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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닫으며] 만추에

본문

 떠나고 싶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이국의 거리를 떠도는 집시들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리는 만추의 아침에 무작정 서울을 떠나고 싶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다니다 자연에 묻히고 싶다. 인도의 구루처럼 고려시대 땡중처럼 표표히 떠나고 싶다.
한 순간 맘을 열면 될 것 같다. 바로 곁에 무언가 새로운 삶이 도사리고 앉아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런 유혹적인 체험은 많은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대개는 유혹에 그치고 만다.
나도 항상 그래 오다 이 만추에 다시금 토착병처럼 끈질긴 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준비가 되는 날 나는 확실히 떠날 수 있다고 마음을 드잡는다.
준비?  그렇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삶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수양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수양을 해야 하나. 책을 읽어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도시문명 속에 젖어 있는 현대인의 삶을 개탄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창하는 소로우의 글을 밤새워 통독해서 될 것 같지는 않다.
아 그래서였던가.
옛 성현들도 도를 이야기할 뿐 어떻게 도에 이를 수 있는지를 제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공자는, 아침에 득도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고 장자는, 마음을 키우는 것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성현들은 문자라거나 심지어 언어에마저도 의존하지 않고 몸으로, 오로지 몸으로 보여 주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 분들의 가르침을 우리가 어디에서 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로서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철벽같은 인습의 벽과 성격의 철옹성 어딘가에 출구는 있을 것이다.
이것을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지 않은가. 우선 소비를 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흡연, 음주도, 섹스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으리라..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나도 저 인도의 구도자처럼 아니 언젠가는 참으로 저 설악산의 바위처럼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헛꿈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버리지 못한다.
아 꿈속에서라도 떠나고 싶다.
만추의 산자락 아래에 앉아 텅 빈 들녘을 바라보고 싶다.
이윽고 밤이 되어 소나무에 걸린 달을 쳐다보며 술잔을 들고 이별의 노래 삼절을 불러보고 싶다


글 박성민(법무법인 한결 대표변호사)

박성민변호사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놀란다. “정말 변호사 맞아?”
그를 아는 사람들은 소탈하고 검소하며 인정 많고 유쾌해 함께 있음 자체가 즐겁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나 ‘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자연으로 돌아갈 날 만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마라톤 완주한 사람’과 ‘마라톤 못나간 사람’으로

작성자박성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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