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증장애우 일상다반사(10)]오히려 눈에 보이는 장애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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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간질이 시작된 것은 열살 때부터이니 간질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더불어 살아온 지 30년이 넘었다. 그 동안 죽음의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고,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다. 나는 “저 애가 사람구실 할 수 있겠어?” 하시며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눈빛을 보면서 자라났다. 네 명의 누이들은 나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며 등하교 길을 챙겨주었고, 누이들이 결혼한 후 지금까지도 나에 대하여 보호자로서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많은 간질우들의 경우, 간질은 유전병이라는 잘못된 사회의 편견으로 가족들까지도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누이들은 결혼하여 잘살고 있다.
부모님은 불치병, 귀신병, 천질 등으로 알려진 잘못된 간질에 대한 인식 때문에 더욱 힘들어 하셨다. 아들의 간질증상이 자신의 죄 때문이며 마음고생도 심하셨다. 그래서 아들의 완치를 위하여 온갖 수단을 강구하셨는데, 심지어는 고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사람의 태반까지도 먹였다. 그러나 좋다고 하는 온갖 민간비방을 다 써보아도 나에게는 여전히 하루에도 수차례 발작이 거듭되었다. 수업시간에도, 운동장에서 조회를 서다가도, 등하교 길에서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이 정신을 잃곤 하였다. 거듭되는 결석과 조퇴로 학과진도를 따라 가기가 쉽지 않았고, 친구들의 전염병자 대하는 듯한 눈길들은 깊은 상처를 주곤 하였다.
간질 발작의 종류는 여러 종류이다. 나의 발작종류는 전신강직간대발작, 즉 대발작이어서 일반인 누구나 간질환자로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간질이다. 잠깐 동안 일어나는 발작 후에는 후유증으로 머리가 깨어지는 듯 아프며, 갑작스러운 졸도로 외상을 입어서 발작의 정지 후에도 휴식이 필요하므로 학교 양호실은 거의 나의 차지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매사에 염려하며 나의 활동을 제한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과도하게 조심하며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하루하루가 위태한 건강상태, 주위에서 조롱하고 멸시하는 눈빛, 발작 후의 절망감과 고통은 십대의 어린 아이가 감내하기는 힘든 고난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뭘 하나’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 중에도 오늘까지 나를 든든하게 세워준 것은 늘 옆에서 도와주던 친구들과 격려해주시던 선생님들과 이웃, 그리고 종교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어린 나이에 그 고통들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다.
나를 비롯한 많은 간질우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발작의 두려움, 신체적 고통, 발작 후에 경험하는 수치감과 박탈감, 언제 완치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좌절시키는 것은 오랜 역사 속에 형성되어진 간질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 수많은 사회적 장애다. 하지만 간질 장애우들은 그래도 당당하게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다. 간질 장애우들은 오랫동안 갈갈이 찢겨진 몸과 마음의 상처로 고통스럽지만 다른 연약한 사람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다.
매스컴은 유영철의 살인에 관한 보도보다 그의 병력에 관한 것을 먼저 대서특필하면서 간질 장애우들을 또 한 번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
그러나 간질학계에 의하면 유전적 소인을 가진 간질 유형은 소수이며 일반적으로 간질은 유전이 아니다. 또한 그들 가족의 간질유형은 정신운동성 간질이라고 불리워진다. 그야말로 정신분열로 착각할 수 있는 간질의 한 종류이지, 정신병은 아니다. 적절한 항경련제의 투약으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한 증상이다.
이번 유영철 사건 때문에 한국의 30만으로 추정되는 간질우 모두가 또한번 어려워지고 있다. 오랜 역사를 흘러 형성된 간질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여러모로 노력해 왔는데, 일순간 그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유영철이 간질환자래. 간질은 정신병의 일종이래.”라고…
그동안 ‘간질발작은 정신병이 아닌 뇌신경계의 순간적인 전기적 충격으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이상행동’이라고 계몽과 교육을 통한 설명들이 부질없어지고, 간질우들은 다시 정신장애우가 됐다.
나 뿐 아니라 많은 간질우들은 간질 대신 다른 장애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숫제 확연하게 구분이 가는 장애우라면 “저 사람은 시각장애우군, 지체장애우군.” 한눈에 알아보고 인정할 텐데, 간질은 발작할 때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니 일부러 밝히기 전에는 남들이 알지 못한다. 그러니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면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간다.
하지만 내가 간질이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낀다.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은 나와 잘 모르는 사람처럼 변한다. 그의 시선에서 공포감이나 적대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간질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게 되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조심하게 된다. 더군다나 간질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낙인은 간질우들을 두 번 마음의 문을 꼭 닫아걸게 한다.
그러나 요즘 나는 많이 바뀌었다.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을 것인가. 간질 그 자체로만도 힘든데 사회적 낙인 때문에 더욱 견디기 어려워, 무슨 흉한 병인 것처럼 숨고 감추고 한다면 남들도 “맞아 간질은 흉한 병이야. 간질환자와 상대하지마” 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간질을 가진 사람이야. 하지만 약물요법으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고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해”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고 이웃과 더불어 건강한 사회생활을 한다면 아무리 뿌리 깊은 간질에 대한 오해지만 불식되어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어서 속히 간질우들에게 드리워진 편견이라는 어두운 그늘이 불식되어 간질 장애우도 장애를 인정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글 이상규
이상규님은 경기도 양주시에서 교회를 섬기는 목사다. 또한 다음카페 ‘한국간질협회 새날을 여는 사람들’을 운영하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간질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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