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곤의 세상보기] 장애우도 있다
본문
<국회에 장애우가 있고 없고의 차이>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에서 여성파워가 거세질 전망이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전국구)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하고, 지역구 후보도 30% 여성공천에 최대한 노력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선관위도 비례대표 후보 중 두 명마다 한 명은 여성으로 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명단을 접수하지 않는 내용의 개정의견을 낸 상태다.
그 동안 세상의 반인 여성을 무시해온 정치권 행태로 볼 때 여야의 이런 개혁안은 일단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여야 모두 지역구 후보는 제외하더라도 비례대표에 장애우를 공천하겠다는 방침을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는 정치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관련 예산을 늘리고 관련법을 재개정해서 대상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모두 국회에서만 가능하고, 국회의원이 가능성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 즉 장애문제를 해결하려면 장애우가 국회에 있고 없고가 큰 차이가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장애우가 국회에 없는 상태에서 장애우들이 장애문제 해결을 국회에 청원한다고 하자. 극단적인 얘기지만 과연 그들이 알까? 장애 문제 해결을 위해 자기 일 처럼 발 벗고 나설 국회의원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십중팔구 의원들은 장애우 현실이 어려우니까 도와주겠다는 시혜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를 떠나서, 드러난 결과만을 놓고 한 번 엄밀하게 얘기해 보자.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되고,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된 지난 90년 국회에는 이철용 의원이라는 장애우가 있었다. 장애인 편의증진법이 제정된 15대 국회에는 이성재 의원이 있었다. 이게 뭘 말하는 것인가, 장애우로서 장애 때문에 아픔을 겪은 당사자가 국회에 있어야 그나마 장애 문제가 해결될 기미라도 보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 3-4석의 비례대표 보장되어야 순리>
세상의 반은 여자이다. 인정한다. 그런데 추정이 아니라 정부 공식통계를 봐도 지난 3월 현재 등록장애우만 133만명을 넘고 있고, 장애우 수는 정부의 장애범주 확대 방침에 따라 더 늘어날 전망이다. 4천5백만 인구 중에서 장애우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그러면 여기에다 장애우가 가장 소외받는 계층이라는 특성까지 감안하면, 최소한 3-4석의 비례대표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장애우 공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입으로는 장애우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선거때는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실천에 있어서는 장애우를 무시하는 게 이 땅의 정당인 것이다.
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은 다른 왕도가 없다. 장애우를 공천해서 국회에 보내는 거다. 그래서 장애우로 하여금 직접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거다. 이보다 확실하고 바람직한 해결책은 없다. 그런데 정치권은 장애우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장애계는 그런 정치권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결국 문제는 장애계 내부에 있다. 도대체가 대립각만 세우고 자기 몫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는 게 작금의 장애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안타까운 것은 장애계에 국회에 보낼만한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이비는 말고,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빼고 나면 사람이 없다.
장애우들이 요구하는 지도자는 지금처럼 운동이 먹고사는 수단이 되어버린 단체장이 아니라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장애우들을 위해 자기 희생을 하는 지도자다. 자기에게 이익이 있나 없나를 먼저 챙기는 지도자가 아니라 가장 고통받는 장애우 입장에서, 낮은 곳에서 장애우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을 지향하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런 장애계 인사가 세상에 장애우도 있다고, 장애우 몫을 돌려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면 정치권도 정부도 지금처럼 장애우를 무시하지만은 못할 것이다.
지금 누가 세상을 향해 장애우의 존재를 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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