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내 마음의 디스크 조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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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램 중에서 "디스크 조각 모음"이라는 게 있다. 하드디스크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파일 정보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속도가 많이 느려지게 되는데, 그 모든 걸 본래의 자리로 재배치하는 프로그램이다. 옷장 안의 옷들이 속옷, 외투, 바지, 양말 할 것 없이 모두 뒤죽박죽 되어버려서 당장 입고 나갈 걸 찾는 데에 시간만 허비하던 사람이, 그 모든 걸 전부 꺼낸 다음에 종류별로 분류해서 일목요연하게 넣어두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금 쓰는 윈도우 XP 제품은 실행 방식이 바뀌었지만, 이전의 펜티엄일 때는 화면 가득 파란색 네모 모양들이 조각 모음 하는 과정을 아주 천천히 순서대로 보여 준 바 있었다. 그 네모 모양들은 하나 또는 몇 개씩 깜박이면서, 하드디스크가 지금 어떤 속도로 얼마만큼 정리되고 있는지를 나타내곤 했다. 정리가 완료될 때까지 시간은 꽤 걸렸지만, 나는 짧은 외출이나 다른 일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그 작업을 실행했었다. 그리고 필요 이상이라 느낄 만큼 그 프로그램 실행에 집착하곤 했다.
왜 그랬던가를 얘기하는 건 간단하다. 하나씩 정리되는 그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나 자신이 정리되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적지 않은 부러움을 마음에 품기도 했다.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모든 게 정리되는 컴퓨터라는 존재와 마주 대할 수밖에 없었던 내 마음의 엉킨 실타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렇게 본래 위치 그대로 제자리를 찾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부터 어떻게 엉킨 건지도 모를 머리와 가슴과 마음의 숨막힘이 속 시원하게 정돈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디스크 조각 모음과 같은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시간 낭비일 만큼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면서, 나는 그런 생각들을 끝말잇기처럼 이어가곤 했었다. 컴퓨터라는 존재가 정말 부럽다는 마음 하나로 말이다.
천성 탓인지 사소한 일들에 마음의 상처를 자주 받곤 한다. 아닌 척하며 넘어가려 해도 기억이 기억을 낳고, 생각이 꼬리를 무는 탓에 쉽게 지워버리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런 습성이 쌓이고 쌓여 글 쓰는 인생길을 걷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적당히 든 상황에서도 오래 전 과거의 일들을 사사로운 부분까지 기억한다는 점에는 부담을 느낄 때가 많기도 하다. 중학교와 고교 시절의 담임선생님과 각 과목 담당 선생님들의 이름을 줄줄 외는 걸 친구들이 신기해하는 걸 보면, 적당히 잊을 건 잊을 줄 아는 게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잡념도 끊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기는 많이 흐른 것 같다. 신문과 방송 뉴스에 도배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이야기에 실망이 많아지는 걸 보니, 내 삶이 일정 시점부터 지치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자기 진단을 내리곤 한다. 또한 언젠가부터 대인 관계에 있어서 불필요한 갈등과 긴장이 늘어나는 걸 보니, 내 인생에도 나만의 디스크 조각 모음 같은 게 필요하다는 걸 간절히 느끼게 된다. 대강 씻고 때를 벗기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좌표와 나아갈 길을 다시 설정하는 대수술이 절실한 나이가 된 거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짧은 인연에 연연했던, 그런 틀에 안주했던, 저 먼 곳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관계 속에 매몰되던 나의 삶을 이젠 훌훌 털어낼 때가 됐다는 인생의 신호가 계속 들려오는 것 같다.
때때로 고등학교 시절의 일기를 꺼내 읽어 본다. 지금의 글쓰기보다 더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지만, 지금의 내가 도저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진솔함과 도전 의욕이 가득 새겨져 있다. 대학 시절의 일기 또한 읽어 본다. 현재의 내가 얼마나 타성 붙은 채로 하루하루를 허비하고 있는지 부끄러울 정도이다. 결국 내 삶이 어느 시점부터인가 적당히 타협하며, 그 타협 속에 안주했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내가 "나는 나"라고 주장하며 강조했는데, 본래의 "나"는 이미 십여 년 전 그 자리에 화석으로 굳어져 있고, 그 허물을 뒤집어 쓴 현실의 내가 이 자리에서 "나"를 간직하는 척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디스크 조각 모음"은 무엇이 있을까. 먼 곳으로의 여행? 아니면 헤어스타일을 확 바꾸고 외출복을 새로 구입하는 것? 전혀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것? 글쎄, 그 정도는 가끔씩 해봤던 일이라서, 근본적으로 확실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답은 이미 나와 있는 상태이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초기 설정으로 포맷(format)시키듯이, 인생의 지친 발걸음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내가 변하는 수밖에 없다. 엉뚱한 인간으로 돌변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며 간직해 왔던 본래의 "나"를 찾는 방법 밖에 없다. 쉬운 일이었다면 수만 번 이상 시도했겠지만, 진정한 내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내 영혼 안에 내가 침잠하는 인생의 도박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내가 너무 많은 길거리에서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하며 지냈음을 이젠 인정하고자 한다. 너무 많은 구석진 공간에서 내가 나인 척 허세부리며 시간낭비를 반복해 왔음을 이젠 수긍하며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과오를 똑같이 반복하며 지내왔음을 이젠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거울 속에 비친 내게 웃음을 주지 못하는 나날이 너무도 길었음을 시인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이젠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머물고 싶다. 인맥(人脈)과 학맥(學脈)이니, 지연(地緣)이니 혈연(血緣)이니 뭐니 하는 절대치가 없는 세상을 설계하고 싶다. 사사로운 상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삶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틀을 바꾸겠다면서, 정작 내 곁의 소중한 이들에게 실망과 무관심을 안겼던 우는 더 이상 범하지 않아야겠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적당한 타협에는 이제 단호한 거부의 손짓을 내저어야겠다. 떠날 때는 말없이, 그리고 미련도 남기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으면서도, 반환점까지 달려오는 동안 반복했던 허튼 실수들을 똑같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은 이제 용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나이 들면서 그 말처럼 삶의 정곡을 찌른 표현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쌓여가는 나날이다. 나의 현재를 바라보지도 못하면서 평천하(平天下)만 외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반성한다. 다시 수신(修身)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나의 가족을 처음 만나듯 다시 바라봐야 할 일이다. 가장 소중한 게 이렇게 가까이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언제나 늘 당연히 있는 것처럼 소홀했던 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 자신마저도 관리하지 않으면서 문 밖의 세상만 기웃거렸던 타성을 이젠 버려야 할 일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천재지변 같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항상 눈에 띄지도 않던 아주 작은 부분들에서 시작된다. 사라지고 나면 아쉬워질 소중함을 우리는 늘 간과하며 지낸다. 진정한 나의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인생의 이름으로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찾는 나날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약간의 아쉬움과 긴 여운을 몰래 감추며, 나에게로 떠나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다가오는 추위에 미리 얼어버리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서둘러 나만의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채지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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