밍아웃(comming out)한 것이다. 그리고 부산이 집인 형율씨는 한달에 한번 이상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서 각각의 시민사회단체들을 찾아다니며 한국원폭2세 공대위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고, 국가인권위원회 등 정부기관에도 원폭피해자의 인권문제를 열심히 알리고 다녔다. 저멀리 1945년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이렇게 내앞에 현실이 되어 앉아 있었다. 형율씨는 역사책속에서나 접할수 있었던 2차세계대전의 피해를 자신의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에 우이동에서 인권학교를 할때였다. 한창 이라크전이 발발하여, 전세계가 ‘전쟁’이라는 화두로 뜨거웠던 때였다. 특별히 이라크전 발발이후 당시의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 피해사진들을 전시하기도 하고, 이라크전 이전에 인간방패를 하기위해 갔던 청년도 초대손님으로 불렀다. 그리고 또한명의 특별한 초대손님은 ‘한국 대인지뢰 대책회의’간사였다. 한국전쟁당시 뿌려진 대인지뢰 때문에, 전후 민간인피해자가 2000명으로 추정되고 있고, 아직도 한반도에는 미확인대인지뢰가 75%이며, 미국이 한국전쟁당시 뿌린 대인지뢰가 120,000개로 보고 되고 있단다. 폭발하면 발목과 무릎을 절단시키는 대인지뢰는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홍수등으로 민간인 지역까지 떠내려와 1997년이후로도 민간인 피해자가 년 10명씩 보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얼마전 부시는 클린턴 전대통령이 약속한 ‘국제 대인지뢰 금지조약’에 가입하겠다는 약속을 폐기하고, 특별히 한국에는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지뢰사용을 계속하겠다고 하고 있어 한국사회를 경악케 했다. 50여년전 이미 끝난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땅속에 파묻힌 수많은 대인지뢰는 전쟁이 종결된 것과 상관없이 우리 강산에 널려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위의 세 이야기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한 주체측이 미국이라는 점, 전쟁으로 인한 끔찍한 민간인 피해가 있었다는 점, 전쟁은 그 당시로 끝나지 않고 그 후대와 타국의 사람에게도 참혹한 결과를 남긴다는 점이다. 누가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가? 누가 평화의 탈을 쓰고 전쟁놀음을 하고 있는가? 전쟁을 하려는 자, 지구를 떠나라!
글 김정하(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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